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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철희 Jun 20. 2024

<스타워즈>에 종교적 분위기를 불어넣은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스타워즈> 시리즈는

잡다한 식재료를 몽땅 집어넣고 조리해서 내놓은,

때로는 맛있고 때로는 그저 그런 잡탕밥 같은 작품이다.


이 시리즈에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비극적인 운명의 영웅들,

제2차 세계대전의 연합국과 나치독일을

모델로 삼은 선악구도와 공중전,

권총과 장총으로 대결하는 미국의 서부영화,

칼과 칼이 부딪히는 일본의 사무라이영화,

기(氣)를 이용한 무공을 겨루는 홍콩의 무협영화 등이 섞여있다.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는

거기에 스파이물의 요소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의 활약을 가미해

기막힌 풍미를 빚어낸 영화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잡탕맛에 새로운 풍미를 더한 영화 <로그 원>


<로그 원>이

<스타워즈>의 스핀오프이면서도

기존 시리즈하고는 차별화된 색깔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건

시나리오작가가

“제이슨 본” 시리즈의 각본을 쓰고

스핀오프인 <본 레거시>는 감독까지 맡았던

토니 길로이였기 때문이다.

토니 길로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로그 원>의 주인공 카시안 안도르의 과거를 다룬

<안도르> 시리즈의 각본과 제작도 맡았는데,

개인적인 생각에 이 드라마는 과욕에서 비롯된 안타까운 행보다.


누구나 이 장면을 <로그 원>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을 것이다.

<로그 원>에서 많은 사람이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는 장면은

영화 결말부의 다스 베이더 장면일 것이다.

어둠 속에서 쉭쉭거리는 숨소리가 들리다가

굉음을 내뱉으며 붉은 광선으로 솟아난

라이트세이버가 어둠을 찢은 후

다스 베이더가 반란군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며

유유히 전진하는 장면은

반란군에게 감정이입이 돼있는 관객에게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는 한편으로

도저히 꺾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무시무시한 다스 베이더를 묘하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어준다.


이 장면에서

반란군이 베이더에게 처참하게 농락당하는 와중에도

훗날 승리를 안겨줄 거라는 희망을 품고

간신히 지켜낸 설계도는

시리즈의 첫 영화이자

훗날 <스타워즈 4: 새로운 희망>으로 제목을 바꿔 단

<스타워즈>에서 거두는 결정적인 성과로 이어진다.


반란군이 당하는 압도적인 패배와

그리 대단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한 번의 승리를 담아낸

영화 <로그 원>의 주제는

“악의 무리를 이겨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지켜내기 위해서 하는

숭고한 희생”이다.


<로그 원>을 다시 보면서 떠올린 영화가 두 편 있었다.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면서도

가공할 위력을 가진 그 무기가 가져올 결과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겔런 어소(매즈 미켈슨)는

<오펜하이머>를 연상시켰다.


또 다른 영화는

수정주의 웨스턴의 걸작인

샘 페킨파 감독의 <와일드 번치>였는데,

<와일드 번치>를 떠올리자

<로그 원>이라는 제목이 새롭게 읽혔다.


샘 페킨파 감독의 걸작 수정주의 웨스턴 <와일드 번치>


<로그 원>은

제국의 조종사였다가 반란군으로 전향한 보디 룩이

관제탑의 추궁에 엉겁결에 댄 호출부호 “로그 원”에서 비롯된 제목인데,

“무리 속에서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악당”이라는 “rogue”의 뜻대로

단독 행동에 나선 말썽쟁이들인 이들은

“제멋대로 구는 거친 놈들(wild bunch)”의 주인공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물들이다.


<로그 원>에 등장하는 전장의 풍광은 제2차 세계대전의 북아프리카 전선과 비슷하다.

그렇게 보자 <로그 원>의 말썽쟁이들이

제국군과 맞붙은 전장의 풍광도

처음 봤을 때 하고는 다르게 보였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의 북아프리카 전선을 다룬

영화들의 전투장면을 떠올렸었는데,

<와일드 번치>를 염두에 두고 보니

<와일드 번치>의 처절한 대결이 펼쳐지는 곳인

멕시코가 떠올랐다.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성향도

<로그 원>을 만들 때 <와일드 번치>를 참조했던 게 아닐까 하는

짐작을 그럴싸한 것으로 뒷받침해 준다.

그가 <로그 원> 다음으로 만든 영화인

<크리에이터>는 <지옥의 묵시록>을

SF 버전으로 풀어낸 영화였다.


<지옥의 묵시록>의 SF 버전인 에드워즈 감독의 <크리에이터>.


<로그 원>의 말썽쟁이들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 <와일드 번치>의 무리들처럼

신념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면서

<스타워즈> 시리즈를 보면서 받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뭉클한 감동을 관객에게 안겨준다.


반란군 한 명 한 명씩의 희생을

차곡차곡 쌓아

장렬한 최후로 이어지게끔 만든

<로그 원>의 구성은 빼어나다.

영화는 그들 각자에게

그들의 희생에 어울리는 예우를 바친다.

밉상 캐릭터였던 로봇 K의 최후조차 인상적이다.


희생 장면들은 하나같이 인상적이지만,

나한테 가장 강렬했던 장면은

견자단이 연기하는 임웨가 무전기를 켜러 가는 장면이다.

일본영화가 낳은 걸출한 캐릭터인 “자토이치”를 연상시키는

시각장애인 무사로 설정된 임에는

“나는 포스와 함께 하고 포스는 나와 함께 한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모든 것은 포스의 뜻이기에”를

독경하듯 읊조리며

광선이 빗발치는 전장 속으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포스가 자신과 함께 한다고 믿는 시각장애인 무사 임웨(견자단).


사방에서 쏟아지는 광선들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쿼터스태프를 짚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죽장을 짚고 만행에 나선 수도승이

깨달음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모습처럼 보인다.


임웨의 결연한 행동과 희생은

“포스”를 신봉하는

사이비 종교의 신도들을 다룬 시리즈 같은 느낌도

가끔씩 풍기는 <스타워즈> 시리즈에

경건한 종교적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이 장면은

스핀오프 시리즈 <아소카>에

은하계를 가로지르는 고래가 등장할 때처럼

내가 <스타워즈> 시리즈를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할 때마다

떠올리면서 위안거리로 삼고는 하는 장면이 됐다.


<로그 원>처럼 빼어난 작품이 나오는 게

예외적인 일이 됐다는 사실은

영화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하는 시리즈가 된

<스타워즈> 시리즈의 안타까운 점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문제는

시리즈가 시작된 직후부터

시리즈 자체가 거대한 사업이 되면서

이해관계자가 너무나 많아졌다는 것이다.

베이더가 다스리는 제국처럼

세력이 통제 불능 상태로 넓어지는 동안

한껏 사악해지고 탐욕스러워진 듯한 형국이다.

제국을 지탱하기 위해

꾸준히 만들어지는 스핀오프와 프리퀄 등의

퀄리티가 대체로 낮음에도

관성에 따라 실망스러운 작품이 양산되는 악순환이

일상화된 듯하다.

<로그 원>을 다시 보면서 희망하게 됐다.

“머나먼 은하계 저편”에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핀오프가

<로그 원>과 <만달로리안> 시리즈만 만들어진 후

<스타워즈>의 장대한 막이 내린

평화로운 우주가 있기를.

그리고 그곳에서는

포스가 우리와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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