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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철희 Jun 20. 2024

축축하고 서늘하게,
그러면서도 긍정적으로

어긋날 간, 괘 이름 간(艮)

한자(漢字) 연구의 권위자인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静)는

“눈(目) 아래에

‘뒤를 향한 사람’의 모습(匕비)을 붙인 글자”로 보면서

“사람에게 저주를 걸어

재앙을 입히는 힘을 가진 눈(呪眼)을 만나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물러나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후퇴(後退),” “패퇴(敗退)” 등에 쓰이는

물러날 퇴(退)”는 그의 설명이 타당하다는 걸 잘 보여준다.


退

과 쉬엄쉬엄 갈 착()”이 합쳐진 글자다.

책받침이라고도 부르는 부수 ()에는

“조금씩 나아가다가(조금 걸을 )

멈추어 서고()는 한다”는 뜻이 있다.


“艮”에 대한 시라카와의 설명을 따르자면,

“退”는 “조금씩 뒤로 물러나는 모습”인데,

주목해야 할 부분은 조금씩이다.

“退”라는 글자에는 후퇴를 하더라도

조금씩 물러나야지 황급히 도망가서는 안 된다

생각이 담겨있는 건 아닐까?


“艮”에는 멈추다어렵다한계 같은 뜻도 있는데,

“艮”이 “언덕”을 뜻하는 좌부변()과 결합돼 만들어진 한계 한()”

시라카와의 관점에서 보면

“언덕에 막혀 물러나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


“艮”은 앞에서 본 두 글자처럼

다른 글자와 결합해 새로운 뜻을 갖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艮” 자체로 쓰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艮”이 쓰이는 경우는

<주역(周易)>의 64괘 중 52번째 괘인 “간괘(艮卦),”

그리고 북쪽과 동쪽의 가운데 방위인

동북방(東北方)을 가리키는 간방(艮方)”이 대표적일 것이다.


<주역> 얘기는 너무 어려운 얘기니까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방위 얘기를 해보자.

한자문화권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의 밑바탕에 자리한 철학인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서

()은 물()과 겨울()에 해당하는 방위

()은 나무()와 봄()에 해당하는 방위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艮方

“얼었던 겨울 물이 녹으면서

봄을 맞이해 피어나려는 초목을 키워내는” 방향이다.

꽁꽁 얼었던 겨울 물이 녹아

봄에 피어나는 초목을 성장시키는 경로의 중간에 있는 방위가 艮方이다.


이라는 글자에는 艮方에 깃든 의미도 담겨있다

내 생각이 타당하다는 걸 보여주는 글자가

“木”과 “艮”이 결합한 뿌리 근()”이다.

시라카와는 

“나무뿌리가 쉽게 뻗을 수 없어 단단하게 부푼 곳”이라고 설명하지만,

나는 “根”은 앞서 설명한 “艮方”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믿는다.

“根”은 모름지기 나무뿌리는

“축축하고 서늘한 곳”에,

그러니까 “艮方”에 자리를 잡아야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 담긴 글자일 것이다.


“원한(怨恨)”, “한(恨) 풀이” 등의 단어에 쓰이는

한할 한()”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분하게 여기다,” “미워하다” 등의 뜻이 있는 

“마음”을 뜻하는 심방변()”과 “艮”이 합쳐진 글자다.

시라카와는

“나아가려고 해도 못 나아가고 물러날 때의 마지못한 마음”이라고 설명했는데,

이번에도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恨”은

우리 마음이 축축하고 서늘한 상태일 때를 가리킨다고 본다.

가슴속에 품은 서늘한 마음이 “恨”인 것이다.


“恨”은 부정적인 마음 상태이지만,

그렇다고 “恨”을 품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했듯,

“艮方”은 “겨울에서 봄으로 향하는 방향”이다.

“艮方”에는

추운 현재라는 현실과 푸르른 미래라는 희망의 가능성이 다 담겨있는 것이다.


“恨”이라는 글자에는

서러움과 원통함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경우,

그러니까 “서늘한 마음, 부정적인 생각”을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원영적 사고”로 승화시키면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뜻이 내포돼 있는 건 아닐까?


눈을 진찰하고 치료하는 “안과(眼科),”

눈에 쓰는 “안경(眼鏡)” 등에 쓰이는 글자인

눈 안()”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나는 “眼”에도 “艮方”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본다.

내 생각에,

()”은 눈의 생김새를,

그러니까 눈의 외부적인 모습을 가리키는 글자고

()”은 무엇인가를 보는 눈의 기능을 가리키는 글자다.

“눈의 기능 이상”을 진찰하고 치료하는 병원이

“목과(目科)”가 아닌 것도,

“무엇인가를 보는 데 도움을 주는 거울(鏡)”을

“목경(目鏡)”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艮方”의 관점에서 “眼”을 이해하면,

눈의 평소 상태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세상을 어떻게 보는 게 옳은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눈에 열이 나는 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눈은 되도록 서늘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눈에 나는 열은 식히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아가 세상을 뜨거운 눈으로 보는 건 피해야 한다.

이글거리는 눈, 핏발이 선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건

지나치게 감정적인 판단으로,

흥분에서 비롯된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은 세상을 되도록 서늘한 눈으로,

냉정한 눈빛으로 보고 판단하고 행동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관점이,

그러면서도 그 시선에는

봄을 맞이해 활짝 피어날 초목을 기대하는

긍정적인 기운이 반드시 담겨있어야 한다는

관점이 반영된 글자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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