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
그를 겨냥한 미사일처럼 날아오는 물체들의 정체는
남자의 물건 모양을 본 딴 전동 딜도였다.
금방이라도 피부를 뚫고 나올 듯한 굵은 핏줄 여러 개가 불룩불룩 튀어나온
그것들은 생김새는 엇비슷했지만 크기는 제각기 달랐다.
작은 것은 어린애 팔뚝만 했고
큰 것은 성인 남성의 팔뚝만 했다.
여러 인종의 물건을 대표하는 것들이라서 색깔도 제각각이었다.
까맣고 노랗고 하얀 딜도들 중 하나가
이사칠에게로 날아오던 중에 투명구름과 충돌하면서
구름을 원래의 작은 방울들로 쪼개놓았다.
앞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건 뚫고 나가겠다는 듯한 위용만으로도 압도적인데
부르르 떨어대기까지 하는 딜도 앞에서
눈물이 뭉쳐 만들어낸 구슬 같은 건 애초부터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선두에 선 딜도가 이사칠의 얼굴을 지나간 후
선실 벽을 때리면서 낮은 금속성 소리가 났다.
진로가 벽에 막힌 딜도는 방향을 돌리는 수영선수처럼 몸을 뒤집어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그것이 떠나온 출발점에는 그레이스 오(Grace Oh)가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아담한 크기의 알몸으로 울상이 된 그레이스 오가.
그리고 그 옆에는 발가벗은 그레이스와는 대조적으로
진청색 상의와 진회색 하의로 구성된,
어깨부터 발끝까지 몸에 착 달라붙는 “중력대응 스킨수트(skinsuit)”를 차려입은
버지니아 스타(Virginia Star)가 있었다.
슬렌더 체형에 팔다리가 길쭉길쭉하고 이목구비도 뚜렷해서 시원시원한 인상인 버지니아는
공중 여기저기에 카메라 여러 대를 띄워놓고는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미소중력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머릿속으로 떠올린 생각과는 다른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선실 벽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버지니아는 그럴 때마다 이사칠과 그레이스를 번갈아보며 멋쩍은 미소를 짓고는 했다.
그러나 쑥스러워하는 것도 잠깐일 뿐,
다부진 성격의 버지니아는 진지한 모습으로 다시 연습을 시작하고는 했다.
연달아 벽에 부딪힌 후 방향을 돌려 자신을 향해 몰려오는 딜도들을 바라보는 그레이스의 표정은
하늘이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이 지을법한 표정이었다.
딜도 여러 개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딜도 저글링은,
지금은 많이 망가졌지만 데뷔하고 몇 년간은
포르노배우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청순한 얼굴에
도자기처럼 새하얀 피부를 자랑하는 그녀가 가진 섹스 이외의 유일한 주특기였다.
아담한 체구의 아시아계 배우 그레이스 오의 존재를
팬들 뇌리에 깊이 새겨 넣은 특징이기도 했다.
그레이스의 작품을 보는 팬은
작품의 오프닝에 등장하곤 하는 저글링 묘기에 강한 인상을 받고 팬이 되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그레이스는 작품에서, 개인 인터넷 방송에서, 스트립클럽 무대에서
틈만 나면 이 묘기를 펼쳤다.
지구를 떠나기 전에 찍은 마지막 영상에서는
딜도 일곱 개를 저글링하는 데 성공하면서 개인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나이를 먹고 외모가 시들면서 출연 요청이 줄어드는 데다
그나마 들어오는 작품도 몸에 무리가 가는 하드한 콘셉트의 작품인 걸 보면서
배우 경력이 내리막이라는 걸 체감한 그레이스는
우주여행이 결정됐을 때부터
“인류 최초로 우주에서 생방송으로 송출하는 성인용 콘텐츠의 출연자”가 되는 것을 통해
경력을 오르막으로 돌려놓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그래서 세운 계획이
딜도 저글링으로 방송 첫머리를 장식해서는
기존 팬뿐 아니라 자신을 처음 접하는 팬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자는 거였다.
그런데 그녀는 야심에 지나치게 도취한 탓에
미소중력 상황에서 저글링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그때는 이사칠조차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리판단이 명확한 이사칠이 그 계획을 처음 듣고 “멋진 아이디어”라고 칭찬까지 한 건
귀신에 씌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이사칠은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그레이스의 계획은 세상만물이 중력의 영향 아래 움직이는
지구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칠은 자신이 착각했다고,
우주에서 저글링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될 거라고
그레이스에게 얘기했었다.
그랬는데도 미련을 못 버린 그녀는
직접 확인해봐야겠다며 평소처럼 딜도들을 허공에 던졌다가
당혹스러운 결과를 보게 된 거였다.
돌아오는 딜도들을 바라보는 그레이스의 표정에는
이사칠의 말이 옳았다는 걸 직접 확인하면서 느낀 난감함과 속상함이 섞여있었다.
“안 될 거라고 했잖아.”
이사칠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레이스를 달랬다.
“이제는 알겠지? 너무 속상해하지는 마. 저글링을 못해도 방송은 대성공할 테니까.”
그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저글링을 보여주면 더 끝내줄 거잖아, 오빠.
그레이스 오의 킬링 테크닉인데. 역사에 고스란히 기록될 건데...”
그렇게 툴툴대다 고개를 든 그레이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는,
딜도들에 의해 격파돼 뿔뿔이 흩어진 눈물덩어리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물방울의 정체를 눈치 채기 무섭게 그녀의 울상이 짓궂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오빠, 울었어?”
그레이스는 대답을 들으려는 생각도 없이 묻고는
한 마디를 덧붙이며 놀림의 강도를 높였다.
“또?”
이사칠은 이곳에서 한반도를 처음으로 내려다봤을 때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로 한참을 서럽게 눈물을 흘렸었다.
그때 곁에 있던 그레이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사칠의 모습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바로 특유의 장난기를 되찾고는
그가 흘린 눈물을 장난스레 손바닥으로 톡톡 쳐 가운데로 모았었다.
그레이스의 손바닥에 밀린 눈물방울들은
허공을 떠다니다 서로를 마주지차마자 반갑게 몸을 합쳤고,
이사칠의 눈물들은 그런 과정을 거쳐 야구공 크기의 눈물덩어리가 됐었다.
그렇게 이사칠의 눈물은 보여줬다.
미소중력이 지배하는 공간은
우리가 흘린 눈물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라는 걸.
저번에 느낀 슬픔은 지름 몇 mm짜리 슬픔이고,
이번에 느낀 기쁨은 지름 몇 mm짜리 기쁨인지를 알 수 있는 곳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