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화성인 247>

★ 01 ★

by 윤철희

이사칠은 허공에 띄워놓은 태블릿을 조작하며

생방송 준비 작업 현황을 점검하는 동안에도

곁눈질로 틈틈이 현창 너머를 살피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냉철한 이성은

역사에 길이 남을 생방송을 준비하는 작업에 몰두해도 모자란 판에

한눈을 팔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를 다그쳤다.

그렇지만 그의 심장에서 박동치는 뜨거운 감성은

지구본으로 보던 익숙한 지형이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현창 쪽으로

틈만 있으면 눈동자를 이동시키고는 했다.


어느 순간 태블릿 상단에 90분이 흘렀음을 알리는 알림창이 떴다.

조금 있으면 우주정거장 현창으로 한반도의 모습이 들어올 거라는 뜻이었다.

이사칠은 자신도 모르게 현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현창은 여러 색깔의 전선들이 노끈처럼 꼬여있고

갖가지 숫자와 그래프를 보여주는 모니터들이 곳곳에 설치된

선실의 한쪽 벽에 나있었다.

공기가 없으므로 소리도 없는 곳인 저 바깥의 고요한 우주를 보여주는 동그란 현창은

우주정거장 선내 생활의 갑갑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주는 숨구멍 같은 존재였다.


이사칠은 태블릿에서 손을 떼고는 현창 쪽으로 몸을 살짝 비틀었다.

이사칠의 손에서 풀려난 태블릿은 떠있던 자리를 얌전히 지켰다.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이후로 36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참이라 그런지

몸을 움직이는 데 관여하는 감각은

아직은 미소중력(microgravity)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현창 밖을 내다보는 자세를 제대로 잡으려고 몸을 살짝 틀겠다는 의도와는 달리,

힘이 많이 들어간 몸이 공중에서 바람개비처럼 빙빙 도는 바람에

현창 밖으로 보이는 지구도 빙빙 돌았다.


지구의 중력은 지상에서 400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도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중력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중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우주정거장이 빠른 속도로 궤도를 날면서 얻은 원심력이 지구의 중력을 상쇄하면서

미소한 정도의 중력만 작용하기 때문이다.

평생 지구의 중력에 길들여진 생활을 해온 이사칠 일행은 그 미소중력에 적응해야 했다.


선실 벽을 짚어 몸의 회전을 멈춘 이사칠은

손가락에 슬쩍 힘을 줘서는 몸의 위치를 조정했다.

처음 위치에서는 턱 쪽에 있던 한반도 북쪽이

그의 뇌리에 박힌 익숙한 이미지처럼 이마 쪽에 놓이도록 몸의 위치를 바꾼 것이다.

그러는 동안 현창은 근육질은 아니지만 통통 튀는 공처럼 탱탱하다는 인상을 주는

그의 몸뚱어리를 반사해 보여줬고,

그가 자세를 잡고 난 뒤에는

어렸을 때부터 “선하고 호감 가는 인상”이라는 말을 들은,

그가 보기에도 서글서글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여줬다.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이사칠이 지상에서 배운 선내 생활수칙을 다시 교육받고

일행에게 배정된 생활공간에 짐을 풀자 마자 득달같이 한 일이

현창으로 날아가 지상을 내려다보며 한반도를 찾은 거였다.

우주정거장은 지표면에서 400킬로미터 떨어진 궤도에서

90분에 한 번씩 지구를 돌았다.

현창을 통해 한반도를 하루에 16번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사칠은 90분이 지날 때마다 알리도록 태블릿 알람을 설정해놓고는

알람이 울릴 때마다 한반도를 내려다보려 애썼다.

그렇게 했는데도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기거나 하는 바람에

우주정거장이 한반도를 지나칠 때마다 한반도를 내려다보지는 못했었다.


그의 내면에는 한반도를 향한 거대한 허기가 있었다.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지낸 20년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악화된 향수병에 수반된 합병증 같은 허기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한 허기는

우주정거장이 한반도를 지날 때마다 그를 현창 쪽으로 억세게 잡아끌었다.


한반도가 오른쪽에서부터 현창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서둘러 왼쪽으로 향하더니 매정하게 현창을 빠져나갔다.

한반도의 매정한 행보를 보는 순간,

속에서 뭔가가 욱하고 치밀어 올랐다.

그가 태평양을 건넌 이후로 한반도를 떠올릴 때마다 느낀 복잡한 감정은

아무리 해도 달랠 수가 없는 거였는데,

“돌아가려고 갖은 애를 다 쓴 저 땅을 살아서는 밟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아쉬움까지 가세하자

그의 시야가 뿌얘지고 있었다.

이곳에 도착해 처음으로 한반도를 내려다볼 때 그랬던 것처럼

현창 너머의 모습이 출렁이고 있었다.

그의 냉철한 이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눈이 촉촉해지는 걸 느낀 이사칠은 당황하며 눈물을 막으려 했지만,

감성의 지배를 받는 눈물샘은

“다 큰 남자가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는

이성이 내리는 명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눈가에 물기가 차곡차곡 쌓였다.


우주에서 눈물은 뺨을 핥고 내려가지 않는다.

눈물이 중력에 끌려 아래로 흘러내리는 일은

미소중력 상황에서는 일어나지 않으니까.

여기에서 눈물샘이 쏟아낸 물기는

액체 특유의 표면장력 때문에 눈 주위에 쌓이기만 한다.

그러므로 우주에서 눈물은 흘리는 게 아니라 털어내는 것이다.


그의 눈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눈물 서너 방울은

자신들을 끌어내릴 중력이 찾아오지 않는 것에 당황한 것 같았다.

이사칠의 눈가를 떠난 눈물들은

갈 곳을 찾지 못해 공중을 느릿느릿 배회하다가

결국에는 허공에서 몸을 합쳐 꿀렁거리는 투명한 구슬이 됐고

그 구슬은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출렁거리게 만들면서

투명한 구름처럼 선실을 떠다니기 시작했다.


이사칠은 얼른 눈을 훔쳐 눈가에 다시 쌓이는 눈물을 털어냈다.

그러자 그 눈물들도 앞서 떠나간 투명구름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이사칠이 눈물덩어리를 쫓아 시선을 돌릴 때였다.

물체 여러 개가 부들부들 떨고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투명구름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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