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9 ★
몇 번의 심호흡으로 몸과 마음을 진정시킨 이사칠이 신호를 보내자
그레이스와 버지니아가
여러 각도에 배치된 카메라 다섯 대의 전원을 차례차례 켰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몇 달 있으면 ‘최초의 화성인’이 될 이사칠입니다.”
이사칠은 한국어 인사로 방송을 시작했다.
제작진은 이 이벤트를 한국어로만 진행할 거라고 사전에 고지했었다.
그러나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채 하루가 지나기 전에 이사칠이 방송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동영상이 공개되면 이사칠을 성원하는 팬들이,
보수를 한 푼도 받지 못하는데도
그물위키에 정보를 열성적으로 기재하고 바로잡는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이사칠이 지구를 내려다보며 한 말을
세상의 온갖 언어로 번역해 인터넷에 퍼트릴 테니까.
방송을 한국어로만 진행하기로 선택한 건
‘세상에서 비용은 제일 적게 들고 효과는 제일 좋은 홍보수단은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퍼뜨리는 입소문’이라는 점까지 감안해 내린 결정이었다.
이사칠은 입소문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이사칠이 미국의 주류(主流) 포르노업계 정착하는 데 무엇보다도 큰 역할을 한 것이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 퍼진 입소문이었다.
여배우를 지극정성으로 대하는 사람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특히 “여배우에게 쑥 냄새를 입히는 남자”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그와 공연하겠다는 여배우들이 늘어난 결과,
포르노배우로 성공하기에는 불리한 요소들이 많은 그는 업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인사를 마친 이사칠은 한껏 들뜬 목소리로 우주에 온 소감을 밝히면서
스킨수트에 박힌 “MS” 로고를 자랑스레 쓰다듬었다.
그의 들뜬 모습이 호들갑 떠는 것으로 비치지 않은 것은
순전히 오랜 동안 갈고닦은 연기력과 쌓아온 신뢰 덕이었다.
그런데 이사칠은 그레이스의 손을 떠난 딜도들이
등 뒤에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다는 건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상한 소리에 뒤를 돌아다본 이사칠은
딜도들을 발견하고는 빙긋 웃으며 태블릿을 조금 더 가까이 당기고는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이제 그의 인생이 밟아온 길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못 믿는 분도 계실 텐데,
저는 그물위키 ‘이사칠’ 항목을
이번에 사전조사를 하면서 처음으로 봤습니다.
평소에 그물위키를 검색하는 걸 즐기는 편인데,
저에 대해 정리해놓은 페이지는 들어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얘기가 많잖아요.
여기에도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적혀있었는데
다행히도 저를 응원하는 팬들께서 고쳐주셨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분들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이제부터 제 인생에 대해 숨김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미 몸뚱이 구석구석까지 다 보여드린 제가 더 숨기고 말고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사칠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는 숨길 게 많았다.
그의 인생만 놓고 보면 숨기고 자시고 할 게 없지만,
모든 이의 인생이 그렇듯 그의 인생은 오로지 그만의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살면서 많은 인연을 맺었는데,
그 인연들 중에는 자신의 존재나 사연을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터였다.
이사칠의 입을 통해 이름과 사연이 공개되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걸 원치 않을 사람이 많을 터였다.
그러니 그들과 관련된 내용을 일방적으로 밝히는 건 안 될 일이었다.
“아무튼 저는 정당한 근거 없이 저를 헐뜯는 말은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리고는 했습니다.
그런 말에 일일이 신경 써봐야 정신 건강에 좋을 리 없으니까요.
그물위키에 있는 정보도 마찬가지였는데,
큰맘 먹고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건
지구를 떠나는 마당에 틀린 정보는 바로잡고
부족한 정보는 채워놓고 가는 게 옳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제가 오류라고 밝힌 주장에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경우는
근거자료가 있는 곳을 알려드릴 테니까
우주에 있는 저 대신 확인해서 기록을 바로잡아주셨으면 합니다.
오늘 방송하는 내용과 관련해서 궁금한 게 있거나
제 얘기에 오류가 있으면 영상 하단에 있는 주소로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메시지를 보고 바로잡거나 추가할 내용이 있으면
다음 방송에서 그에 대한 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개요’ 꼭지부터 읽어볼까요?
한국 출신의 미국인.
동양인 남성은 신체적 불리함과 동양인 남성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 때문에
미국의 주류(mainstream) 포르노업계에 자리를 잡을 수 없다는 편견을 이겨내는 데 성공한
최초이자 (현재까지는) 유일한 포르노배우, 감독, 제작자.
‘K-포르노의 개척자,’ ‘포르노 한류의 선구자,’ ‘현자(賢者) 제조기,’
‘속칭 이사칠 정신의 실천가,’ ‘속칭 이사칠 능력의 소유자,’
‘경직된 유교 사상에 찌든 고루한 꼰대들이 지배하는 한국사회는
절대로 품을 수 없는 희대의 아티스트’로 불리는 한편,
흔히들 ‘이사칠 운동’이라고 부르는 ‘한국의 포르노 합법화’를 주장하면서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으로부터 극단적으로 갈리는 평가를 받는 망명 예술가.
‘자진모리’와 ‘휘모리’처럼 한국 전통음악의 장단 이름을 붙인 섹스 테크닉을 개발해
전 세계에 보급한 한국문화 전도사.
포르노배우를 지망하는 (남녀를 불문한) 한국인들의 업계 진출을 돕는 취업 브로커(?).
우주정거장에서 성인용 콘텐츠를 생방송으로 송출한 인류 최초의 인물이 될 예정이다.”
첫 부분에 등장하는 ‘미국인’이라는 단어 옆에는 주(註)가 달려있었는데,
그 위에 커서를 올리면 별도의 창이 열리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떴다.
“한국 국적과 미국 국적을 모두 가진 이중국적자인데,
미국 국적을 취득한 시점과 경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없다.”
이사칠은 사전조사 과정에서 이 내용을 확인하고는
미국 국적 취득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기로 결정했었다.
미국 국적은 그가 이 일을 합법적으로 해나가는 데 필요한 행정적·법적 요건일 뿐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국적 취득 과정을 설명하려면 앨리스 원더 얘기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앨리스 원더 얘기를 꺼내는 건 그에게도 에밀리에게도 가슴 아픈 일인데다
고인이 된 앨리스를 위해서라도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은근슬쩍 국적 문제를 뛰어넘고는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