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8 ★
방송의 성패에 천문학적 금액과
이사칠 자신이 오랜 세월 공들여 쌓아온 평판이 달려있기에
방송을 효과적으로 홍보하는 건 필수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이사칠은 지상에서 방송을 준비하는 동안
지구상 최고의 홍보전문가들을 확보하려 했지만
일은 마음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포르노업계와 엮이는 걸 꺼리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상 최고 수준에는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의 전문가들 중에
포르노업계와 일하는 걸 흥미로워하면서 조건부로 참여하기로 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그들도 사회적 위신이 실추되는 걸 염려한 까닭에
가명을 쓴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들이 그런 식으로라도 참여한 것도 이사칠에게는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19금 콘텐츠의 성격상 활용할 수 있는 홍보채널에 극심한 제약이 가해졌지만,
그들은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짜냈다.
〈스페이스 너바나〉가 놀라운 규모의 유료 시청자를 확보한 것은
그들이 세계 곳곳의 많은 사람들에게 방송을 알리고
더 많은 유료 시청자를 확보하려는 활동을 열정적으로 전개한 덕분이었다.
이사칠은 방송을 반드시 성공시켜 그들의 노고에 보답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홍보전문가들이 제안한 이벤트 중 하나가
이사칠이 그물위키에 등재된 ‘이사칠’ 항목을 읽는 동영상 시리즈였다.
그물위키는
한국어로 기록되는 위키(Wiki) 스타일의 인터넷 백과사전 중에서 제일 대중적인 사이트인데,
이벤트의 내용은 그곳의 ‘이사칠’ 항목에 기재된 내용을 읽으면서
정보의 옳고 그름을 확인하는 한편,
오류가 있을 경우 그걸 바로잡는 내용의 동영상을 찍어
날마다 동영상 플랫폼에 올리는 거였다.
이 이벤트는 〈스페이스 너바나〉를 홍보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이사칠 자신이 지구에서 살았던 인생을 정리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물위키에 접속해 회원으로 가입하는 사람은
누구나 1달의 유예기간만 지나면
그물위키에 등재된 내용을 수정하고 편집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는데,
그런 특성 때문에 그물위키에는 모두 옳은 정보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중요한 정보가 모두 기재돼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의도적으로 기재한 그릇된 정보가 올바른 정보를 밀어내는 경우도 많았다.
이사칠은 지상에 있을 때는 그물위키의 ‘이사칠’ 항목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어떤 내용이 기재돼있을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선뜻 방문할 수가 없었다.
보기 싫은 내용이, 피하고 싶은 내용이 있을까 두려워서였다.
그가 피하려는 것은 올바른 정보에 바탕을 둔 정당한 비판이 아니었다.
포르노배우를 향한 혐오감에서 비롯된 근거 없는 비난과 증오심에 물든 그릇된 정보였다.
세상에는 그를 혐오하고 비난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 중에 그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내용을,
악의적으로 왜곡한 올바른 내용이나 의도적으로 지어낸 그릇된 내용을
그물위키에 올리는 사람이 없을 리 없었다.
그가 사람들의 비난과 비방을 겪을 만큼 겪은 끝에 내린 결론이
“괜히 읽었다가 상처를 입게 될 가능성이 있는 글은 아예 읽지를 말자”는 거였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그를 비난하는 사람만큼이나 그의 편에 서서 성원하는 팬도 많았다.
그를 헌신적으로 지지하면서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에 맞서는 팬이 많다는 건
든든하고 뿌듯한 일이었는데,
고맙게도 그런 팬들은 그물위키에 기재된 오류와 악담을 꾸준히 찾아내 바로잡았다.
그렇지만 팬들이 아무리 열심히 활동하더라도
그물위키의 ‘이사칠’ 항목에 항상 옳은 정보만 기재돼있도록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그물위키 읽기 이벤트는
“상처를 입게 될 가능성이 있는 글은 아예 읽지를 않는다”는 다짐을 깨면서 진행하는 이벤트였다.
이사칠이 다짐을 깨면서까지 그물위키를 읽기로 마음먹은 건,
지구를 영원히 떠나는 마당에
자신이 지상에 남긴 모든 자취를
온 세상이 다 보는 앞에서 올바르게 정리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연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이름이 거론되는 걸 불편해 할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등의 이유 때문에
속내와 사정을 모조리 다 털어놓을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는 객관적 사실과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번 기회에 되도록 많이 알리기로,
그렇게 해서 당대와 후대의 지구인들에게
‘한때 지구에 살았다 화성으로 떠난 이사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정확히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남들이 정리해놓은 그의 인생에 대한 글을 읽는 건
궁금증에 가슴 설레는 일인 동시에
잊고 있는 끔찍한 얘기가 적혀있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한 일이었다.
이사칠은 그물위키에 접속해 검색창에 “이사칠”을 입력한 후
자신의 삶을 정리한 글을 보여주는 태블릿을 허공에 띄워놓았다.
리허설을 치른 직후의 차림새 그대로,
즉 알몸 상태인 그레이스와 스킨수트를 착실하게 차려입은 버지니아가
그를 겨냥한 카메라들 뒤에서 그의 신호에 따라 카메라를 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 신호를 보내려던 그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에요, 오빠?”
옆 선실에 있던 에밀리가 서둘러 날아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이사칠의 심장박동이 급격히 빨라진 걸 보고는 놀라서 확인하러 온 거였다.
이사칠은 자기도 모르게 심장이 있는 위치를 더듬었다.
스킨수트 밑에 있는 새끼손톱보다 작은 센서가 느껴졌다.
이벤트 방송을 준비하기 전에 에밀리가 따뜻하면서도 꼼꼼한 손길로 붙여준 센서는
여전히 그 자리에 붙어있었다.
“아무 것도 아냐.
남들이 쓴 내 인생 얘기를 읽으려니까 갑자기 감정이 격해졌나봐.
사람들 앞에서 살아온 얘기를 하려니까 겁이 나기도 하고.”
우주에 온 이후로 감정이 변화하는 진폭이 꽤 커진 것 같았다.
평생 살던 지상하고는 생판 다른 환경에 와있다는 기분 탓인지
미소중력이 지배하는 비좁고 삭막한 공간에서 받는 스트레스 탓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사소한 자극에도 몸과 마음이 반응하는 정도가
지상에서보다 유별나게 심해진 건 사실이었다.
방금 전에 심장박동이 급격히 빨라진 것은
그런 요인에다 남들이 정리해놓은 자기 인생을 대면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라는
심리적 요인이 겹친 탓일 터였다.
모든 사실을 허심탄회하게 밝히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여러 사정 때문에 그렇게 못하는 현실이 주는 스트레스도 적잖았다.
대중 앞에서 자신의 끼를 보여주는 직업이 다 그렇듯,
포르노배우도 과장된 사실과 허황한 전설, 솔깃한 재밋거리로
매력적인 이미지를 빚어내고 포장하고 퍼뜨리는 직업이다.
그렇게 해서 대중의 호감을 이끌어내고 인기를 모아야 하는 직업이다.
불리한 진실이 드러날라치면 모르는 일이라는 듯 시치미를 떼면서
사람들이 눈길을 다른 쪽으로 돌리게끔 만들어야 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진실도 거짓이라고 부인해야 하고
어떤 때는 거짓을 진실인 양 꾸며야 한다.
사람들 머리에 환상을 심어줘야 한다.
설령 거짓이라는 걸 알더라도 절대로 그걸 거짓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은 환상을.
100퍼센트 진실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싶은 환상을.
이번 기회에 솔직하게 인생을 정리하겠다는 다짐과
여태껏 쌓아온 경력과 위상에 흠집을 낼만한 이야기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현실은
이렇게 충돌하면서 이사칠에게 큰 부담감을 안겼다.
그러나 그건 반드시 이겨내야 하는 부담감이었다.
그물위키를 읽고 바로잡는 작업은
그가 걸어온 길을 길잡이 삼아 따라올 후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지도를 남기는 작업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앞서 걸었던 그가 겪은 시행착오를
뒤에 따라올 사람들이 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험난한 길을 먼저 걷는 사람의 도리라는 게 이사칠의 신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