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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가 대성할 거라는 근거는 여러 가지였는데,
무엇보다도 버지니아는 눈치가 좋았다.
상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본능이 굉장히 뛰어났다.
방금 전에 이사칠에게 커피를 건넨 것도 그런 사례에 속하는데,
버지니아가 말했듯
상대 배우와 (또는 배우들과) 팀을 이뤄 작업해야 하는 이 직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는 본능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같이 일하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 노력은 물질적인 것을 베풀거나 건네는 것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그녀는
말 한 마디나 작은 몸짓에서도 상대를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이 묻어나는 사람이었다.
조금 전에 이사칠에게 보여준 밝은 웃음도 그랬다.
삐딱한 눈으로 보는 사람의 눈에는 영업용 웃음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영업용 웃음조차 제대로 안 짓거나 못 짓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설령 버지니아의 미소가 진심에서 우러난 게 아니더라도,
적어도 버지니아는 그게 진심에서 우러난 웃음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는 있는 사람이었다.
이사칠은 간만에 제대로 휴식을 취하려고 현창으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를 삼키며 내려다본 지상에는 아라비아반도가 있었다.
한반도를 보려면 30분쯤 지나야 한다는 뜻이었다.
향긋한 향기가 연상되는 수풀의 녹색을 보고 싶었는데,
그 지역을 대표하는 색깔은 황량한 벌판과 메마른 사막의 황토색이었다.
이사칠은 척박하기는 해도 드넓은 저 땅 덩어리에 사는 사람이 몇 억 명은 될 텐데
여기에서는 저기에 사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볼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신이 인간에게 무관심한 것은
이곳 우주정거장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계신 그분의 눈에는
인간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싶었다.
메마른 대지의 황토색과 그곳을 덮은 구름의 흰색이 안겨주는 묘한 안정감과
체내에 들어온 카페인이 발휘하는 효력 덕에 이사칠은 절로 한숨을 쉬었다.
우주여행이 결정된 1년 반 전부터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제일 많이 신경 쓴 건 역시 생방송을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이사칠은
지상에서 작품을 찍을 때도 팬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으려고,
팬들의 기대 수준을 넘는 작품을 내놓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이었다.
포르노 촬영장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사람들이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라고 반문할만한 일은
실제로 다 일어난다고 봐도 좋다.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건 민감한 신체부위들이 관련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사칠은 지상의 촬영장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카메라를 끄고 상황을 말끔하게 정리한 다음에
다시 카메라를 켜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면서
뒤에 이어지는 장면을 촬영했었다.
그러고 나서 편집실에서 편집의 마술을 발휘하면 만사 오케이였다.
여러 개의 진짜들을 오려내고 절묘하게 이어 붙이면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가 만들어지고,
그렇게 편집의 마술을 거친 영상은 보는 사람의 눈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25분 분량으로 예고된 생방송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저지른 실수는 크건 작건 고스란히 방송을 탈 것이고
자신들을 우주적인 규모로 흥분시켜줄 방송을 고대하던 팬들은
뜨겁게 달궈지던 와중에 느닷없이 찬물을 뒤집어쓴 쇳덩어리 신세가 됐다고 느끼면서
실망할 것이다.
상황의 심각성에 따라서는 팬들이 지불한 시청료 전액을 환불해야 하는
암담한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생방송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모조리 파악해 정리한 후
각각의 변수에 대한 방지책과 대처 방안을 하나하나 모색하는 식으로
생방송 전체를 철저히 장악해야 했다.
다행인 건
이사칠이 생방송으로 구현하려는 작품에 대한 비전을 확실히 갖고 있다는 거였다.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철저히 꿰뚫고는
각자가 최고의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게끔 만든다.
반면에 자신이 만들고 싶은 작품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그저 “팬들을 한껏 흥분시키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막연한 소망만 품고
무작정 덤벼드는 제작자나 연출자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잔뜩 애먹이고서도 팬들을 흥분시키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이 설마 있으랴 싶겠지만,
희대의 걸작을 만들겠다고 큰소리 뻥뻥 쳐놓고는
막상 촬영장에서는 망연자실해하는 감독이 적지 않다.
구체적인 연출 지시가 내려지기를 기다리는 제작진의 모든 눈과 귀가
자신의 입에 쏠려있는데도
카메라를 무슨 목적을 위해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조차,
언제 어떻게 카메라를 움직여야 하는지조차 정하지 못하고
연기 지시도 구체적으로 내리지 못하는 감독에 대한 얘기는 포르노업계의 단골 가십이다.
이사칠 자신도 그런 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하는 처지였다.
그렇지만 목표가 확실하고 거기에 도달하겠다는 의지가 굳건하면,
가는 도중에 길을 잃더라도 원래의 길로 돌아오려고 헤매는 어려움은 겪을지언정,
마침내는 그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는 게 인간 세상의 변치 않는 진리다.
지금 이사칠은 적어도 이번 생방송에서 만들 작품에 대한 비전만큼은 명확하게 품고 있었다.
그 점은 걱정할 게 많은 이번 생방송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안심할 만한 구석이었다.
이사칠이 그런 생각에 잠긴 사이에도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계속 바뀌고 있었다.
중동지역은 어느 덧 현창 밖으로 사라졌고,
지금 현창을 통해 보이는 곳은 인도아대륙이었다.
이사칠은 인도아대륙 주위에 여러 나라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지도에는 선명하게 표시돼있을 국경선이
우주에서 내려다보는 이사칠의 맨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사칠이 그나마 구분할 수 있는 지형은
아대륙의 오른쪽 위에 짙은 색으로 도드라진, 흰색을 얹고 있는 히말라야산맥밖에 없었다.
이사칠은 ‘히말라야’는 ‘눈(雪)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라는 걸 알았다.
세상만물은 이름을 갖는다.
히말라야처럼 이름이 붙는 대상의 특징만 건조하게 묘사하는 이름도 있지만,
이름이 붙는 대상이 훗날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긴 이름도 많다.
포르노배우라는 직업의 특징이자 장점 중 하나는
자신의 이름을 직접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짓는 주체가
부모님이나 발명자, 발견자인 게 일반적이라는 걸 감안하면
자기 이름을 직접 짓는 건 대단한 특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대단한 특권이라는 것을,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이름을 무성의하게 짓는다.
뜨내기처럼 이 세계에 발을 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났다가는
이 세계를 못 잊고 복귀하면서 다시금 별 생각 없이 새 이름을 짓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포르노업계에는 예명이 여러 개인 사람이 많다.
이름 짓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에는 자신이 태어나거나 거주하는 도시의 길거리 이름을 예명으로 삼는 게
업계 관행이었다고 들었다.
지금도 그런 식이라면 이사칠의 성(姓)은 “을지”나 “충무,” “테헤란” 같은 게 됐을지도 모른다.
이사칠은 그런 사람들을 하찮게 여겼다.
이 바닥에 진득하게 자리 잡고 활동할 사람이라면
예명을 짓는 데 정성을 듬뿍 들여야 한다는 게 이사칠의 생각이었다.
이름은 팬들이 그 배우를 볼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단어이자
각각의 배우를 다른 배우들과 차별화시켜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