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K-포르노의 선구자가 화성으로 가는 까닭은

<화성인 247> ★ 13 ★

by 윤철희

이사칠은 여배우에게도 인상적인 이름이 중요하지만,

남배우의 이름은 여배우의 그것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포르노는 이성애자 남성을 겨냥해서 제작되는데,

그런 작품에서 여배우의 이름은 반드시 표시되고 강조되지만

남배우의 이름은 크레디트에 오르지 않거나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게 일반적이다.

여배우의 외모에 홀린 팬들은 여배우의 이름은 어떻게든 기억하지만,

남배우는 장수하거나 유별난 특징이 있지 않는 한 기억되지 않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이사칠은 남배우로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인지도를 높이려면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사칠이 포르노배우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고 제일 먼저 한 게

예명에 대한 고민이었던 이유가 그거였다.

예명을 짓기 위한 이사칠의 고민은 석 달 가까이 계속됐다.


이사칠은 우선 예명을 짓는 데 적용할 다음과 같은 원칙부터 세웠다.

자신의 존재를 팬들의 뇌리에 직관적으로 꽂아주는 이름이어야 한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름이어야 한다.
듣는 사람이 피식 웃게 만들 익살스러운 농담거리로 삼기에

적당한 정도의 허세와 유머가 느껴지는 이름이어야 한다.

다른 배우들과 차별화되는 이름이자

동명이인이 나오기 힘든 독창적인 이름이어야 한다.

검색하기 쉬운 이름이어야 한다.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글로벌한 감성에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어야 한다.


이사칠은 석 달 동안 “크다,” “길다,” “강하다,” “오래 간다”는 느낌을 폴폴 풍기고

발음하기도 쉬운 온갖 단어를 조합해 수천 개의 예명을 지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세운 원칙들을 엮어 만들어낸 체에 그것들을 넣고 걸렀는데,

그 체를 너끈히 통과한 이름은 하나도 없었다.

한국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이사칠의 신체적 장점을 강조한 이름들은

글로벌한 감성이 묻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기됐고,

독창적이면서 검색하기도 편한 이름은

한국적인 감성이 느껴지지 않고 기억에 오래 남지도 않는다는 이유로 버려졌다.


일자리를 찾아 온종일 에이전시들을 순회한 이사칠이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쿰쿰한 모텔방에서

후보로 검토했지만 체에서 걸러진 예명이 적힌 메모지를 구겨서는

앞서 그런 운명을 겪은 메모지가 가득한 쓰레기통에 던져 넣을 때였다.

소리를 낮춰 틀어놓은 TV에서 흘러나온 광고 멘트가 귀에 꽂혔다.

무슨 상품을 홍보하는 광고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24 hours a day, 7 days a week”라는 문구를

하나님께서 내리는 계시처럼 경건하게 발음하는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를,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을 때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훑고 지나간 짜릿한 전율을

이사칠은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할 것이다.


247.

이사칠.

포르노배우의 이름으로 쓰면 그 이름의 소유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누구나 대번 이해할 수 있는 이름.

팬들 머리에 곧장 꽂히고는 이후로도 뇌리에 깊이 뿌리 내릴 이름.

독창적이고 특이한 이름.

죽을 때까지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조금도 잃고 싶지 않은 이사칠의 의사를 반영한 이름.

“twenty-four seven”이 아닌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옮긴 “e-sa-chil”로 표기해도

외국인들이 발음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이름.

동양인이 다른 인종에 비해 신체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길이나 굵기 대신

다른 인종에 비해 우수하다고 여겨지는 끈기와 지구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름.

“항상” 쾌락을 선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


인터넷에서 논란이 된 ‘이사칠’의 진짜 의미에 대해서는

예명을 정할 당시의 이사칠도 물론 고민했었다.

아주 잠깐 동안만.

그런데 “사람들이 물으면 두 의미 중 어느 쪽이 진짜라고 대답할까?”라는

고민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

이건 전혀 고민할 거리가 아니라는 걸 번득 깨달았다.

이사칠 입장에서 최고의 선택은

양쪽 주장에 대해 ‘옳다,’ ‘그르다’는 의견을 표명하지 않고

모호한 입장을 유지하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사칠이 지어낸 허풍 섞인 예명을

100퍼센트 진실이 담긴 이름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두 집단이 충돌해 벌이는 논쟁이

결말이 지어지지 않은 채로 한없이 이어지는 것은,

남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경이로운 능력을 상상하게 만들 여지를 주는 것은

팬들이 이사칠의 존재를 꾸준히 떠올리고 추앙하게 만드는 기막히게 좋은 상황 전개였다.


그물위키에 적혀있듯,

이사칠은 데뷔하고 3년 동안은 이름의 영어 표기를 ‘247(e-sa-chil)’로 표기했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겨 굳이 숫자를 병기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이름의 영어 표기가 한국어 발음을 알파벳으로 그대로 옮긴 거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고 판단됐을 때,

이사칠은 예명에서 숫자를 떼버리고 ‘e-sa-chil’만 남기기로 했다는 광고를 제작해

포르노업계 전문지와 포르노 사이트에 게재했다.

포르노배우가 예명을 변경했음을 알리는 광고를 게재하는 것은

업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서 이런 행보도 이사칠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잘 지은 예명이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이사칠이 지금의 위상에 도달한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데뷔 이후로 꾸준히 기울여온 노력이었다.

따지고 보면, 예명을 짓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렇지만 좋은 의미가 담긴 예명을 짓고

그 예명이 제시하는 이미지를 결코 배신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엿보이는 활동을

열정적으로 펼친 것이 지금의 이사칠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잘 지은 예명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이사칠이 지구에 남겨놓을 걸출한 유산이 될 거라 자신하는

버지니아의 예명을 짓느라 반 년 가까이 고심한 이유도 그거였다.

버지니아를 본 사람은 누구나

그녀가 유명한 영화배우 제시카 리(Jessica Lee)를 쏙 뺐다고 말했다.

유명인 중에 닮은 사람이 있으면

그 유명인의 인기에 편승하려고 비슷한 이름을 예명으로 쓰는 게

포르노업계의 일반적인 관행이다.

버지니아의 경우,

별 생각 없는 에이전시라면 ‘Jessica Lee’와 철자는 다르지만 발음은 똑같은

‘Jessika Lee’나 ‘Jessica Leigh’를 예명으로 쓰자고 제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칠은 생각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런 예명은 당장은 짭짤한 효과를 낼 편한 선택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버지니아의 이미지를 제시카 리의 틀에 가두면서

창창한 앞길을 가로막는 장해물이 될 거라 판단했다.

이사칠이 생각하기에 업계에 발자취를 남길 거물이 되려면

남의 이미지에 편승해서 재미를 보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과 존재감으로 승부를 걸어야 했다.


게다가 그녀는 에이전시에 연락해 면접을 거치고

법이 요구하는 서류에 서명한 후

자의적으로 포르노에 출연하는 거라는 사실을 입증하면

곧바로 현장에 투입돼 데뷔하는 평범한 배우가 아니었다.

1년에 걸친 고달픈 훈련을 받고

위험천만한 우주왕복선에 승선해 우주로 와서는 데뷔작을 찍는 배우였다.

이전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길이 없는 기회를,

아마도 이후의 역사에서도 유례가 없을 엄청난 기회를 거머쥔 배우였다.

그러니 그녀의 예명은

그녀가 온갖 고초를 이겨낸 끝에 맞이할 밝고 위대한 미래를 담아낸 이름이어야 했다.

이사칠은 자기 예명을 지을 때보다도 더 깊이, 더 오래 고심했다.

그랬는데도 무릎을 칠만한 이름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이사칠이 발 디딜 곳을 찾기 어려울 만큼 어질러진 사무실에서

기다란 벽을 덮은 화이트보드에 빼곡하게 적힌 예명 후보를 하나씩 살필 때였다.

잠시 피곤해진 눈을 비비고 커피를 들이켠 이사칠이 잔을 내려놓는 순간

테이블에 놓인 버지니아의 이력서에서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었다.

‘출신지’ 항목에 적힌 단어였다.


‘Virginia.’

포르노배우의 이름에 ‘Virgin(처녀)’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을 때 발생하는

묘한 아이러니가 마음에 들었다.

거리의 이름이 아닌 주(州)의 이름이라는 점에서

이름이 상기시키는 규모도 마음에 들었다.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버지니아 주가 주정부 차원에서 불쾌하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일부 생각 없는 사람들이 분기탱천해서 사회적 논란을 부추기는 일이

만약에라도 일어난다면 홍보 측면에서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터였다.


이사칠은 ‘버지니아’라는 이름에

‘Star’라는 단어를 성(姓)으로 붙이기로 했다.

우주에서 ‘스타’로 빛나는 배우로 데뷔한 뒤에 지구에 강림한 후 ‘스타’가,

그것도 ‘슈퍼스타’가 되라는 바람이 담긴 단어였다.


그렇게 ‘버지니아 스타’라는 예명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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