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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정거장에 온 이후로 이사칠과 그레이스는 하루에 한 번씩,
이사칠과 버지니아는 반나절에 한 번씩 리허설을 했는데,
꾸준한 리허설은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참말이라는 걸 확인해줬다.
세 사람이 취하는 자세와 동작이
리허설을 하고 또 하는 동안 일취월장하면서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이사칠은 여기 와서 처음 리허설을 할 때만 해도
생방송 퍼포먼스가 가능하기는 할런지 눈앞이 깜깜했었지만
일행의 사기를 생각해 내색을 하지는 않았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물리적 법칙이 까마득히 높게 쌓아올린 냉혹한 성벽 앞에서 좌절하고는
무릎을 꿇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사칠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을 인류의 선봉에 서서 인류를 더 나은 미래로 안내할 길을 찾아낼
척후병 같은 존재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막중한 사명감으로 무장한 그가 이 정도 시련에 무릎을 꿇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가 무릎을 꿇는 건 화성 이주에 성공한 후
화성을 발판 삼아 드넓은 우주를 개척하겠다는
인류의 원대한 꿈과 희망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짓이었다.
그는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굳게 다지며 리허설을 거듭했다.
그러자 두텁고 암담한 먹구름 사이로 눈부신 서광이 한 줄기씩 비치기 시작했다.
리허설에 매진하면 방송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될 거라는 자신감도 서서히 차올랐다.
그렇지만 이사칠은 자만심을 경계했다.
이사칠이 생각하기에 자신감을 더욱 키워나가는 원천은
끝없는 리허설과 알찬 준비 작업밖에 없었다.
지금껏 해온 것처럼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해나가면 생방송도 문제없을 터였다.
버지니아도 〈스페이스 너바나〉 시리즈의 1편이 방송된 후 열흘 뒤에 있을 데뷔 방송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펼쳐 팬들의 눈도장을 확실하게 받고
벼락처럼 스타로 등극하겠다며 열심히 연습한 결과 제법 근사한 자세가 나오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미소중력에 적응해서는
베테랑 배우들이나 취할법한 자세를 어렵지 않게 취하는 적응력과 학습능력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이사칠의 안목은 결코 틀린 게 아니었다.
그레이스도 버지니아의 앞날은 창창할 거라고 다시 한 번 인정했다.
이사칠은 자기 일에만 신경 쓸 뿐 남의 일에는 일절 관심이 없는 사람인 그레이스가
뜻밖에도 버지니아를 신경 써서 챙기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레이스에게 “왜 안 하던 짓을 하느냐?”고 묻자 그레이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정말 크게 될 애잖아요.
지금 이렇게 베풀어놔야 혹시라도 내가 정말로 어려울 때
조금이라도 더 떳떳하게 손을 벌릴 수 있지 않겠어요?
쟤 하는 걸 보면 맺고 끊는 게 확실한 성격이라 쉽지는 않겠지만,
목숨 걸고 우주여행을 함께 하면서 데뷔에 도움을 준 선배 부탁까지
매몰차게 거절할 만한 애로는 보이지 않아요.”
이쪽 선실에 오는 일이 좀처럼 없는 에밀리도
MS 단원으로서 수행하는 업무의 특성을 보면
세 사람과 함께 리허설을 한다고 볼 수 있었다.
아니, 리허설하는 세 사람보다 더 업무에 몰두해서는 세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이사칠 일행이 여기까지 와서 생방송을 할 수 있도록 해준 업무를.
에밀리는 옆 선실에 있는 이사칠이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방금 전에 이사칠과 그레이스가 한 리허설에서 얻은 많은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랑이 듬뿍 실린 이사칠의 시선에 끼어들어
에밀리의 모습을 출렁거리게 만드는 게 있었다.
방금 전 리허설 동안 두 사람이 흘린 땀방울이었다.
이사칠 일행이 여기 온 이후로 리허설을 마치자마자 열심히 하는 일이
공중을 떠다니는 땀방울을 회수하는 거였다.
그냥 놔둬도 시간이 지나면 정수시스템으로 끌려가 선실 밖으로 사라질 테지만
땀방울 수십 개가 선실 이곳저곳에 떠있는 건 어딘지 모르게 찝찝한 일이었다.
그런데 우주정거장에서 액체는 휴지로 닦아낼 수가 없다.
휴지로 닦아지지가 않으니까.
액체에 휴지를 갖다 대면 액체가 휴지에 젖어드는 게 아니라 휴지를 감싸버린다.
그래서 세 사람은 리허설을 마칠 때마다 플라스틱 용기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땀방울을 담아서는 정수시스템으로 가져가 투입하고는 했다.
땀방울을 모은 용기를 버지니아에게 넘긴 이사칠은
앞으로 살아가려면 물기를 닦아내는 사소한 일조차도
지구와는 다른 여건에 적응해야 하는 현실을 다시금 곱씹어봤다.
미소중력에서 이렇게 움직이던 액체는
중력이 지구의 40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화성에서는 어떻게 움직일까?
어떻게 움직이건 그 상황에 처하면 또 다시 적응해야 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환경에 적응해온 역사다.
중력의 굴레 아래에서 익히고는 유전자에 각인해 넣어
인류의 번식 가능성을 한껏 높이는 데 이바지한 본능적인 감각과 동작은
미소중력 아래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미소중력 환경은 그 환경에 어울리는,
그 환경에서 인간의 생존력과 번식력을 최적화해줄 섹스를 요구할 것이다.
이사칠 일행은 그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서 헌신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