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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철희 Jun 27. 2024

"나"는 손에 창을 쥔 존재다

창 과(戈)

인류의 역사는

무기 개발과 개량의 역사로도 볼 수 있다.

인간은 육체적 능력이 인간보다 뛰어난

사나운 짐승들을 물리치고 사냥하기 위해

무기를 만들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무기의 방향을 같은 인간들 쪽으로 돌리면서

역사를 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

인간이 유사 이래 오랫동안 써온 대표적 무기 중 하나다.

우리가 흔히 “창”을 연상할 때 떠올리는 무기는

긴 막대기 끝에 날카로운 쇠붙이를 부착해서

적을 찌르는 데 사용하는 무기다.

그런데 “槍”의 종류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

긴 막대에 양쪽 날이 다 날카로운 칼을 매단 창으로,

이 글자가 방패 순()”과 짝을 이루면

“어떤 방패라도 뚫을 수 있는 창과

어떤 창이라도 막아낼 수 있는 방패”가

만나는 경우를 일컫는 모순(矛盾)”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

창촉이나 칼날이 일자(一) 형태가 아니라

옆으로 뻗은 꼴의 창으로,

전차를 몰고 벌이는 전투에서

적을 걸어 당기고는 베는 데 사용하던 무기였다.


<삼국지>에서

여포가 즐겨 쓰는 무기가 방천화극(方天畵戟)인데,

()”

“矛”나 “槍”에 “戈”를 합친 복잡한 형태의 무기다.


한자가 만들어지고 정착되던 시대에

많이 사용된 창의 종류는 “戈”였던 것 같다.

이 글의 소재로 삼을 만큼

“戈”가 들어가는 한자가 많은 걸 보면 말이다.


나라 국()”을 들여다보면 “戈”가 들어있는데,

본래 “나라”를 뜻하는 글자는 혹 혹()”이었다.

“사방의 경계”를 뜻하는 “口”와

“땅”을 뜻하는 “一”을

창(戈)을 들고 지키는 것이

“나라”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인데,

이 글자가 나중에

혹시나 누가 우리나라에 침입해 오는 건 아닐까?”라는

맥락의 글자로 쓰이면서

“나라”를 뜻하는 새 글자가 필요해지자

그 글자에 다시 “口”를 더해

“경계”의 의미를 더 확실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별도의 글자인 “國”자가 만들어졌다.


싸울 전()”

홑 단()”과 “戈”가 합쳐진 글자다.

“單”은 뜻이 여러 개 있기 때문에

별도의 글을 써서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글자인데,

“戈”와 결합해 “戰”이 될 때 “單”의 뜻은

“윗부분에 깃털장식 두 가닥을 붙인 타원형으로 된 방패”다.

그러니까 “戰”은

방패와 창을 들고 싸움에 나선 모습을 표현한 글자다.


다섯 번째 천간(天干)인 ()”

경계할 계()”에도 쓰이는 “戈”가 들어있는 의외의 글자는

돈 전()”이다.

“금전(金錢),” “동전(銅錢),” “엽전(葉錢)” 등

“돈(money)”를 가리키는 글자에

무기인 “戈”가 들어있는 건 조금 의아해 보인다.

“戈”를 위아래로 겹쳐놓으면

“여러 개의 창을 쌓아놓은 모양”을 가리키는

쌓일 전()”이 되는데,

“金”을 쌓아놓은 것이

“돈”이 아니겠느냐는 식으로 만들어진 글자인 듯하다.

“돈”이라는 게

“돈을 가진 사람에게

여러 개의 창을 들이대고 뜯어내는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글자인 듯도 하고.


내가 “戈”에 관한 글을 쓰자고 마음먹게 만든 글자는

나 아()”다.

()으로 창()을 잡았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한 “我”가 들어가는 글자는

자아(自我)”부터 시작해서 꽤 많다.

“나”라는 존재 자체를 잊을 정도로

어딘가에 몰두하면 몰아(沒我)”의 상태나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지게 된다.


“我”라는 글자를

“내 외부에 있는 존재로부터

나를 지켜내기 위해 창을 든 존재”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 글자가 설명해주지 않는 부분은 꽤 많다.

이 글자는

어디까지가 나고 어디서부터가 남()인가?”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건

언뜻 보기에는 무척이나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이 질문에 선뜻 대답을 내놓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살면 살수록 느끼게 된다.


나와 같은 편인 아군(我軍)”을 식별하는 것도,

“적과 나”를 가리키는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것도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은

체내에 침입해 우리 몸에 피해를 주는

병균이나 바이러스를 가려내 퇴치하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면역시스템이 피아 식별을 제대로 못할 경우

우리 자신을 외부세력으로 여기면서

공격하는 바람에 발병하는 자가면역질환에 시달릴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를 제대로 규정하고

彼我”의 경계선을 명확하게 긋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인 동시에 어려운 일이다.


한편,

옳을 의()”에 대해서는 고심을 거듭하게 된다.

제사상에 올려진 양(羊) 고기를 바라보는 “나(我)”와

“옳음”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답을 내기가 쉽지 않다.

라는 글자의 밑바탕에 깔린 구성 원리에 대해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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