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禪僧)들은 매미처럼 허물을 벗는다

홑 단(單)

by 윤철희

“홑 단(單)”

“단독(單獨)” “단수(單數)” 등의 단어에 쓰이는 것에서 알 수 있듯

“하나,” “홑”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單”은 “홑”이라는 글자의 뜻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오랑캐 이름 선,” “꺼릴 탄,” “경솔한 모양 전”이라는 다양한 뜻과 음을 가진 글자이기도 하다.


“單”의 자원(字源)에 대한 대표적인 설명은

“끝이 두 가락으로 갈라진, 타원형으로 된 방패의 모양”을 본 따 만든 글자라는 것이다.

“單”과 “창 과(戈)”를 나란히 놓은 글자가 “싸울 전(戰)”이 된다는 건

앞서 “戰”을 다룬 글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戰”의 글자 구성을 보면,

고대 동양권에서 전투에 나서는 병사는 반드시 창과 방패를 소지했을 거라고 추론해 볼 수 있다.

“單”의 자원에 대한 다른 설명으로는

병사를 보호하는 방패가 아니라

“상대를 공격하는 데 쓰인 무기”를 본 딴 글자라는 것도 있다.

상대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데 쓰이는 투석기의 일부를 그린 글자라는 것이다.


방어용 방패가 됐건 공격용 투석기가 됐건,

“單”이라는 글자가 “창(戈)”과 결합하면 “戰”이 되고

“활 궁(弓)”과 결합하면 “총탄(銃彈),” “탄약(彈藥)” 등에 쓰이는 “탄알 탄(彈)”이 된다는 걸 감안할 때

“單”에는 싸움과 관련된 의미가 내포돼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글자가 어째서 “혼자,” “홑” 등의 뜻을 갖게 됐는지는 분명치 않다.

앞에서 얘기했듯,

아마도 병사 한 사람이 갖추는 최소한의 무장이 그렇다는 데에서 유추된 뜻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單”을 소재로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는

“單”과 “벌레 훼(虫)”가 결합된 글자인 “매미 선(蟬)” 때문이다.

“單”이라는 글자를 보고 있노라면,

어딘지 모르게 매미처럼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옛날사람들도 매미하고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單”과 “虫”가 합쳐진 “蟬”에 “매미”라는 뜻을 부여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蟬”이 상형문자에서 비롯된 글자일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지만,

매미를 가리키는 글자(蟬)에 “單”이 들어간 데에는 다른 연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의 근거는 “單”에는 “홑옷(한 벌의 옷)”이라는 뜻도 있다는 것이다.
여름철에 나무에 매미가 벗어놓은 반투명한 허물이 달려있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매미는 그렇게 “그가 걸친 한 벌의 옷”인 허물을 벗는 곤충이라는 점에서

“蟬”이라는 글자가 생겼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유학이 지배적인 학문이던 옛날 동양사회에서 “매미”는 꽤 높은 평가를 받는 곤충이었다.

옛날 유학자들은 매미가 지혜(文), 맑은 것만을 먹는 맑음(淸), 염치(廉), 검소함(儉), 믿음(信)의

다섯 가지 덕목(五德)을 가졌다고 봤다.

임금이 쓰는 왕관과 관모를 “익선관(翼蟬冠)”이라고 불렀던 것도

“매미”에 대한 유학자들의 높은 평판을 반영한다

익선관의 양옆에 솟은 뿔이 매미와 닮아서 그렇게 불렀다는 시각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내가 “매미 선(蟬)”에 주목하는 것은

매미가 듣는 높은 평판 때문이 아니라

허물을 벗는 매미의 특징 때문이다.

“참선(參禪),” “좌선(坐禪)” 등의 단어에 들어가는 글자인 “봉선 선(禪)”을 보라.

무슨 글자들로 구성돼 있나?

그렇다.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쓰이는 제단을 가리키는 글자인 “보일 시(示)”와 “單”이 합쳐져 있다.

득도와 해탈을 추구하는 선승(禪僧)들이 수행하는 “參禪”을 가리키는 글자인 “禪”에

어째서 “單”이 들어간 것일까?


일부의 주장에 따르면,

“禪”은 본래 고대 동양에서 왕족이 산천의 신에게 지내던 제사를 뜻하는 글자였는데,

불교가 전파된 후 “번뇌를 끊고 ‘홀로’ 진리를 탐구한다”는 의미에서 지금의 뜻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 주장의 옮고 그름 여부와는 무관하게,

나는 “禪”이라는 글자는

“참선 수행”이 “禪”을 수행하는 이가 자신이 입고 있는 “한 벌의 옷”을 허물을 벗듯

꾸준히 벗어가는 행위라고 보는 시각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내 시각에서 보면,

“참선 수행”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하늘에 있는 드높은 존재 앞에서 허물을 벗고 또 벗는 매미처럼

자신이 걸친 “가짜 자아”라는 홑옷을,

각자가 “자아”라고 믿고 있는 존재를 둘러싸고 있는 홑옷을 벗고 또 벗어던지면서

“진정한 자아”에,

어쩌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空)”에 도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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