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화성인 247>

★ 32 ★

by 윤철희

아무튼 나를 알아본 그가 반갑다는 표정을 짓는 걸 보고는

나를 아는 체하면서 악수를 청하거나 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곤혹스러워할 찰나였다.

그는 곧바로 시선을 다른 팬들에게로 돌렸다.

정체를 감추려 안간힘을 쓰는 나를 배려한 처사인 게 분명했다.


영화가 끝나고는 멍한 상태로 숙소로 돌아온 뒤였다.

LA에 있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이사칠의 작품을 보러 왔다는 말을 하기 쑥스러워서 연락도 안 하고 LA에 온 거냐?”고 타박한 지인은

어찌어찌 안면이 있는 사이인 이사칠이

나한테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했다.

제의를 수락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무엇보다도 궁금했다. 무슨 생각으로 그 작품을 만든 것인지.


그가 그 작품으로 돈을 벌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상당한 제작비가 들 테지만

극장에 오래 걸릴 리가 없으니 입장료 수입은 변변찮을 것이고

기껏해야 온라인 서비스나 극히 일부만 구입하는 DVD 판매수입이

그 작품으로 벌어들일 수입의 전부일 테니까.


그도 그 사실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지폐다발을 불태우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을 왜 그리도 열심히 한 걸까?

결국 제일 그럴듯한 대답은 “나름의 작품세계를 구현하기 위함”이었는데,

그게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이른바 “그가 지향하는 작품세계”에 대해서도 직접 듣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는 이사칠이 “포르노 합법화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하고

그를 지지하는 여론이 급등하면서

포르노를 둘러싸고 양분된 국내 여론이 치열하게 충돌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포르노 합법화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인 내가

LA에서 그와 식사를 했다는 게 알려지면 합법화를 지지한다는 오해를 받게 될 터였다.

그래서 나는 호의에서 비롯됐을 그의 제의를 거절하고는

출국했을 때처럼 조용히 귀국하는 쪽을 택했다.


글이 자꾸 샛길로 샜는데, 아이맥스 얘기로 돌아가겠다.

이 리뷰를 쓰려고 그 작품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는데...

하아... 그 작품을 감상한 경험은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뭐라 형언하기 힘든,

이사칠과 그의 작품에 대한 입장만큼이나 선명한 입장을 표명하기 어려운 경험으로 남아있다

그 작품은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지만,

다른 스크린으로 그걸 감상하는 경험은 아이맥스로 감상하는 것과는 다른 경험이므로,

그리고 아이맥스 버전에 대한 기억이 왜곡되는 일이 없도록 일부러 감상하지 않았다).


장대한 비주얼로 웅장한 영상미를 보여주는 아이맥스는

포맷 자체의 특성상 자연 다큐멘터리에 주로 사용되고

극영화에서는 스펙터클한 액션신을 위해 이용되는 포맷이다.

그런데 이사칠은 관객을 압도하는 용도로 활용되는 이 포맷으로

열정적으로 몸을 섞는 남성과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집중적으로 찍었다

(따지고 보면, 섹스도 액션이기는 하다).


앞을 가로막는 건 무엇이건 날려버리는 무시무시한 위력의 허리케인,

객석을 덮칠 듯한 기세의 폭발과 시뻘건 화염과 질주하는 차량을 보여줘 관객을 압도하는

광대한 아이맥스 스크린에 영사된

인간의 하체에 있는 부위들이 격렬한 액션을 펼치는 광경을 보는 경험은,

내 키보다 서너 배는 큰 크기로 확대된 거대한 남성의 성기가 좌우로 격하게 움직이는 걸 보는 경험은,

볼록하게 튀어나온 핏줄과 번들거리는 피부와 점막을 보는 경험은,

쥐어짜는 목소리로 짧은 사전경고를 보낸 뒤에

순식간에 튀어나와 화면을 가득 덮는 끈적거리는 흰색 액체를 보는 경험은,

더불어 거기에 동반된 교성과 인간의 맨살과 맨살이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를

공들여 가다듬어 구현한 사운드를 듣는 경험은...

하아... 뭐라 말해야 옳을까?


굳이 내 감정을 글로 옮겨야 한다면,

지나치게 남발되는 표현이라 거부감까지 드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초현실적’이라고 표현하는 정도가 어울릴까?

(그가 카메라를 향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성기를 보여주는

3D영화를 찍는다는 결정을 하지 않은 걸 고마워하는 심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날 그 자리에서 무슨 반응을 보여야할지 몰라 망연자실한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객석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몇 안 되는 사람이 기계적으로 박수를 쳤지만,

산발적인 박수소리는 객석을 짓누르는 침묵에 깔려 어느 틈엔가 형체를 찾을 길이 없었다.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적나라하게 그린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을 처음으로 본 19세기 프랑스의 관객들과

〈네이키드 나이트: 아이맥스 버전〉을 보는 그 자리의 관객들 중에서

더 당혹스러워 한 쪽은 어느 쪽일지 아직도 궁금하다.

귀국한 뒤,

그날 극장에서 본 평론가들과 은밀히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그들의 심정 역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화 감상의 충격에 몽롱해진 상태로 태평양을 건너오는 동안 내 머리를 지배한 의문이 있었다.

“이사칠은 왜 많은 돈을 들여가며 아이맥스 포맷으로 노골적인 정사 장면을 찍은 걸까?”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아이맥스 포르노로 남을 작품을 만든

괴팍한 사람으로 기록되겠다는 허영심 때문에?

인간의 신체와 섹스는

다큐멘터리에 담긴 자연현상만큼이나 웅장한 것이라는 걸 강조하려고?

섹스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라고 주장하려고?

섹스는 격렬한 카체이스나 슈퍼히어로가 발휘하는 초인적 능력만큼이나

스펙터클하고 위대한 행위라는 걸 역설하려고?

자신은 하찮은 포르노배우이자 감독이 아니라,

우리의 신체와 행위를 세상이 여태껏 보지 못한 크기로 보여주는

새롭고 실험적인 경험을 관객에게 안겨주려는 예술가라고 주장해서

인정을 받으려는 인정 욕구 때문에?


그의 의도가 마지막 질문이었다면, 그는 어느 정도는 성공한 셈이었다.

나를 비롯한 다른 평론가들 모두의 의견은

“적어도 도전적인 실험정신만큼은 높이 산다”는 거였으니까.


내가 그 경험으로 알게 된 건

포르노에 등장하는 은밀한 신체 부위의 크기가 실제 부위의 크기를 과하게 넘어서면

인간은 거부감을 느낀다는 거였다.

우리는 포르노를 스마트폰으로, 태블릿으로, 벽걸이 TV로 소비할 수는 있지만,

신체를 엄청나게 확대해 보여주는 아이맥스 스크린을 통해

욕정을 해소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포르노는 영상 기술이 발전하기 전인 1960년대나 70년대에는 극장에서 상영됐지만,

그건 적절한 크기로 포르노를 볼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었다.

VCR의 보급과 더불어 포르노 상영관이 빠르게 없어진 이유 중에는

“그 부위들의 크기” 문제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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