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민주주의를 둘러싼 동상이몽
지난해에 전북과 광주에서 ‘학교자치조례’가 제정되었고, 요즘에는 각종 토론회와 포럼 등에서 ‘학교 자치’ 또는 ‘학교 민주주의’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부뿐만 아니라 시도교육청에서 신설된 ‘민주시민교육과(팀)’의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이를 체감하기에는 아직은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정책 제안뿐만 아니라 앞서 실천하고 있는 주체들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며, 현실적인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학교 자치’를 처음 접하는 경우 ‘자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학교의 구조적인 문제로 제한된 자치권이 보장될 뿐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학교의 예산에 대한 권리나 인사에 대한 권리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온전한 ‘자치’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자치’를 통해서 학교의 의사소통 과정이 민주적으로 변화하거나 교육과정 운영의 혁신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기대한다. 이를 위해 학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자율권을 확대하고 ‘학교 자치’를 둘러싼 다양한 생각을 공론화하여 교사, 학부모, 학생, 지역사회가 실제적인 문제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길 바란다.
2019년~2020년 교육청과 청주교대연수원에서 ‘민주시민교육 교원 역량강화연수’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연수 프로그램 중 ‘학교 민주주의 동상이몽’이라는 프로그램은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한 첫 단계로 학교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15개의 상황을 재구성하여, 학교 민주주의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들을 드러내어 토의해보는 활동이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 위함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확인하고 나누어보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학교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요소로 [법과 제도적인 부족함]보다는 학교 구성원의 내부 문화적인 측면인 [자발성과 공공성이 부족한 학교 구성원의 태도]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토의가 진행되고, 이야기를 나눌수록 현장의 많은 교사들이 학교가 더 민주적이길 바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장에게 권력이 집중된 현 학교 시스템(학교장-교사의 관계)이 민주적이길 원하며, 교육청의 일방적인 지침보다 학교 자체적인 판단이 더 중요하게 반영되길 원한다. 하지만 스스로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길 두려워하기도 하며, 구성원들과의 갈등과 업무의 부담감, 피곤함을 감수하면서까지 ‘학교 자치’를 원하지 않는 상반된 결과를 드러내기도 한다.
충북의 ‘학교 자치조례’ 제정을 둘러싼 담론도 앞의 내용과 비슷하다. 많은 교사가 학교 구성원들의 자발성과 민주적 의사소통을 위해 관련된 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 자치조례’가 학교 민주주의에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구성원들의 자발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는지와 같은 ‘학교 자치’를 둘러싼 다양한 동상이몽이 존재하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해 학교 구성원들에게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충북형 혁신학교(행복씨앗학교) 1기가 시작되었을 때, 교사들이 수업과 생활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혁신학교에서 ‘업무지원팀’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 ‘업무지원팀’의 효과가 보이자, 각 학교에 ‘업무지원팀’을 구성하도록 교육청은 권장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업무지원팀’의 필요성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학교는 ‘업무지원팀’을 해체하고 다시 이전의 돌아가거나 세세한 업무분장표로 교사 간 갈등을 줄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런 결과의 요인으로는 불필요한 학교 업무를 없애지 못한 점, 쏟아지는 공문을 학교의 비전과 철학에 맞게 재구조화 할 수 있는 ‘업무지원팀’의 권한이 약하거나 없던 점, ‘업무지원팀’ 구성과정에서 형식적으로 접근한 점 등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느끼는 ‘학교 자치조례’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학교 자치조례’가 학교 구성원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발성과 민주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률적인 근거가 된다는 인식보다는 또 다른 업무로 다가오는 경향이 있다. 또한 학교 자치조례가 실행된다고 가정하면 단위학교에서 필수적으로 조직하고 구성해야 하는 구조와 시스템은 소수의 ‘중간리더’들에 의해 형식적으로 쉽게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변화된 시스템이 교사와 학생의 삶에, 교육과정 및 수업에 의미 있게 다가오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즉, 학교 현장에서 ‘학교 자치’가 실제로 반영되는 과정은 결국 학교 문화적인 측면의 변화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학교 자치’를 실현할 때 단위학교에서 준비해야 하는 것은 학교공동체의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다. 단위학교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비전이 무엇이고, 이 비전을 위한 어떤 교육 활동이 이루어지는지 교사·학생·학부모 간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런 공감대가 형성되기 위해서 학교 구성원들은 학교 교육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교육과정을 협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민주적인 과정은 때로는 어렵고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다. 혼자서 묵묵히 주어진 일만 수행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이고 편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학교공동체의 비전을 구성원과 공유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체계와 시스템을 고민해야 하고, 구성원들의 ‘학교 자치역량’을 높이고자 하는 것일까? 그것은 단위학교의 비전과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고 실현할 수 있는 주체는 ‘교육청’이 아니라 바로 그 학교 구성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의 교육 활동에 대한 계획과 실행, 이를 위한 결정권이 구성원들에게 이임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교 교육 활동의 핵심은 교육과정 운영이다. 학교공동체가 추구하는 교육목표가 교육과정을 통해 구현되기 때문에, 학교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철학이나 가치관을 교육과정에 어떻게 녹여내는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교육과정에 대한 결정권은 여전히 국가가 가지고 있고, 대부분 학교가 정형화된 교육과정을 실행하고 있다. 물론 교육과정 운영에 지역화 교육과정을 구성하면서 다양성을 보장하고 있고,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생각보다 많은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운영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사회적 통념상 교과서 중심의 수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교과서를 활용하지 않고, 교육과정을 재구성했을 때 학부모의 민원으로 오히려 위축되는 사례도 많은 편이다.
그렇다면 ‘학교 자치’ 측면에서 교육과정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우선 단위학교와 교사가 전문적인 자율성을 갖고 교육과정 편성 운영, 평가에 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학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한된 권한의 ‘자치’가 실행되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학기 초 진단평가 시기나 교육과정 평가 시기가 되면, 교육청의 지침이나 공문에 의해 그 방향이 결정되는데 해당 학교의 철학과 비전, 교육과정 운영 철학과 부딪히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 이런 경우 ‘학교 자치’의 담론에 따르면 학교 교육이 교육청의 지침이나 공문에 의해 학교 교육과정이 결정되어서는 안 되지만, 단위학교에서는 사실상 교육청의 지침을 거부하기 어려운 구조가 존재한다. 그래서 학교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숙의 과정을 통해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 즉, ‘학교 자치’에 대한 법률적 조치가 필요하다.
학교 구성원들의 ‘자치역량’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그리브스와 풀만은 인적 자본, 사회적 자본, 의사결정 자본을 합하여 ‘전문적 자본’이라고 표현하였고, 이를 학교의 ‘자치역량’으로 해석하고 있다. 인적 자본은 교사의 수업과 생활교육에 따른 전문성을 말하며, 사회적 자본은 학생·학부모·지역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존중과 신뢰 등을 말하며, 의사결정 자본은 학교 구성원과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합리적인 판단과 집단지성, 구조적인 성찰과 반성 등을 말한다.
그럼 학교 구성원들의 ‘자치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우선적인 과제는 무엇일까?
첫째, 교사들의 민주적인 교육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전문성이 필요하다. 학교에는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 다양한 의사결정 단위가 존재한다. 학교장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사결정의 주체이며, 교감, 교무, 연구, 학년 부장 중심의 협의체에서 학교의 주요한 사항을 결정하고 실행한다. 그런데 이런 의사결정 구조와 체계가 얼마나 민주적일지, ‘소통’이라는 과정이 소수의 리더가 결정한 내용을 잘 안내하고 전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결국, 학교에서 교사들의 협의체는 학교장과 소수 리더의 권력을 낮추고 보다 많은 구성원이 참여하는 ‘권력의 재분배’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교사들의 협의체에서는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학교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또한, 구성원들의 민주적인 협의 과정 그 자체가, 학교의 비전과 철학을 구현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신뢰를 쌓아야 한다.
둘째, 우리 사회가 민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시민들의 참여가 담보되어야 하듯이 ‘학교 자치’도 학생, 학부모, 학교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참여가 기본 토대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구성원들의 참여를 어떻게 학교의 시스템과 제도로 구현할 수 있는가이다. 이는 단순히 ‘학생회’나 ‘학부모회’가 법제화된다고 해서 실현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학교자치회’를 조직하여 교사, 학생, 학부모 대표들의 협의체를 형식적으로 구성하고 운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학생들의 참여를 얼마나 보장해줄 수 있는지, 학부모의 참여와 교사들의 권한을 어느 선에서 정리할 수 있는지 등 다양한 실제적인 문제들이 정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 자체가 단위학교에서 민주적인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정원]의 저자인 에릭 리우는 ‘사회는 정원이고 시민은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라고 이야기하며 정원을 효율적으로 가꾸려면 비옥한 토양과 적당한 일조량, 그리고 물과 같은 제대로 된 환경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가 뿌린 씨앗을 지속해서 살피고 비료를 주며 양분을 공급하려는 애정 담긴 의지, 그리고 그 정원에 있어서 안 될 잡초에 대한 단호한 의지가 필요하다.
학교를 하나의 정원이라고 한다면 책에서 말하는 ‘정원사’는 바로 ‘학교 자치’를 실행하는 주체들을 의미한다. 훌륭한 정원사는 절대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정원사’라고 할 수 있는 주체들이 어떤 도구(학교의 철학, 문화, 시스템 등)를 가지고 가꾸는가에 따라서 정원의 모습이 달라진다.
그런데 ‘학교 민주주의’ 또는 ‘학교 자치’에 대해 교사들이 느끼고 있는 생각과 이미지는 다를 수 있다. 많은 교사들이 학교가 지금보다는 더 민주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변화의 대상은 자신이 아닌 타자라고 생각하는 때도 많다. 따라서 ‘학교 자치’가 가능하고 더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서로가 가진 다양한 생각들을 드러내어 이야기 나누어보는 과정이 지속해서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관련 법적인 근거가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