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보디우먼>이란 유럽 영화를 함께 상영 중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나는 멍하게 비내리는 스크린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안개 속 텅빈 풍경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 영화라는 것이 이토록 어려울 수 있구나. 줄거리와 상관없이 이미지와 사유를 담을 수 있는 거라면 한 번 해봐도 좋겠단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다.
아주 오랜 뒤, 그 영화가 <identificaion of a woman>이란 멋진 제목을 가진, 세계적인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70대에 만든 영화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되던, 점프컷에 가까운 편집은 상영시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수입사에서 막 잘라냈기 때문이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