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렐 마더스' 리뷰
시간은 우리에게 늘 기회를 줬다.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 용서할 기회,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할 기회까지. 하지만 인간은 늘 어리석게도 그 시간 앞에 고개 숙이지 않고 반성하지 않고 계속 시간 위에 죄로 쌓은 역사를 남겨두었다. 그렇게 청산하지 않은 죄의 탑은 와르르 무너져 다시 우리를 다치게 하고, 부서진 돌덩이는 현재의 시간을 망치고야 만다.
평행선을 잇는 엄마들
사진작가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즈)는 법의학 인류학자 아르투로(이스라엘 엘레할데)와 함께 자신의 고향에 있는 집단 무덤의 유해를 발굴하고 싶어 한다. 그곳에는 야니스의 증조부를 포함하여 스페인 내전으로 희생당한 이들이 암매장되어 있다. 그러다 아르투로의 아이를 가지고 혼자 출산을 준비하던 야니스는 같은 병실에서 어린 산모 아나(밀레나 스밋)를 만난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딸을 낳은 두 사람은 깊은 유대감으로 이어진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패러렐 마더스’는 개인의 시간을 역사적 성찰로 확장시키는 영화다. ‘뒤바뀐 아이’라는 고전적 주제와 역사적 트라우마라는 이질적인 주제를 평행선이 아닌 하나의 길 위에 둔다. 그리고 우리가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엄마와 아이가 탯줄로 이어지듯 개인의 혈관은 역사의 시간과 기억으로 이어져 있다고 말한다.
영화 속 야니스의 직업은 사진작가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야니스를 통해 작가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냐에 따라 피사체가 달라지듯, 역사적 진실을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을 영상에 옮긴다. 우리의 미래가 될 아기 앞에서 어른들은 꼭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점은 아이가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안게 된 두 엄마의 선택이다. ‘패러렐 마더스’는 그녀들의 선택을 통해 우리가 역사적 진실 앞에서 해야 할 일들이 어떤 것인지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야니스는 키운 아이를 놓칠 수 없어 진실을 숨겼지만, 스페인 내전에 희생된 증조부의 죽음이라는 역사적 진실을 드러내려 한다. 그녀가 자신의 거짓말을 고백하는 순간, 평행선 같던 개인사와 역사가 교차점에서 만난다.
감정의 과잉 없이 담담하고 낮은 목소리로 전하는 알모도바르의 이야기는 격앙된 소리보다 더 깊은 파동으로 마음에 전달된다. 앞서 울거나 뒤서서 오열하는 법 없이 두 엄마를 하나의 탯줄로 잇는 방식으로 사람을 보여준다. 읊조리는 나지막한 목소리처럼 인물들을 바라보는 카메라도 분노하거나 드잡이를 하는 대신, 덤덤하다.
탯줄로 이은 역사
‘패러렐 마더스’는 핏줄 혹은 탯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야니스는 영화 속에서 수차례 유전자 검사를 한다. 처음은 자신의 친자 확인을 위해, 다음엔 아나의 친자 확인을 위해 그리고 마지막에는 억울하게 죽은 선조들과 살아남은 이웃들을 이어주기 위해 유전자 검사 키트를 들고 한 마을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오직 나만의 핏줄만이 소중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야니스와 아나가 서로의 아이를 나눈 마음으로 동반자의 삶을 택한 것처럼 ‘페러렐 마더스’가 이야기하는 핏줄은 개인적 유전자로서의 피가 아니라 나의 뿌리가 되는 역사의 핏줄이다. 그렇게 알모도바르는 개인사와 역사를 평행선이 아니라 이어지는 동그란 삶으로 바라본다.
‘패러렐 마더스’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스페인 내전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조금 더 알 필요가 있다. 1936년 스페인 군부 쿠데타로 인해 내전이 벌어졌다. 프랑코의 반정부군은 정권을 잡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스페인 국민들을 학살했다. 우리의 역사도 그랬지만, 권력이 휘두른 폭력은 누구에 의해서도 뚜렷하게 청산되지 않아서 여전히 오랜 상흔으로 남았다.
‘패러렌 마더스’는 너무 무겁고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배우들의 내밀하고 섬세한 연기 덕분에 공감하며 볼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페넬로페 크루즈와 밀레나 스밋은 구구절절한 사연 속에서 앞서 오열하는 대신, 마음의 소동을 정리하고 관객을 설득한다.
사실 우리 모두 역사가 만든 잘못을 되짚고, 짓밟힌 사람으로서의 존엄 앞에서 모두 고개를 숙였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억하고,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과거가 저지른 잘못이지만 속죄하는 마음으로 현재의 모습을 봐야 한다. 그리고 역사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개인의 존엄을 파괴하고 그 가치를 잊었던 과거는 부끄러운 유령이 되어 현재를 떠돈다. 누군가는 해야 할, 누군가는 반드시 이어가야 할 기억과 속죄, 그리고 인간의 존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것이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다시 되짚고 속죄해야 할 시작이라는 이야기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침묵의 역사란 없다. 그들이 아무리 태워버리고 아무리 부서뜨리고 아무리 거짓말해도 인류의 역사는 침묵하지 않는다.’
영화의 엔딩에서 알모도바르 감독은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명문장을 인용해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을 관객들에게 더욱 뚜렷하게 각인시킨다. 나의 친조상은 아니지만, 억울하게 죽은 오랜 선조들의 시체를 원형 그대로 발굴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정성을 다한다. 선조들의 시신이 발견된 모습 그대로 누워있는 후손들의 모습은 그 어떤 뜨거운 포옹보다 더 뜨겁고, 그 어떤 사과보다 절절하다.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영화에세이집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