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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최재훈 Dec 07. 2023

내 생각에 가끔 아버지는 [      ]

ep 4.

첫 번째 답변을 적고 보니 두 번째 질문이 이어진다. 


2. 내 생각에 가끔 아버지는 [           ]


두 번째 질문부터 덜컥댄다. 상담 선생님은 재빠르게, 떠오르는 대로 답을 하라고 했지만 아버지와 함께 한 기억이 별로 없어,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둔 이야기가 거의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 보았던 ‘스타워즈 5: 제국의 역습’ (1980년)을 같이 봤던 기억은 지워지지가 않는다. 

태어나서 처음 극장이란 곳을 갔다. 주말 저녁, 엄마와 누나 없이, 오직 아버지와 나만 극장을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사람들 틈에서 놀라 아버지의 팔을 꼭 잡았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을 가본 적이 없었다. 

훗날에 스크린이라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된 커다란 하얀 막은 고개를 높이 쳐들고, 고개를 최대한 좌우로 움직여야 다 볼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컸다. 

비디오 플레이어나 ott가 있던 시절이 아니어서, 극장이 아니면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주말의 명화’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1편 ~ 4편까지의 ‘스타워즈’ 시리즈는 보지도 않았는데 껑충 ‘5편’을 왜 보여주려 했을까?  

사실 어린 나이였고, 사람들이 왜 싸우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뭔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심오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정도는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너무 충격적이라 머리속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어쩌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를 처음으로 의심했던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루크 스카이워크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던 갑옷 아저씨, 다스 베이더는 죽기 직전에 이렇게 말한다. 


‘I am your father.’


아버지는 저렇게 아들을 해치려는 사람이구나. 

아들은 끝내 아버지를 죽이고서야 자유로워지는 거구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아들의 칼싸움은 그렇게 마음의 흉터가 되었다.

아마 막연하게 아버지와 나는 절대 친해질 수 없을 거라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신화’라는 것을 배웠을 때 ‘스타 워즈’ 시리즈가 가부장제의 가면을 뒤집어쓴 사내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스 베이더는 검은 철 가면을 뒤집어쓴 채 왜곡된 남성성 혹은 영웅의 이미지에 갇힌 아버지를 상징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의 진짜 표정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두 번째 문장을 써본다.


2. 내 생각에 가끔 아버지는 [철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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