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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최재훈 Nov 10. 2023

뭔가를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ep.3

총 50개의 문장이 있다. 

첫 번째 문장을 완성해 본다. 


1. 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을 때 [나는 내가 뭔가를 잘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이상한 일은 참 많았다. 내 기분과 상관없이 어린 시절의 하루는 엄마의 기분에 맞춰 시작된다. 엄마가 기분이 좋으면, 우리 가족은 기분이 좋아야 했고 엄마가 기분이 나쁘면, 모두가 바닥을 기어야 한다. 

그건 학교를 가서도 마찬가지다. 담임 선생님의 기분에 따라 학급의 분위기가 정해진다. 히스테리를 부리는 날에는 이빨을 드러내어 웃는 일은 가급적 들키지 않아야 한다. 큰 소리를 내어 뛰거나, 소동을 부리는 일도 삼가야 한다. 

월컹대는 하루의 시작은 늘 그들의 기분에 따른다. 그런 공기를 읽고 그 공기에 충분히 젖어들지 못하면 우리는 늘 눈치도 없고, 저 밖에 모르는, 아주 나쁜 마음을 가진 아이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아주 나이가 많이 든 다음, 이상한 것과 이상하지 않은 것들을 구분하고 판단할 수 있지만 어린 시절, 나는 이상한 일을 겪을 때마다 늘 내 탓이려니 했다. 

단 한 번도 내가 아닌 어른들의 잘못이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른들은 늘 자신의 기분을 기준이라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아무 잘못도 없이 단체로 벌을 받거나, 뭐 딱히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식사 자리에서 계속 잔소리를 듣다가 체하는 일이 있어도 나는 그래도 내가 뭔가를 잘못한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게 내 탓을 하는 편이 덜 억울하다고, 그 어린 나이에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것이다. 


첫 번째 문장을 완성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문장이다. 


두 번째 질문이 이어진다. 


2. 내 생각에 가끔 아버지는 [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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