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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최재훈 Oct 25. 2023

나는 조금도 괜찮지 않다

ep1. 프롤로그

나이 50에 심리 상담을 시작했다. 갱년기 우울증이냐며 친구들은 웃픈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내가 극복하고 싶은 것은 중년에 맞이한 인생의 전환점, 이룬 것 없는 인생의 덧없음과 우울함이 아니다. 


사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낭만적이지도 예쁘지도 않았다. 울렁거림에 가까운 소동의 시간 속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 어른들은 모두 겪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 어린 날의 시간들은 왜 그렇게 날을 세워 날카로웠는지....


기억은 시간의 돌부리가 되어 불쑥 내가 가는 길에 솟아 자꾸 나를 넘어지게 만든다. 내 옆에는 상처입은 어린 시절의 내가 서 있다. 나는 현재의 나와 손잡고 서 있는 어린 나를 과거의 시간으로 돌려보내고 싶다.   


작년, 어린 시절의 통증과 그 위안을 이야기하고 싶어 24편의 다양성 영화에 빗대어 내 이야기를 써내려간 영화 에세이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를 출간했다. 통증을 되짚어가는 이야기였지만 여전히 ‘극복’이라는 축복은 찾아오지 않았다. 


책을 통해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제 좀 괜찮아졌다 했다. 


하지만 괜찮다는 말처럼 우악스러운 거짓말은 없더라. 


상담 선생님은 내 얘기를 찬찬히 듣더니, 완전한 회복은 없을 거라고 말한다. 어쩌면 흉터를 인정하고, 바라보고, 내 것으로 익숙해지는 일이 필요한건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나와 과거의 가족과 과거의 사건과 마주하고 그때의 감정이 어땠는지, 그리고 지금 어린 시절의 나와 누나와 엄마, 그리고 아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써보라고 했다. 


적당한 제목을 고민했지만, 지금 나의 이야기에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만큼 맞아떨어지는 제목이 없어 ‘2’라는 넘버를 붙여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 한다. 쉰에 써가는 어린 이야기. 나와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버리는 것과 바라는 것들을 써내려간다.  


50, 중년의 쉰 소리가 아닌 아직도 성장중인 쉰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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