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최재훈 Feb 05. 2024

경계에 선 몸, 꿈과 통증

루카스 돈트 감독의 '걸' 리뷰

'걸' 스틸 컷

경계에 선 시간이 있다. 내가 밟고 서야할 땅이 이쪽인지 저쪽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망설이느라 빗금을 밟고 서 있는 내게 사람들이 불친절하고 무례하다. 그렇게 어중간하게 굴지 말고 선 밖으로 나가거나 선을 넘어오라고 다그친다. 마음 하나, 타고난 몸 하나 자기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왜 자꾸 변하려 하냐고 팔짱 끼고 선 사람들의 눈빛에 날이 섰다. 그래서 맑았던 마음에 자꾸 먹물이 번지고 나의 순진하고 단순한 욕망이 자꾸 음침하고 금기된 일처럼 변질되는 것 같다. 그래서 다친 마음을 구하기 위해, 마음을 감싸고 드는 동안 자꾸 몸이 망가진다.   

   

경계에 선 몸

16세 라라(빅터 폴스터)는 발레리나를 꿈꾸며 무용 학교를 다니는 소녀다. 하지만 사실 그는 소녀가 되기 위해서 호르몬 치료와 심리 상담을 함께 받는 생물학적 소년이다. 아빠는 온전히 소녀가 되고 싶은 라라를 지지하고 응원하지만 소녀가 되는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 학교의 배려와 의료진의 도움으로 성전환 후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라라는 매일 애쓰지만, 아직 소년의 몸을 가진 라라에게 몸과 춤은 꿈인 동시에 통증이다. 

루카스 돈트 감독은 세계적인 트랜스젠더 발레리나 노라 몽세쿠흐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아 발레리나가 되고 싶은 소년의 이야기 ‘걸’을 만들었다고 한다. ‘걸’은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로 제71회 칸영화제에서 그 해 가장 주목할 만한 신인 감독에게 주어지는 황금 카메라상, 주목할 만한 시선 남우주연상, 국제비평가협회상, 퀴어 종려상 등 4관왕을 수상하였다. 이후 전 세계 영화제에서 32개의 상을 받으며 포스트 자비에 돌란이라 불리며 주목받고 있다.

주인공 라라를 연기한 빅터 폴스터는 실제 로얄 발레 스쿨에 다니던 발레리노였다.  그는 ‘걸’의 안무를 담당한 세계적인 안무가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를 따라 영화 속 남성 무용수 중의 한명으로 출연하기 위해 오디션에 지원했다가 라라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미 라라 배역을 위해 500명이 넘는 오디션을 진행했던 루카스 돈트 감독은 단번에 그에게서 라라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걸’은 소년과 소녀, 아이와 어른 사이의 경계에 선 라라의 육체와 마음을 동시에 들여다보는 영화다. 가장 아름다운 동작을 만들기 위해 토슈즈 안에서 뒤틀린 발가락처럼, 라라는 얼핏 차분하고 예쁜 소녀처럼 보이지만 그 마음은 가시덤불 위를 뒹구는 것처럼 아프고 답답하다. 주위 사람들은 그녀를 이해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경계에 선 그녀를 늘 경계한다. 

경계선에 선 라라의 마음과 육체의 갈등을 표현하기 위해 루카스 돈트 감독은 발레를 아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라라의 발레 연습장면은 가장 격하게 몸을 움직이는 장면이지만 동시에 라라의 마음의 격정을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된다.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한 발레 연습 장면은 라라의 절박함과 절실함을 강조한다. 그래서 마음의 소동이 격해질수록 발레 장면은 더 거칠어지고, 라라의 호흡이 점점 가빠질수록 관객들의 심장은 라라의 마음에 더 가까워진다.      


시차꿈과 통증

사실 ‘걸’의 주인공 라라의 욕망은 투명할 정도로 단순하다. 그녀의 마음처럼 그녀의 몸도 소녀가 되기를 바란다. 완전한 소녀가 되어 뛰어난 발레리나가 되는 것이 라라의 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발레리나가 되기 위한 격렬한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소녀가 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건강상태가 요구된다.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받고 싶은 욕심과 발레리나가 되고 싶은 라라의 마음은 애초에 소녀로 태어난 소녀들보다 늘 바트고 바쁘다. 가장 안정적인 상태에서 수술해야 하는 몸과 괴롭힐수록 실력이 향상되는 발레는 라라의 마음과 몸처럼 늘 충돌한다. 다행히 라라에게는 자상한 아빠와 친절한 의료진들, 편견 없는 선생님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니 조급해하지 말라는 그들의 말은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라라를 소녀로 받아들이고 함께 샤워실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성들도 기회가 되면 한 덩이의 그룹이 되어 온전한 여성이 아닌 라라의 육체를 조롱하고 또 희롱한다. 그래서 더 빨리 소녀가 되어야 하는 라라의 시간은 늘 초조하다. 시간은 라라의 초조함 보다 늘 더디게 흐른다. 당장 내일이라도 여성으로 깨어나고 싶은 라라에게 느린 시간은 족쇄이자 다른 폭력이 된다. 

루카스 돈트 감독의 ‘걸’이 보통 정체성의 혼란을 그린 성장영화보다 빼어난 점은 주인공 라라를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미성숙한 존재로 그리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영화는 라라가 스스로 여성인지 남성인지를 고민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여성이 되기로 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16살. 어쩌면 모든 것이 열려있는 시간이고, 미래가 결정되기에 너무 이른 나이지만 라라의 선택은 주춤대는 법이 없다. 

라라의 아빠는 라라의 단호하고 용기 있는 결정이 힘들어하는 많은 이들에게 본보기가 될 거라 말한다. 하지만 라라는 “본보기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여자가 되고 싶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인생을 아주 많이 살아도 결코 깨닫지 못할 인생의 정체, 혹은 정체성 앞에서 이토록 당당하고 당연하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결국 몸을 상하게 하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하는 엔딩은 논란의 여지가 있음에도 라라를 더욱 지지하고 싶게 만든다. 이미 관객들은 살갗으로 찐득한 핏덩이의 농도를 함께 느꼈다.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


이전 01화 황홀하고, 냉정하고, 차갑고도 뜨거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