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티아스와 막심> 리뷰
마음이 상대에게 닿는 방법을 진정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을까? 상처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흉터처럼 빤히 보이는 이야기도 드러내지 않고 늘 가둬둔다. 숨겨둔 진심 따위, 갑작스런 소나기를 맞은 빨래처럼 얼른 걷어내지 않으면 축축하게 젖어버릴 거란 걸 알고 있다. 계속 달려야 하는 시간 속, 자신의 진심을 충분히 들여다 볼 여유가 없다. 그래서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햇빛은 우리 시간에 아주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래서 뜨거워 보이지만 사실은 온기가 없는 그늘에 갇힌 마음이 차갑고 눅눅한 얼룩으로 남는다.
과잉의 매혹
곧 돈을 벌기 위해 호주로 떠나는 막심에게는 마티아스를 포함한 오랜 친구들이 있다. 어느 날, 친구 여동생의 부탁으로 영상 촬영 과제의 주인공으로 마티아스와 막심이 참여하게 된다. 문제는 둘이 키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촬영을 위해 짙은 키스를 나눈 후, 두 친구의 관계는 달라진다. 오랜 친구지만 평화로운 가정과 좋은 직장을 가진 마티아스와 달리 막심은 폭력적인 어머니 밑에서 마땅한 직업도 없이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막심은 갑자기 달라진 마티아스의 태도가 서운하고, 마티아스는 이상하게 막심이 거슬린다.
‘마티아스와 막심’은 자의식과 겉멋, 불행한 가정과 불안한 청춘, 정체성의 혼란 등 과하게 넘치지만 끝내 매혹되고 마는 자비에 돌란이라는 라벨을 턱 하니 붙이고 나타난 영화다. 그에게 기대하는 영상미와 음악, 격정적인 분위기, 적당히 비극적인 정서까지 모든 것이 담겨있다.
영화는 줄곧 오랜 동성 친구에게 생겨버린 감정에 흔들리는 마티아스와 막심이라는 두 친구의 어긋난 마음을 설득하거나 동조하지 않은 채 바라본다. 줄거리로 요약할 수 없는 많은 장면들에서 자비에 돌란은 연출이자 주인공을 맡아, 불쑥 들이닥치는 감정의 가닥들을 능수능란하게 엮고 풀면서 복잡하지만 매혹적인 이야기를 직조해 나간다.
그의 이전 작품들처럼 대부분 인물들이 감정과 심리에 지배당하고 있지만, 사람을 바라보는 자비에 돌란의 시선은 조금 더 깊어졌다. 그의 앞선 작품을 보면 감각의 과잉에 비해 이야기의 농도가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자비에 돌란표 과잉은 ‘마티아스와 막심’ 속에 여전하다. 하지만 늘 활짝 열려있는 것 같지만 어떤 점에서는 감옥 같은 사막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한층 깊어졌다.
사실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에 있지만, 각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자비에 돌란은 마티아스의 삶과 막심의 삶, 아마 가장 가까운 친구사이라도 절대 알지 못하는 내밀한 아픔과 통증을 평행선으로 배치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 마음의 혼란을 각기 다른 온도로 느껴볼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키스 이후 전혀 다른 두 친구의 반응을 각기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고, 두 사람의 마음이 끝내 한 곳에 다다르는 순간에 이르렀을 때 두 사람을 함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결핍의 자유
어딘지 모르게 아련한 홈비디오 같은 화질 때문에 화면을 일부러 레트로 하게 보정했나 싶지만, ‘마티아스와 막심’은 애초에 65mm 필름으로 촬영한 영화다. 그래서 화면이 빈티지하고 클래식하게 느껴진다. 디지털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거친 입자와 살짝 초점이 흐린 화면은 인물의 내면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사용하는 장면에선 인물의 표정에서 마음을 읽을 수 있고, 롱 쇼트로 바라보는 장면은 어딘지 관조적이고 애틋하다.
키스 이후 일상이 뒤흔들리는 마티아스와 달리 막심의 일상은 크게 변함이 없다. 우정이었던 감정이 사랑으로 향하는 그 경계에 선 마티아스의 날선 감정과 낯선 떨림, 그리고 관능적 욕망을 자비에 돌란은 긴 한숨과 쉼표가 많은 관계 속에 녹여내면서 훨씬 더 많은 여백과 그로 인한 잔향을 남겨둔다. 실제 자비에 돌란의 절친으로 알려진 가브리엘 달메이다 프레이타스는 격앙되기 쉬운 감정을 진중하게 누르면서 이야기를 정화시키는 묘한 매력을 선보인다.
자비에 돌란은 성 정체성을 겪는 청년들의 결핍과 비밀이 그들을 시들시들하게 만들게 두지 않는다. 오히려 마티아스와 막심의 사이를 사랑보다 더 농도 짙은 우정으로 바라보면서, 누구도 열패감에 빠지게 만들지 않으며 모두를 품는다. 그래서인지 우정과 사랑 사이의 기묘한 감정, 그 아련함을 담아내는 화면과 인물의 감정을 선율에 담아내는 음악은 꽤 위로가 된다.
2009년 만 19세의 나이에 ‘아이 킬드 마이 마더’로 데뷔하자마자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후, 천재라는 수식어는 자비에 돌란을 늘 따라다니는 훈장이자 그림자였다. 허세와 과장을 휘장처럼 둘렀지만, 그의 최대 장점은 그의 작품이 앞선 그 누구와도 유사하지 않다는 점이다. 어린 천재도 어느 덧 30대가 되었고, 여전히 가족과 성정체성은 그의 영화 속 화두지만 까슬까슬한 감각 속에 오롯하게 자신만의 인장을 여지없이 새겼다. 정통성에서 벗어나 조금 부족하더라도 자기만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는 자비에 돌란의 결핍은 한껏 자유로워 보인다.
막심의 얼굴에는 누구나 단번에 알아챌 흉터가 있다. 빤히 보이는 흉터를 막심도 친구들도 모두 안보이는 체 한다. 마티아스는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막심의 흉터를 조롱한다. 순간 마티아스는 모두에게 비난받는 나쁜 사람이 된다. 어쩌면 숨겨진 마음도 그런 것 같다. 일단 꺼내놓는 순간, 그게 사실이라도 누군가는 상처받고, 누군가에겐 비난받게 된다. 그래서 마티아스는 막심을 향한 자신의 이끌림 앞에서 자꾸 화를 내고 숨기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흉터가 표정이 되어버릴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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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OST 정보]
‘마티아스와 막심’ (2019), Universal / Mercury Records
작곡 : 장 미셸 블레 Jean-Michel Blais
영화 속 펩 샵 보이스의 ‘Always on my mind’, 아케이드 파이어의 ‘Signs of life’는 인물의 감정을 순식간에 화면 밖으로 끄집어내 주지만, OST로 발매되지 않았다. ‘마티아스와 막심’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은 현대 음악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장 미셸 블레가 맡았다. 복고적인 감성의 영화답게 10인치 LP판으로 발매되었다. 영화 속 음악은 때론 단순하게, 때론 격정적으로, 가끔은 안개 속처럼 뿌옇게 화면에 흐르며 인물을 대변한다. 생각해 보니 대사 없이 인물의 감정을 쓱 훑어주는 음악이 가끔 무용처럼 느껴지는 마법이 늘 자비에 돌란 영화 속에는 있었다.
트랙 리스트
A
1 L'amitie (Friendship)
2 Les Feuilles Mortes (Autumn Leaves)
3 Le Lac (Lake)
4 La Blessure I (The Injury I)
5 Le Souper (The Diner)
B
1 La Solitude (Solitude)
2 La Blessure II (The Injury II)
3 Une Forme D'amour (A Love Form)
4 La Ferme (The Farm)
5 Un Autre Amour (Another Love)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