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그맨' 리뷰
나를 버려, 나를 얻는다. 모순된 말이지만, 실제로 자신을 감춰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끔찍한 시간을 버틴 후, 끝내 살아남을 거란 걸 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에 생긴 흉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는 법도 사랑을 베풀거나 받는 방법을 모른다. 이럴 때 변장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의 나를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태어나는 순간은 숭고한 탄생의 순간을 닮았다. 누군가에게는 거짓으로 꾸민 가면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간절한 진심이 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변장은 스스로 만드는 엄마의 자궁과도 같다.
예술과 분장, 그리고 구원
마릴린 몬로를 떠올리게 하는 복장을 한 더글러스(케일럽 랜드리 존스)가 한밤중에 체포된다. 거동이 불편한 그는 수십 마리의 개를 트럭에 태운 채 이동 중이었다. 정신과 의사(조조 T 깁스)의 면담을 통해 그의 과거가 밝혀지는데, 그는 오랜 가정 폭력의 피해자였다. 개를 키우는 철장에 갇혀 지내다 아버지가 쏜 총에 맞아 결국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가족에게 버림받은 그의 곁을 마지막까지 지키고, 그를 살려낸 건 수백 마리의 개들이었다.
뤽 베송 감독이 “지금까지 만든 영화 20편을 압축한 나의 이력서 같은 작품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뤽 베송이 41년 동안 많은 수많은 명작들을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90년대 전 세계에 뤽 베송의 이름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게 했던 ‘니키타’(1990)와 ‘레옹’(1994)을 많이 닮았다. 상처 입은 킬러, 범죄자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측은하고 마음이 쓰이지만 범죄자인 ‘펭귄맨’을 닮았다.
‘맨’을 달고 나온 수많은 영웅들과 달리 ‘도그맨’은 초능력을 지닌 영웅이 아니다. 개들의 도움을 받아 생존하고, 자기만의 정의를 만들어가는 사회적 약자이다. 다른 맨들이 자신을 온전히 숨기는 갑옷으로 변장하는 것과 달리, ‘도그맨’의 더글러스는 여장을 한다. 짙은 화장과 가발, 화려한 의상으로 매번 다른 여자가 되는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화려한 여성들이다. 아주 잠깐 일어설 수 있는 순간, 분장을 하고 박수를 받는 순간 그는 존엄함을 되찾고 온전한 자신으로 인정받는 것 같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의 마릴린 몬로와 프랑스의 아이콘 에디트 피아프의 분장 쇼를 통해 지금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이상적인 모습이 되어 숨을 쉬는데, 그 근원에는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있다. 더글러스를 살아있게 해준 건 개들과 예술이다. 그는 보육원에서 만난 연극 교사를 통해 예술을 배운다. 그에게 그녀는 구원이었고 그녀가 알려준 예술은 희망이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삶의 근간이고, 그가 분장을 통해 자아를 찾는 과정의 중요한 디딤돌이 된다.
고아 같지 않은 삶을 응원하며
‘도그맨’은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는 시인 알퐁스 드 라마르틴의 싯구절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인간을 관찰하고 다스리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개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이 구절은 영화 ‘도그맨’의 이야기와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해준다. 그의 회상을 통해 조금씩 드러나는 더글러스의 불행은 너무 깊고 많아 그렇게 많은 개들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더글러스에게도 가족이 있었지만 그에게 날카로운 생채기를 남겼다. 안현미 시인의 시 ‘거짓말을 타전하다’의 한 구절처럼 ‘고아는 아니지만 고아 같은’ 삶을 사는 그런 버림받은 아이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달아났고, 형은 자신이 살기 위해 더글러스를 방치한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개들이다. 뤽 베송 감독은 더글러스의 주위에 유기견을 배치하면서 개 보다 못한 인간들의 비열한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유기견이 한 마리가 있다는 말은, 자신이 키우던 개를 버릴 수 있는 ‘인간’이 한 사람 이상 있다는 말이다.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지 않고 필요에 의해 버리는 생명에 대한 존엄과 책임감을 지니지 못한 인간의 이기적인 속내는 누구도 구원하지 못한다. 가정폭력의 끝에 장애를 얻고 생존하지만, 사회에 나온 더글러스에게 일자리를 주거나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뤽 베송은 가정 폭력과 장애, 구조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구원받지 못한 피해자의 삶을 유기견의 모습과 배치하면서 사회적 이슈를 계속해서 환기시킨다.
뤽 베송 특유의 장점이 살아있지만,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일부 에피소드에는 조금 빈틈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15마리의 사랑스러운 개들과 더글러스의 비극을 온 몸으로 체화하고 여성으로 변장하면서 그의 삶을 승화시키는 케일럽 랜드리 존스의 연기는 모든 틈새를 탄탄하게 채운다. 앞서 뤽 베송은 이 영화가 자신의 이력서 같은 작품이라고 했지만, ‘도그맨’의 주인공 케일럽 랜드리 존스에게 ‘도그맨’은 진짜 이력서가 되었다.
영화에는 두 번, 더글러스가 철창에 갇혔다 빠져나오는 장면이 나온다. 첫 번째 철창은 개 사육장 철창이다. 아버지에 의해 갇혀 장애인이 된 후, 겨우 경찰에게 발견되어 구조되지만, 철창 밖 세상은 그에게 구원이 아니었다. 그는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생존하기 위해 계속 세상과 맞서야 했다.
두 번째 철창은 여장을 한 채 경찰에게 잡혀 들어간 감옥이다. 마지막 장면, 더글러스는 분장을 깨끗하게 지우고 가장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개들의 도움을 받아 철창문을 열고 휠체어를 타지 않고 스스로 걸어 감옥을 탈출한다. 힘겨운 걸음걸음을 내딛다 교회 앞 십자가 앞에서 쓰러진 그의 위로 십자가의 그림자가 겹쳐진다.
이 십자가가 더글러스의 구원이 될지, 그의 삶에 드리운 벗어나지 못할 힘겨운 십자가가 될지 알 수가 없다. 감옥에서 탈출한 그에게 세상이 더 큰 감옥이 될지, 새로운 시작이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를 향해 다가와 그를 에워싸는 수많은 개들의 모습은 친절하고 든든해 보인다. 자신의 두 발로, 분장에 의지하지 않고 가장 말쑥한 더글러스 그 자신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 그를 응원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도 끝내 친절하고 따뜻한 것이길 바래본다.
[OST 정보] Music by Eric Sera / Because Music
뤽 베송의 영화 필모에 인장과 같은 작품인 ‘그랑 블루’, ‘니키타’, ‘레옹’, ‘제5원소’ 등의 음악을 맡았던 에릭 세라가 ‘도그맨’에도 함께 참여해 스타일리시한 영상 위로 또 다른 캐릭터이자 대사 같은 음악의 힘을 보여준다. 오리지널 음악과 함께 캐일럽 랜드리 존스가 드래그퀸 클럽에서 립싱크 하는 사틴, 에디트 피아프가 부른 원곡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