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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일출 May 24. 2023

학급 체육대회

적응에 몸살을 앓는 아이들

2015학년도에 2학년 담임을 맡았다. 그 해에 우리 반 아이들은 말 그대로 젊음이 끓어 넘쳤다. 적극적이며 활발한 데에다 축구를 좋아하는 열정적인 소년들로 가득 찼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진급한 며칠은 교실이 절간처럼 조용했다. 새 학년에 임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반짝였고 공부에 임하는 자세 또한 자못 진지했다. 나는 새로운 학년에 임하는 학생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기분 좋게 바라보았다. 이런 분위기를 잘 이끌고 나가면 아이들의 학습적인 면이 상당히 개선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서 나는 아이들과 상담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새 학년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그렇지는 않았다. 어떤 아이들은 학교가 힘들다고 호소했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새롭게 편성된 반에 아는 친구가 없어서 종일토록 말 한마디 못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때도 있다고 했다. 괜히 급우들이 공부하는데, 방해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낸다는 것이다.

상담을 하지 않았으면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공부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하루종일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면 학교에 있는 것이 얼마나 답답할까? 매일 아침, 등교하는 게 악몽일 것 같았다.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향의 아이들이 많다고 해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고 또 그런 성격을 가진 아이들조차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가까운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한 선생님이 남자아이들의 친목 도모에는 체육대회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했다. 나 또한 그 말에 동의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운동을 정말 좋아하는데, 이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는 운동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종례를 하면서 다가오는 주말, 즉 토요일에 체육대회를 실시하자고 했다. 대부분은 좋아했지만, 몇몇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주말에는 학원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급 체육회를 한다고 말하면 엄마가 믿지 않을 것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했다.     


나는 학급 체육회의 취지를 설명하는 문자를 엄마들에게 보냈다.      


 ‘학부모님들께 알립니다. 다가오는 토요일에 ‘2-2반 체육대회’를 실시하려고 합니다. 학생들이 즐겁게 운동하고 우정을 쌓으려고 하니, 모든 학생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학원이나 과외 일정을 조정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하게도 컴플레인을 제기하는 학부모님은 한 분도 없었다. 그렇게 ‘학급 체육대회’를 진행했다. 축구와 농구 두 종목을 실시했는데, 우리 반 학생들은 36명이 정원이라서 각 조를 9명씩, 4개 조로 편성했다. 대진표를 짜서, 토너먼트로 경기를 한 후 우승팀을 가리기로 했다. 대진표와 학생들의 조 편성에 관해서는 임시 반장이 맡았다.     


체육대회 당일, 아이들 전원이 참석하였다. 늦잠을 자서 늦은 아이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정시에 도착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몸을 풀도록 했고, 경기 진행을 준비했다.


축구 경기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친선경기인데도 사뭇 진지하게 임했다. 경기를 해 보니 보통 때의 성격과 완전히 다른 아이가 있었다. 평소에는 조용히 공부만 하던 학생이 축구를 할 때는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을 지휘하는 것이었다. ‘저렇게 에너지를 발산해야 심리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건강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듣던 데로 몇몇은 축구 선수를 보듯이 행동이 민첩했고, 공을 다루는 발재간도 좋았다. 아이들은 지치지 않고 뛰어다녔다.     


첫 번째 경기가 끝나고,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나도 선수로 참가했다. 나 또한 운동을 좋아하고 학창 시절에 축구를 좀 했던 터라 내심 아이들과 겨뤄보고 싶은 마음 있었다.


경기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에게 좋은 기회가 왔다. 공을 잡은 후, 반대로 공을 접어 상대편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오른발 앞에 공을 잡아놓고 발등으로 슛을 때리려는데, 어느새 뒤에서 달려온 학생이 몸싸움을 시도했다. 나는 뒤에서 달려오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에 힘도 한번 쓰지 못한 채로 보기 좋게 밀려 넘어졌다. 중심을 잃으면서 넘어질 때, 머리가 살짝 땅에 닿았다. 생각보다 크게 넘어져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옷을 다 버렸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심판이 파울을 불 줄 알았는데, 쓰러진 내 옆으로 지나가면서 하는 말이 “정당한 몸싸움이었습니다. 선생님”이라고 했다. 억울했다. ‘아니, 이런 게 파울이 아니면 도대체…’ 순간 흥분했지만 담임인 내가 심판에게 어필하면 경기에 지장을 줄 것 같아 한마디 다.


아이들은 선생님이라고 봐주는 게 없었다. 선생님을 밀쳐 넘어뜨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우리 아이들은 달랐다. 이들은 축구에 진심인 편이었다. 나는 흙을 털어내면서 알았다. 이 경기엔 내가 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다른 아이와 교체하며 운동장을 빠져나오는데, 이제 아이들과의 축구 시합에서 은퇴의 시기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점심은 짜장면을 배달시켰다. 한 번에 37개의 짜장면을 시키니 중국집에서 군만두를 서비스해 주셨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어머니들께서 여러 가지 간식을 넣어 주셨다. 어떤 어머니는 햄버거와 콜라를, 또 어떤 어머니는 초코바를, 또 다른 어머니는 음료수를 후원해 주셨다. 심지어는 치킨을 넣어 주시는 어머니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오후 일과는 ‘학급 체육회’가 아니라 ‘학급 회식’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렇게 학년을 시작했더니 반 아이들의 결속과 유대감은 남달랐다. 처음이 서먹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에너지가 철철 넘쳤고 개성이 강한 아이들이다. 당연히 학교에서 말없이 지내는 아이는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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