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의 구성원들은 좀 특이했다. 자연 반이긴 하지만 인문 반 성향의 아이들이 많았고,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기초가 부족했다. 나는 평소, 반 아이들에게 “수업 시간에 이해하지 못한 부분과 의문이 생기는 부분은 그 시간에 선생님에게 질문해서 해결해라. 그렇게 해야 선생님의 말씀에 더 집중하게 되고, 수업이 의미 있고, 알찬 시간이 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과 이야기해 보니 그것은 학습에 관한 나의 이상적인 관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진도에 방해될까 봐, 또는 친구들의 학습에 방해될까 봐 질문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특히 수학은 이전 단원과의 연결성이 중요해서 한번 개념을 놓치면 따라가기가 힘들다고 했다. 게다가 해야 할 단원과 이해할 부분이 많아서 복합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문제는 질문을 하려고 해도 자신이 무엇을 어디까지 모르는지를 알지 못하기에 질문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또한 선생님에게 여쭈어보고 싶었는데 질문을 할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있고, 질문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지 않아서 묻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수학에 대한 이해도는 떨어지고 자신감마저 상실하여 점점 수포자로 전락하게 된다고 했다.
아이들의 이야기가 공감되었다. 우리 교육제도의 단점은 출발점이 늦은 아이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한 번 교과 내용이 늦으면 공부하고 싶은 의지가 있어도, 학습을 따라가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다. 그렇기에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아이들을 어떻게든 돕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생각해 낸 것이 학급 내에서의 스터디 활동, 즉 멘토-멘티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학급에서 성적 상위자가 멘토 역할을 하고, 상대적으로 성적이 뒤처지는 친구들이 멘티로 묶여 질문하고 응답하는 형식의 학급 내의 자율 동아리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라는 뜻에서 ‘다빈치’라는 이름을 지었다.
때마침, 우리 반에는 우리 학교 최고의 수학 실력자인 이상록이라는 학생과, 영어에 한해서는 누구보다 탁월한 실력의 소유자인 박완기라는 학생이 있었다. 나는 이 학생들에게 멘토를 부탁했고, 그들은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친구들을 위해 스터디 준비를 하고 일일이 설명해 주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투자되었을 텐데 불평 한번 없이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 주었던 이 학생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
몇 년 후에 수학을 담당했던 이상록 학생은 서울대학교 수학교육학과에 진학했고, 박완기 학생은 동아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진학했으니 과연 이들은 우리 반 최고의 멘토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이 두 학생의 수고와 헌신으로 친구들은 수업 시간에 놓쳤던 부분을 보완했다.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대에게 부담 없이, 그리고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게 되자, 그동안 어려움을 겪던 분야에 대해 새로운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놓쳤던 부분을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는 것만으로 이 시간을 좋아했다. 물론 기초가 심각하게 부족한 아이는 학습공동체만으로 학습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었지만, 일부 학생들은 수학과 영어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했다. 물론 1학기 만에 성적을 올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들이 주요 교과목에 대해 더 이상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공부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한 것으로도 '다빈치'는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생활기록부에 멘토와 멘티의 활동을 나누어서 열심히 참여한 아이들의 활동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적어 주었다. 지금이야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비해서 학교에서 추진하는 자율 동아리도 있고, 다양한 교내 프로그램이 지원되지만, 당시에는 이런 활동이 없었기에 활동 장소와 시간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또 학생들이 모여서 질문하고 대답하다 보면, 교실에서 자연스럽게 소란스러움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관리자들은 이런 상황을 좋게 여기지 않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의 발달과정을 살펴보면 학습을 처음부터 꾸준히 잘하는 아이도 있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자신의 꿈과 미래를 발견해 가는 아이들이 있다. 자신의 꿈을 키우며 공부를 시작하지만, 이미 교과가 뒤처지는 데에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방향성을 상실하여 좌절하는 아이들을 많이 봐 왔다.
이런 아이들을 돕고 싶지만, 나의 능력으로는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조금 늦더라도 아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학습적인 부분에 관하여 집단적인 무기력감을 심어주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