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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일출 Jun 04. 2023

과연 이들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

치킨에 진심인 편

2015년 9월에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다. 우리의 여행 방식은 테마 여행이었다. 요즘의 현장 체험학습은 이전처럼 전교 학생들이 동일한 장소를 한 번에 몰려가는 것이 아니라, 반마다 학급 회의를 통해서 학생들의 의견을 조율해서 일정을 잡기에 학생들 사이에서 테마 여행은 만족도가 비교적 높은 여행이다.

아무래도 전체 학년이 동시에 이동하여 특정 지역을 방문하는 것보다 학급 단위로 이동하다 보니 학생들 관리 차원에도 편리하고, 이동시간이나 대기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좋다. 학생들 또한 당사자가 원하는 곳을 직접 정해서 방문하기에 불만 사항도 적은 편이었다. 학급회의 시간에 여행 일정을 잡는데, 우리 반 아이들은 박물관만 가지 않으면 무조건 ‘오케이’라고 했다.

아이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다고 했지만, 학습적인 분야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기에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기 위해 제주 박물관과 표선에 있는 제주민속촌은 방문하자고 했다. 아이들은 일정에 대하여 대만족이었다.




드디어 수학여행을 떠났다. 비행기에서 내려 관광버스로 옮겨 타자마자 우리 아이들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언제 준비했는지 휴대용 치곤 제법 큰 카세트를 꺼내고는 음악을 크게 틀었다. 미리 연습이라도 했는지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빠른 박자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음악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서는 아이들은 카세트와 경쟁하기로 작정이라도 했는지 용을 쓰면서 노래를 불렀다. 소위 말하는 떼창을 불러대는데, 말 그대로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아이들이 이동하며 버스 안에서 떼창을 부르는 것은 13년간의 담임 생활에서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버스를 타면 조용히 스마트폰만 바라보기 마련인데, 우리 반 분위기는 담임인 나 조차도 적응지 않을 때가 많다.


운전기사 아저씨도 학생들이 계속해서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요즘 아이 들치고는 참 특이하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이 단합도 잘하고 노는 것도 잘 논다”라며 아저씨께 “조금 시끄럽겠지만 이해를 구한다”라고 양해 말씀을 드렸다.      


‘이럴 때 스트레스도 풀고, 젊음을 발산해야지 언제 또 이런 재미있는 경험을 할까?’      


신나게 노는 아이들이 보기 좋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조 편성을 해주었다. 혼자 다니는 애가 있을까 해서이기도 하지만, 서로 협력해서 공동체로 일을 진행하라는 뜻을 담기도 했다. 그동안 쌓인 학급비와 지각비, 그리고 담임인 나의 후원금을 더해서 몇 가지 완성해야 할 미션을 낸 다음, 이기는 팀에게 치킨 1마리를 걸었다. 미션 중에 서로 협력해서 좋은 사진을 만들어 내야 하는 단체 점프 사진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치킨에 목숨을 걸었다. 미션이 총 6개 정도 나갔으니, 사실상 거의 모든 조가 수상을 할 수 있는데, 아이들은 그런 나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최선을 다해서 미션을 수행했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표선에 있는 제주민속촌을 방문했을 때였다. 민속촌을 돌아보는데, 총 1시간 30분이 주어졌다. 아이들은 민속촌에 대해서는 별로 기대감이 없는 것 같았다. 마을을 잠시 둘러보나 싶더니 거의 직진으로 민속촌을 통과하였다.      

나는 이것저것 살펴보며 민속촌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우리 반 아이들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이들을 찾아 서둘러서 민속촌을 빠져나왔다. 전화를 받는 아이도 없었다. ‘담임을 골탕 먹이려고 작정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참을 찾아 헤매다가 인근의 표선해수욕장에 아이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황급히 표선해수욕장에 가보니 아이들은 태평하게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모래사장에 옷이 일자로 널려있는 것을 봐서 웃통은 벗어놓고, 바닷가에 들어간 게 틀림없었다. 아이들의 목적은 처음부터 민속촌이 아니라 표선해수욕장이었다. 전화기를 모래사장에 두고 들어갔었기에 전화를 안 받았던 것 같았다.


말도 하지 않고 바닷가로 간 아이들을 야단치려다가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수학여행까지 와서 아이들을 혼낼 필요까진 없을 것 같아 참았다. 아이들이 서로에게 물을 퍼붓고 장난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안도감이 밀려오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바닷물 깊이가 어떤지 확인했다. 아이들이 놀기에 너무 깊을까 걱정이 되어 바지를 걷고 물에 들어가 보았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도 무릎 정도밖에 물이 차지 않았다. 아이들이 놀기에는 제격이었다. 반장한테 이제 슬슬 정리하고 차로 돌아오라는 말을 해 놓고서 천천히 차량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가보니 이미 난리가 났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화가 나서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해서 보니 아이들이 해변에 다녀온 후에 버스에 탑승해서 버스 바닥과 시트에 모래가 엉겨 붙어서 엉망이 된 것이다.

모래로 인하여 버스가 더러워질 수 있다는 것은 나 역시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아이들을 근처의 화장실로 데려가서 모래를 몸을 씻게 했다. 바닷가에서 오는 아이들은 곧바로 화장실로 보내 모래를 깨끗이 정리하도록 했다.

아저씨는 한숨을 내 쉬면서 투덜대고 있었다. 우리가 주차장에서 오랫동안 대기하고 있으니, 다른 반 차량이 이곳을 방문했다가 우리 반 아이들을 보고 주위를 기웃거렸다. 아이들은 우리 반에 무슨 일이 생겼나 궁금했던 것 같다.


다른 반 선생님들도 "최 선생님,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물어보는데, 묻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가 그래서 숙소에 가서 말씀드리겠다고 둘러댔다.


한쪽 구석에서는 우리 버스의 기사님이 다른 버스의 기사님들에게 하소연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아이들이 얼마나 별난지 한 시도 조용한 적이 없다. 버스만 타면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질러서 운전에 방해가 될 정도다. 오늘은 바닷가에 있는 모래를 털지도 않고 그대로 버스에 탑승하는 바람에 차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기사 아저씨에게 미안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빨리빨리 모래를 털고 차를 깨끗이 사용하라며 소리를 질렀다. 내가 아이들에게 강하게 대하니까 아저씨가 대리 만족이 되셨는지 주춤하는 것 같았다. 아저씨는 밀대를 빨아와서 차를 깨끗이 닦았다. 우리는 다른 반 차량이 모두 떠난 후에도 버스를 청소하는 데에만 1시간 이상이 걸렸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아이들은 점프하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바다로 갔다는 것이었다. 치킨을 타기 위해서 좋은 장소를 물색하다가 바다까지 간 것이었다. 카톡에 올라온 제주 바다에서의 점프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처음 바다에서 솟아오를 때는 타이밍이 안 맞아 계속해서 NG가 났다고 했다. 바닷물에서 점프를 계속하다가 보니 나중에는 지쳐서 점프도 안 되었다고 했다. 어떨 때는 점프는 잘했는데, 찍는 순간을 포착하지 못해서 다시 촬영해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연속 사진으로 찍자고 해서 몇 번의 시도 끝에 최종 결과물을 얻었다고 한다.

 

하여간 우리 아이들은 대단했다. 미션을 수행하려고 점프를 반복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 아이들은 정말 치킨에 진심이었다.


'과연 이들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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