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니, 내가 얼마나 부족한 것이 많고, 얼마나 해야 할 공부가 많은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당시의 나는 다른 것들에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마음이 너무 바빠서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만 파고들었다. 그만큼 나는 공부를 진정으로 대했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니, 날이 갈수록 부족한 점들이 채워졌고, 내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덕분에 나는 나의 눈부신 발전과정을 보며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이후 선생님의 권유로 육상부에 들어갔다. 나는 운동을 늘 재미있어했고, 또 잘했었기에 나를 눈여겨보신 체육선생님의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친구들은 운동을 하면 공부할 시간이 적을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새로운 운동을 배워보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학업에 대한 압박으로 하고 싶은 것도 못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과감하게 육상부에 들어갔고 즐겁게 육상에 임했다. 게다가 육상은 모든 운동에 근본이 될 뿐만 아니라, 육상 전문 코치님이 새롭게 부임하면서 학교에서 무료로 가르쳐 준다는 이점도 있었다.
나는 육상연습을 하면서도 공부 시간을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침부터 운동하는 것을 루틴으로 만들어 체력 향상을 도모했다. 그럼에도 운동에 일정한 시간을 할애해야 했기 때문에, 나의 의지와 달리 시간을 뺏기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특히 대회라도 참가하게 될 때면 시간관리가 더욱 힘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동시간과 기다리는 시간에 필요한 공부를 보충했다.
이렇게 철저한 시간관리를 하다 보니 오히려 효율적인 시간 관리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극복해 낼 자신감까지 생기며 나는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3학년이 올라갈 때까지 나의 성적은 고공비행을 유지했다.
내가 이렇게 공부를 꾸준히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경쟁자였다. 나는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지만, 우리 학교의 부동의 1위는 도저히 꺾을 수가 없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도 나와 같은 학교에 진학했는데, 중학교 때부터 고교 시절까지 나는 한 번만이라도 그 친구를 앞서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내 힘으로는 도저히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학교에서 압도적인 1위를 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처음부터 내 상대가 될 수 없는 아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에는 그 친구를 이기려는 경쟁의식이 불타올라 치열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 친구가 정말 부럽기도 하고, 밉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의 공부를 도와준 한없이 고마운 친구였다. 그 친구가 있어서 나는 안주하지 않고 나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꾸준히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순탄하게 고속도로로만 달려갈 줄 알았던 나에게 처음으로 슬럼프가 찾아왔다. 선배들로부터 ‘공부하는 학생에게 슬럼프는 언제든지 찾아온다’라는 말을 들어보긴 했지만, 나와는 상관없을 줄 알았다.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왔고, 그만큼 공부에 대한 재미도 컸기에 나에게 있어서 '슬럼프'라는 말은 해당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때가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나는 입시를 위해 전년도보다 훨씬 더 열심히 공부했다. 특수목적고 진학이라는 원대한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 성적이 오르는 게 아니라 거꾸로 떨어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슬럼프를 겪으며 나는 우울해졌다. 그리고 슬럼프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전교 17등이라는 다소 낮은 성적으로 3학년 1학기를 마무리하였다. 특목고에 진학하기 위한 내신성적은 3학년 1학기까지 반영되기 때문에 상심이 컸다. 목표를 정하고 공부한 시험에서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자 나는 나 자신에게도 실망을 많이 했다.
나는 마지막 시험에서 큰 폭의 성적상승으로 특수목적고에 당당하게 입학하는 그림을 그렸지만, 마지막 한 번의 시험을 망치는 바람에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중학교 2학년 때만 해도 충분히 특목고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이었기에 실패에 대한 좌절감은 매우 컸다.
설상가상으로 선생님들도 나에 대한 기대를 접어 버렸는지, 이전처럼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셨다. 그 결과 3학년 2학기를 통째로 흘려보냈다. 공부는 하지 않고 매일같이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를 했고 게임을 하며 시간을 낭비했다.
흔들릴 대로 흔들려버린 나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졸업식 때, 장학금 시상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성적 장학금 수상자를 8명 호명하였다. 호명받은 친구들이 강당 앞으로 뛰어나가고 있었다. 나는 내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끝까지 내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친구들이 장학금을 수여받는데,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가 ‘어? 완기가 없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의 참담한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을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는 전교 9등이었다. 9등이든 아니든 간에 공부 좀 한다고 소문난 아이들은 모두 수상을 했는데, 나만 이름이 빠진 것이었다. 너무나 부끄러웠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은 탓이었기에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내가 져야 하는 게 맞지만, 이를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후 슬럼프가 찾아오면 나는 그날의 참담함을 떠올린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공부에 후회하지 않으리라’라고 다짐했다.
중학교 졸업식 날 이후로, 나는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자는 것과 먹는 시간 말고는 오로지 공부만 했다. 주변에선 그렇게 공부하다가는 오래 못 가 지친다며, 조금 쉬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했지만, 남들의 조언이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중학교 졸업식 때처럼 후회하는 일이 생길까 봐, 또는 슬럼프가 다시 찾아올까 봐, 공부를 멈출 수가 없었다.
대신에 공부할 때는 모든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졌다. 공부를 하고 있으면 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졌고, 공부 그 자체에서도 만족감을 찾았던 것 같다. 공부가 일상이 되니, 슬럼프라는 말은 오히려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슬럼프 탈출을 오로지 피나는 연습을 통해서 탈출했다.
이런 식으로 나만의 학습 루틴도 만들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