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를 졸업하고 후회 없는 방학을 보냈다고 자부하지만, 고등학교 입학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입학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나는 자신감이 있었다. 보란 듯이 성적을 향상해서, 나의 존재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부족한 부분을 찾으며 꾸준하게 공부하였다. 1학년 2학기 때 즈음이 되자, 그에 대한 결실이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에 올라와서야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중학교에서 내로라하는 학생들이 우리 학교로 몰려서 그런지, 시험을 칠 때마다 머리가 비상하고 똑똑한 친구들이 하나씩 나타났다. 도저히 머리로는 이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나는 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나만의 장점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꾸준함’
처음부터 나에게 꾸준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이들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주위를 살펴보았고,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였다. 머리가 좋은 친구들은 다행히 엉덩이가 그렇게 무겁지 않았다. 난 이 사실을 발견하고는 꾸준히 공부할 것을 결심했다. 또 경쟁심리가 발생해 이 친구들을 이기기 위해 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공부를 이어갔다. 매일매일 일정한 시간의 학습량을 소화하며, 친구들이 놀 때도 그 충동을 참으면서 공부에만 매진했다.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흔들리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다. 사실 ‘꾸준함’이란 것은 처음부터 내가 가진 삶의 가치가 아니었기에, 이것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친구들이 나댄다고 할까 봐 또는 보잘것없는 내 실력에 우쭐해질까 봐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내가 생각하는 ‘꾸준함’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실 ‘꾸준하다’라는 것은 매우 단순한 개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을 간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한 가지에 집중하란 말과도 비슷하다. 공부를 제외하고 다른 어떤 것에도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꾸준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면, 무엇보다 나에게 엄격해야 한다. 게임을 하지 않아야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깨어있는 시간은 대부분을 책과 씨름하며 문제를 푸는 시간으로 채워야 한다는 말이다.
꾸준함이란 결국 자기가 정해 놓은 최고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내 가치를 '공부에 대한 꾸준함'을 선택한 것뿐이다.
가치란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꿈을 실천하는 법’이란 영상을 보여주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고철 덩어리, 흙, 모래, 자갈, 여러 개의 플라스틱을 들고 들어와서는 저것들로 무엇을 할까라고 생각하며 웅성거리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 모든 것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여기 있는 쓰레기통에 담을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문제를 쉽게 맞혔다. 가장 큰 고철 덩어리를 먼저 넣고, 그다음으로 각종 플라스틱을 넣는다. 다음에는 부피가 큰 순으로 자갈과 모래를 넣고 마지막으로 흙을 담는다. 교수님은 다른 방법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면서 역순으로 쓰레기통에 담아보았다. 학생들은 웃으면서 그런 방법으로는 쓰레기통을 채울 수 없다고 했다. 교수님은 ‘왜 그러한지?’에 대해 다시 물었다. 학생들은 알갱이가 작은 것을 먼저 쓰레기통에 넣으면, 큰 물건이 들어갈 틈이 없다고 하셨다.
교수님은 정답이라고 말하며, ‘우리의 인생도 이와 똑같다’라고 말했다. 작은 일을 먼저 채우면, 당장에는 기분이 좋고 즐거울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인생에 채워야 할 중요한 것들을 담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중요한 일을 우선순위로 만들라는 것이었다.
나의 꾸준함의 비결도 여기에 있다. 바로 공부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정하고, 다른 곳에 사용할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가치라는 것이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가치로 선정해서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최우선의 가치이다.
운동을 하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되는지 묻는 친구들도 있다. 내가 운동을 좋아하기에 축구와 공부의 병행에 대해 궁금했던 것 같다. 사실 나처럼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운동을 하지 말라’라고 말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그만큼 축구는 나에게 소중하다. 누군가가 ‘축구 금지령을 내려서 나의 취미생활을 빼앗는다면 내가 공부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견뎌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축구는 공부 시간을 빼앗아가기는 하지만 적절하게만 통제할 수 있다면 생활의 활력소를 제공해 준다.
문제는 ‘적절하게’라는 말의 범위일 것이다. 처음에는 이 개념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해서 혼선을 빚었다. 나에게서 ‘적절하게’라는 말의 의미는 운동할 시간을 미리 정해 놓는 것이었다. 체육 시간, 저녁 식사 후의 야간자율학습에 들어가기 전의 쉬는 시간, 시험이 끝나는 날이 내가 축구를 하는 날이다.
체육 시간이 들어 있는 날은 그 전날, 가방에 체육복과 축구화를 챙겨 넣을 때부터 기분이 좋았다. 상쾌한 긴장감이라고 할까? 좋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은 확실히 공부에 활력소가 된다. 그 기분 하나만으로도 공부하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일정 부분은 해소된다. 그렇게 축구를 하며 운동장을 활개치고 나가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축구는 나의 겸손함을 탄생시킨 어머니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무언가를 사랑한 적이 없다. 어린 시절, 나의 축구는 단순히 공을 차고 뛰어다니는 게 전부였다면, 나이가 들면서부터 프리미어리그를 보며 축구는 상대에 따라서 다른 전략을 상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축구의 전략과 전술을 연구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포지션을 정해 놓고, 포메이션 변화와 약속된 플레이를 하며 전술에 대한 이해도와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작전을 만들었다. 축구는 알면 알수록 정말 끝이 없는 스포츠였다. 그리고 아무리 준비를 잘하더라도 상대하는 팀이 또 다른 전략과 전술로 변화를 주면, 우리 팀의 전략과 수비대형을 재빨리 수정해야 하는 복잡하고 예민한 스포츠이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단순히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많이 뛰어야 이기는 경기이지만, 상대에 맞춰 고도의 팀전략과 전술을 활용하고 선수에 맞춰 포메이션에 변화도 줘야 하는 고도의 두뇌활용 경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공부도 축구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부에 눈을 뜨긴 했지만, 축구처럼 공부도 알면 알수록 내가 모르는 부분이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자세 때문인지 나는 공부를 하면서도 겸손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아는 문제를 풀 때, 수업 시간에 선행학습을 했던 문제를 대할 때도 겸손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축구를 통해 나는 세상을 바라보았고, 축구를 하면서 공부 실력도 향상되었다. 그렇기에 누가 나에게 운동과 공부의 역학관계를 묻는다면,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운동과 공부의 관계는 절대적인 비례함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