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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일출 Jul 02. 2023

2017학년도 수학능력시험

불수능

고사장 앞에는, 뉴스로만 보았던,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응원하는 후배들이 몇몇 나와 있었고, 선생님들도 보였다. 괜히 아는 분을 마주치면 더 떨릴까 봐, 나는 앞만 보고 걸었다. 고사장에 도착한 후에, 내 자리를 확인하고는 교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문 바로 앞에 박**이라는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다. 내 자리는, 창문 쪽 맨 뒷자리였는데, 그 친구는 창문 쪽 맨 앞자리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초등학교도 같은 학교를 졸업했고, 무엇보다 3학년 때 같은 반을 했던 터라 더 반가웠다. 친구와 한 고사장에서 같이 시험을 친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조금은 풀렸다. 그렇게 잠시 얘기를 나눈 후, 8시에 자리에 앉았다. 계획했던 대로 국어 비문학 지문을 풀면서 머리를 예열하기 시작했다. 국어 지문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머리가 조금씩 회전하는 것을 느꼈다. 잠은 못 잤지만, 정신만 바짝 차리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뭔가 나의 집중력을 깨뜨리는 것이 있었다. 내 왼쪽으로 한 칸 앞에 앉은 학생이 다리를 심하게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떨고 있는 다리를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의식하면 할수록 신경이 쓰여서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그 학생으로 인해 수능을 망칠 것 같았고, 내 인생도 망쳐버릴 것만 같았다. 

5분 정도를 망설이다 용기를 내었다. 나는 마치 작정한 사람처럼 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곤 말했다. “저기, 죄송한데 다리를 떠시는 게 계속 신경이 쓰입니다. 죄송하지만 조금만 자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행히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몇 번 더 다리를 떨고 난 후에 더 이상 다리를 떨지 않았다.  

    

감독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모든 노트와 소지품을 제출하고, 수능 국어를 치는 시간이 다가왔다. 선생님은 OMR 시험지를 나눠주고, 시험지를 나눠주었다. 

시험이 시작됨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나는 시험지를 펼쳤다. 익숙한 화법과 작문 문구가 보였다. ‘어, 그런데, 왜 이렇게 글자가 많지?’ 그다음 페이지를 넘겨도 글자가 너무 많았다. 순간, 나는 이 시험이 시간이 부족할 것임을 직감했다. 갑자기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실수를 조금이라도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내 심장박동수는 올라가며 허겁지겁, 정신없이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법 문제에 도달했다. 원래는 쉽게 이해되는 것들이었는데 갑자기 눈에 글자가 들어오지 않으면서 지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그냥 대충, 느낌이 가는 데로 찍고 비문학으로 넘어갔다. 

비문학도 쉽지 않았다. 무슨 논리실증주의자며, 스트렙토코커스며, 보험에 관한 지문이 출제되었다. 내겐 너무나도 벅찬 문제들이었다. 말 그대로 멘탈이 나가버렸다. 중간중간의 문학들도 쉽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나의 초점은 빠르게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맞고 틀리고는 그다음 문제였다. 그냥 내 손이 가는 대로, 그게 정답이길 바라면서 문제를 풀었다. 정신없이 풀다 보니 마지막 문제인 45번에 도달해 있었다. 나는 생각할 시간조차 없이 OMR카드에 마킹을 했고, 마킹이 끝나자마자 시험이 마치는 종이 울렸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감독관님이 나가고, 시험장 안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우는 학생, 한숨 쉬는 학생, 기뻐하는 학생. 나는 어떤 부류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냥 내가 정신없이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찍은 문제들이 맞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그러다가 차라리, 다음 과목인 수학 시험을 준비하자는 생각에, 수학 요약집을 꺼내 들었다. 생각은 가상했지만, 단 한 글자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위기 상황에서 평소의 루틴을 다시 살리려고 노력하는 나만의 모습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일단, 지금 국어에 신경 쓰면, 수학까지 망할 것이기에 국어 시험은 잊기로 했다. ‘국어 시험은 다른 학생들도 틀림없이 어려웠을 거야’라며 나 자신을 위로하며, 수학 시험은 시작되었다.

맨 첫 장의 1번부터 4번까지 가볍게 풀렸다. 슬쩍 21, 29, 30번 문제를 보니 풀어볼 만했다. 탄력이 붙으면서 15번까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그렇게 잘 풀어나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16번에서 막혔다. 

이게 뭐지? 완전 처음 보는 문제였다. 분명 벡터 문제인데, 아무리 계산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 16번밖에 안 되었지만, 나는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 방법, 저 방법을 쓰면서 문제 풀이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결국 나는 11시 30분쯤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걸 잡고 있을 게 아니구나. 급하게 다음 문제로 넘어갔지만, 내 마음은 조급할 대로 조급해져 있었다. 남은 문제들 모두 만만하게 보이지 않았고, 결국 ‘그냥 풀 수 있는 것만 풀고 나머지는 다 찍자’라는 생각으로 나머지를 풀었다. 그렇게 절망에 빠진 채 마킹을 하고, 시험지를 냈다. 그냥 정시로 의대를 가는 것은 포기하고, 논술 최저를 맞추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머지 영어와 과탐에서 모두 1등급을 맞아야 했다.

마음에 큰 부담감을 가진 채,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은 아직도 따뜻했다.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팠다. 친구도 이번 수능은 완전히 망했다고 했다. 복도에 나가 누구에게 얘기를 들어봐도, 이번 시험은 어려운 시험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일단, 부모님께 실망을 끼쳐드리지 않기 위해서, 남은 시험에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이제 영어가 시작되었다. 영어는 내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과목 중 하나였기에, 자신감을 가지고 들어갔다. 듣기도 무난하게 끝이 나고, 이제 독해를 푸는데, 생각보다 순서 부분이 자꾸 헷갈렸다. 빈칸도 나름 잘 풀었는데, 순서가 헷갈리니 조금 불안했다. 그렇지만 나름 잘 끝내고, 생명과학과 지구과학까지 최선을 다해 풀었다. 

과학 탐구 같은 경우, 시간이 정말 부족했기에, 오전의 안 좋은 모든 기억을 잊고 문제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멘탈을 잘 잡은 덕분인지 아니면 마음을 비운 덕분인지 다행히 시험에 모든 것을 쏟아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몰입’ 상태로 문제를 풀어냈다.

     

여기까지가 내 첫 수능이다. 사실 지금의 수능과는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조금 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큰 틀은 유지된다고 믿으며, 최선을 다해 현장의 분위기를 살려서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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