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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일출 Sep 20. 2023

자녀의 꿈이 좌절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 힘들다

자녀교육,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학창 시절에 공부하기는 싫었지만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아 있었던 적이 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도 없는 세상이기에 책상에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일은 무료하기만 했다. 가끔 만화책을 보기도 했지만, 집에는 읽을 만한 책도, 시간을 보내면서 할 만한 일이 없었기에, 그냥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내가 책상에 앉아 있었던 이유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안방에서 TV를 보거나 놀고 있으면 아버지께서는 갑자기 공부 안 하냐며 소리를 버럭 지를 때가 있다. 놀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같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아버지의 고함을 몇 차례 듣고 난 후에는 점점 아버지를 피하게 되었다.


이후로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책상 앞에서 머물렀다. 책은 펼쳐져 있지만 공부는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다. 책상은 내 방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가끔 아버지께서 지나다니다가 문을 열고 내 방에 들어오실 때가 있다. 그럴 때 책상은 나를 지켜주는 은신처 역할을 다. 아버지의 기대대로 아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고, 또한 아버지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게 해 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책상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나름대로 ‘공부를 잘하려고 노력하는데, 성적이 안 나오는 것을 어떻게 하냐?’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어떨 때는 책상에 엎드려서 잠을 자기도 했다.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이 불편하긴 했지만, 공부하다가 지쳐서 잠들었다는 것을 연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옆드릴 때도 오른손에 연필을 쥐는 것은 잊지 않았다. 엄마는 책상에 엎드려 자는 나를 깨우며 누워서 편안하게 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나는 못 이기는 척하고는 누워서 편하게 잤다.     


학창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려보니, 나 자신에게 많이 부끄럽다. 그때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너무 한심하게 느껴진다. 또한 나를 스스로 챙기지 못하고 아버지의 눈치를 너무 살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크다.   

   

당시의 나는 스스로를 위해서 공부하지 않았던 것은 확실하다. 나의 공부 목적은 첫 번째는 아버지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아버지의 꿈을 실현해 드리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문제는 아버지의 꿈이 너무 크고도 원대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의사가 되길 바랐는데, 이는 내 실력으로는 터무니없었다. 말 그대로 꿈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일찍부터 학업을 포기해 버렸던 것 같다. 아버지의 꿈이 의사만 아니었어도 나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던 욕구가 상당했었기에 나는 아버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에 대한 부담감, 아버지를 실망시켰다는 미안함에 사로잡혀 감정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다. 스스로 삶을 설계하고 계획하지 못했기에 답답함을 느꼈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었기에 무력감이 자리 잡았다. 게다가 너무 어린 시절에 의사라는 짐을 지고 살다 보니, 학업에 대한 부담감으로 호기심이란 단어가 너무 일찍부터 도망가버렸다. 학습을 위한 정서적인 지원이 전혀 없는 환경에서 공부에 온전히 집중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요즘처럼 인터넷이라도 있었더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이런 환경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찾아보며, 삶의 출구를 찾아 나섰을 수도 있을 테지만, 당시의 나는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처럼 흐느적거렸고 그렇게 방황하며 나의 십 대는 지나가버렸다.


그런 부정적인 경험 때문인지 나자녀교육에 있어서 자율성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리며,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자신의 꿈을 발견한다면 조금 늦더라도 충분히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부모인 나의 역할은 아이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자녀가 생각하는 진로에 대해 충분히 대화하며, 자식이 걸어가는 길을 지켜보고, 그 길을 응원하고 끝까지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호기심과 주도성, 자발성을 살려준다면 자녀 혼자서도 자신의 꿈을 발견하는 즐거운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학습에 노출시킬 때는 재미있게 접근해야 한다. 최소한 본인 의사와 달리 등 떠밀려 공부하는 일은 없게 해야 한다. 억지로 하는 공부는 학습에 좋은 경험을 줄 수가 없다. 무엇이든지 본인이 좋아하고 즐거운 경험을 한다면, 강제로 밀어 넣지 않더라도 스스로 찾아서 하게 되어 있다. 물론 공부가 재밌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것과 타인에 의해 반강제적인 학습은 차이가 크다.

    

그런 교육철학으로 무장해서 나는 '아이를 억지로 공부시키지 않겠다'라는 마음으로 학습에 접근하였다. 강압적인 공부에 이끌려 호기심을 잃은 무기력한 인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와는 달리 아내는 아이가 기본적인 것은 알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공부할 수 없으면 남들처럼 학원에 다니면서 기본기를 쌓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아이들은 유연하고 학습력이 뛰어나서 어린 시절에 많은 것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라고 했다. 그렇기에 "아이에게 어릴 때부터 양질의 교육을 체계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라고 했다.     


"아이의 호기심 자극을 위해 좀 더 기다려주자"라고 말하는 나에게 아내는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니냐? 그렇게 기다리다가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 끝까지 기다릴 거냐? 그러다가 학업에 실패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라고 응수했다. 이 질문에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성공하면 좋겠지만 실패할 수도 있다. 또 실패한다면 전적으로 실패에 대한 책임은 모두 내가 떠안아야 한다.     


부부 사이에 교육관이 일치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혼선을 준다. 교육관으로 인해 서로 대립하기도 하고, 부부 사이도 나빠질 수 있기에 우리는 아들의 학업과 관련해서 타협하기로 했다.      


‘수학학원만 다니자’     


수학학원만 다니는 것은 이유가 있다. 일단, 수학이 안 되면 대학 진학이 힘들다. 수학은 체계적이고 연결성이 강한 학문이라 기초가 없으면 고학년에 이르러 수학을 잘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기본만 따라가자'라는 뜻으로 수학학원엘 보냈다. 나머지는 고등학교에서 노력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수학학원을 다녔지만, 아들은 수학을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집에 오면 책은 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숙제도 거의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학습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아들은 시험 기간에 잠깐 공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공부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학업을 도와준다며 책상 앞에 함께 앉아 공부도 해봤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성적은 눈에 띄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아이가 언젠가는 학업에 관심을 가지며 자율적으로 공부를 할 것이라고 믿고 기다려왔다.   


이런 마음으로 아이를 키웠지만, 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학업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을 놓쳐버렸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는 다시 학업에 도전하겠다는 다짐을 받았는데, 코로나로 인해 등교 수업을 실시하지 않고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학업의 모든 상황이 한순간에 종료되어 버렸다.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으니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몸도 마음도 공부와는 멀어져 버렸다. 애초부터 잘 모르는 단원을 의지가 약한 아이가 따라가기에는 무리였을 수도 있다.

코로나 상황에서 수업을 받을 때도 온라인 기기를 사용하다 보니 아이는 점점 스마트폰과 게임에만 빠져들었다. 그렇게 아이의 성적은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미처 손도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추락해 버렸다.


이런 상황에까지 우리 아들이 내몰릴 줄 몰랐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서 고등학생들이 거쳐가는 길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잘 알고 있는데도 이런 결과를 맞이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수학을 포기한 것은 어쩌면 나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내 말대로 내가 너무 이상적이고 순진한 교육관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 상처가 너무 깊어서 아이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자녀의 꿈이 좌절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 힘들다. 아이가 어릴 때, 열감기를 앓아 고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이 대신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이가 아파서 울 때면  어쩔 줄 몰라 애가 탔는데, 아이가 학업과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아이가 아플 때보다 훨씬 더 마음이 쓰라리고 견디기가 힘들다.

아이가 아플 때는 아이 곁을 지키며 해열제를 먹이고, 찬물을 수건에 적셔 아이를 닦아주면 아이는 언제 그랬냐 듯이 다시 회복한다. 하지만 학업은 그렇지 않다. 한 번 내려앉으면 원래대로 복귀한다는 것은 보통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학습할 의욕이 없는데, 이를 어떻게 돕겠는가? 도와주고 싶지만, 도움을 거부하니, 부모의 조언은 잔소리로 들릴 뿐이다. 괜히 말을 잘못 붙였다가는 서로 감정만 상하게 된다.

 

아내는 아내대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일이 나로 인해 발생했다며 나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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