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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일출 Sep 24. 2023

아들을 LoL에게 빼앗겼다

아들이 게임중독에 빠졌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전조가 있긴 했다. 아들은 3학년에 접어들면서 일명 롤이라고 불리는, League of Legends라는 게임을 시작했다. 처음 컴퓨터에 앉을 때는 1시간 이내로 조절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게임을 시작하기만 하면 몇 시간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컴퓨터가 거실에 있기에 가족들은 아들이 게임하는 모습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게임에 사로잡혀 있는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들을 그냥 둬도 되나? 아니면 강제로라도 게임을 하지 게 해야 하나?’로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혹 컴퓨터를 꺼버릴까?’ 아니면 ‘망치로 컴퓨터를 부숴버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만 하는 아들을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아이와의 관계가 서먹해지고,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에게 훈계라도 하면 오히려 관계가 틀어지기 십상이기에 아들의 게임을 바라만 보았다.

   

게임에 관해 아이에게 훈계하기 전에 LoL과 관련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최소한 그 정도의 노력은 있어야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대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래에 내가 알게 된 LoL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LoL은 MOBA 장르의 게임이라고 하는데, 이는 Multiplayer Online Battle Arena의 약자로 팀 기반 멀티플레이어 전략 게임을 말한다. LoL은 팀원이 협력해서 상대방의 '넥서스'를 먼저 부수면 이기는 게임이다. 넥서스란 상대편 기지에 위치한 거대한 건물로 상대의 본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본진을 각자가 영웅 캐릭터를 선택하여 팀원들과 협력해서 공략하는 게임이다. 자신의 티어, 즉 계급을 승급시키면서 친구들과 함께 적을 물리치는 게임이기에 게임을 진행할수록 친구들과의 연대감은 더욱 끈끈해진다.


우리나라에는 남자 중·고생의 절반 정도가 이 게임을 한다고 전해진다. 남학생들 사이에서 LoL을 하지 않으면 일상적인 대화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한번 맛을 들이고 나면,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LoL은 중간에 게임을 끊을 수 없다고 한다. 혹시라도 일찍 게임을 끝내려면 항복을 해야 하는데, 항복을 아무 때나 할 수도 없게 설계해 놓았기 때문이다. 항복하려면 게임이 시작되고 20분이 지나야 가능하고, 항복하려는 팀 과반수가 항복해야 게임이 끝난다. 그러다 보니 게임 중간에 밥을 먹을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없다.

혹시라도 전원을 끄거나 게임을 강제적으로 종료하게 되면, 게임에 지게 되니 친구들에게 욕을 먹는 것은 당연하고, 함께 참여한 친구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 힘들게 쌓아 올린 친구들의 티어를 떨어뜨리는 주범이 되기에 함부로 게임에서 빠져나갈 수도 없다. 무단으로 게임을 종료 시에는 벌점을 받게 되고 레벨이 하락하게 된다. 관련해서 신고를 당하면 계정 정지까지 당할 수 있다고 한다.     


게임과 관련한 조항을 살펴보니 사용자인 유저보다 게임 회사에 지나치게 유리하게 작성되어 있다. 이런 부당한 조항을 유저들이 기꺼이 감수하는 것을 보면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고 중독적인지 추측할 수 있다.      


나는 남자고등학교 교사이기에 학생들이 LoL에 빠지는 모습을 관찰한 적이 몇 번 있다. LoL을 하는 학생들은 폐인처럼 보인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않기에 당연히 수업 시간에 엎드려서 잠을 자고, 깨어있더라도 비몽사몽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게임이 끝나면 유튜브로 LoL과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거나, 온라인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찾아보며 실력향상을 꾀한다. 하루 종일 LoL을 하고, LoL과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고, 어떻게 하면 LoL에서 승리할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렇게 LoL에 중독되어 버리면 공부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아들도 비슷한 증상을 겪었다. 당시 우리 집에 있는 컴퓨터는 횟수로 대략 4년 정도 되었는데, LoL 게임을 하기에는 성능이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게임 중에 일시적으로 동작이 멈추거나 지연이 생기는 랙이 발생했다.      

아들은 게임을 하다가 한 번씩 랙이 발생했다고 혼잣말로 투덜댔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을 아는지, 컴퓨터에 대한 불만은 그리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평하지 않는다고 해서, 게임에 대한 만족도가 충족될 리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아들은 PC방을 찾았다. 아들은 PC방에서 친구들과 모여 게임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들의 게임에 대한 관심은 벡스코에서 열리는 G-STAR에도 참가할 정도였다. G-STAR란 대한민국 게임대전을 잇는 게임쇼로 게임사에서 신작이나 베타버전을 게임 마니아층에 공개해서 테스트하는 게임 관련 이벤트이다. G-STAR에는 국내 업체뿐만 아니라, 외국의 거물급 게임업체도 참가하기에 그야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게임대전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부속행사로 e스포츠 대회도 열리고 게임 관련 방송인들도 참가한다. 뿐만 아니라, 국산 대형 온라인 게임들의 신작 발표도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니 그 규모와 관심 측면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게임 이벤트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들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G-STAR에 참가했는데, 부산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참가하려면 새벽부터 일어나서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으이동해야 한다. 다시 전철로 벡스코까지 찾아가야 하는데,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에 도착한 다음, 전철을 갈아타야 하기에 이동하는 시간만 2시간이 넘게 걸린다. 이런 어려움에도 아들은 이 행사에 3번이나 참가할 정도로 게임의 열혈팬이다.


중학교 3학년 때에는 코로나가 발생해서 G-STAR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PCR 검사 음성 확인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아들은 이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했다. 먼저 PCR 검사를 하는 병원을 찾아 친구들과 PCR 검사를 받았다. G-STAR가 열리기 며칠 남지 않았는데, PCR 검사의 결과가 날아오지 않아 병원에 문의해 보니, 아들이 수기로 써 놓은 전화번호가 제대로 식별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문자 메시지가 날아갔다고 한다. 아들은 자신의 전화번호를 수정하였고, 다시 음성확인서를 전달받아 G-STAR에 참가하였다. 그렇게 G-STAR에 참가한 후에 각종 게임을 즐기고, 경품을 받고, 행사상품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났다.


나는 대학생 때, 스타크래프트에 빠진 적이 있다. 게임을 잘하기 위해 혼자서 밤을 지새우며 연습했었고, 교보문고에 가서 시중에 나와있는 단행본을 보며 유닛 사용법과 전략을 연구했던 적도 있었다. 게임에서 막혔던 부분을 기억하고 있다가 찬구를 만나면 자세하게 물어봤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인터넷 자체가 일반 가정에서 그리 흔했던 시기가 아니었기에 스타크래프트는 PC방도 탄생시킬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가끔 PC방에 가서 유저들이 만들어 놓은 ‘진짜 초보’라는 방에 들어가서 그동안 연마했던 게임 실력을 발휘해 보지만, 온라인 게임방에는 초보들은 없다. 대게는 유닛 생산을 얼마 해 보지도 못하고 상대의 기습공격에 패할 뿐이다. 이기고 싶은 마음에 새로운 게임을 하지만, 1게임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 혹시라도 이기면 이긴 쾌감에 한 게임을 더 하고, 지면 억울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한 게임을 더 한다. 그러다 보니 날 새는 줄 모르고 게임을 하게 된다.


아들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낮에는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밤에는 집에서 게임 관련 유튜브를 보고 있으니, 어찌 중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게임에 중독된 아이를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에 이렇게 시간만 허비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게임에 빠지는 건 순간인데 건져 낼 방법이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아내는 아들이 게임만 한다고 야단을 쳤다. 아무래도 남자아이의 특성과 게임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들이 공부와 담을 쌓고 게임만 하는 것을 바라보기가 답답했을 것이다. 나도 보기 힘든데, 한 번도 게임을 해 보지 않은 아내가 아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내는 아들을 학원이라도 보내야겠다며 팽팽하게 대립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공부를 강요하고, 아들은 공부에 뜻이 없는 것 같았다. 둘 사이에 언제 터져도 모를 긴장이 느껴졌다.     


물론 불똥은 나에게도 튀었다. 아내는 ‘내가 교육에 대해 너무 순진하게 다뤄서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라며 비난했다. 아이 교육 문제로 아내와 다툼이 잦아졌다. 처음엔 공부 문제로 공부 문제는 평소의 불만으로 이어지며, 싸움의 횟수와 정도가 점점 더 심해졌다. 신혼 이후로 이렇게 자주 싸운 적이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날들이 지속되었다.     


아내 말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맞는 것도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일방적으로 공부시킨다고 해서 부모의 바람처럼 공부하지 않는다. 게다가 컴퓨터 게임과 PC방은 아이들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남자아이들은 게임에 더 잘 노출되고 취약하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를 막무가내로 야단친다고 해서 아이가 부모 마음에 맞게 행동하겠는가?


그 사이에 아들은 키가 175㎝까지 자랐고 더 이상 엄마를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공부하기가 싫어서인지 아니면 엄마를 거부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아들은 공부에 담을 쌓아갔다. 집 안 분위기는 냉랭했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운이 감돌았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말로만 듣던 사춘기의 거센 방황이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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