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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일출 Sep 10. 2023

아들이 수학을 포기했다

아들이 공부를 등한시한 것에는 내 책임이 크다

2020년의 가장 큰 이슈는 코로나19였다. 우리나라는 코로나가 심각한 나라들처럼 필수적인 사회 경제 활동을 제외하고 모든 활동을 중단시키는 셧 다운은 실시하지 않았지만, 팬데믹의 정도에 따라 사회적 거리 두기를 단계별로 실시했다.


정부는 감염병 환자와 접촉한 사람을 추적하여 밀접 접촉자로 분류하여 시민들로부터 격리시켰다. 사람들이 밀집한 곳은 코로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되도록 피했고, 재택근무제 및 탄력근무제를 유도하면서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처절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가게는 9시면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식당보다는 배달 음식을 이용했다. 국민은 KF94 및 KF80 마스크를 쓰며 생활했고, 외출 시에는 손 세정제 및 손 씻기를 생활화하면서 개인위생을 강화하였다.     


우리 아들은 이 시기에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식 때 학부모를 학교에 들이지 않는 바람에 졸업 사진도, 친구들과 애틋한 석별의 정도 나누지 못했다. 졸업식이 끝난 후에 학교밖에서 아들을 픽업한 후에 중국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쓸쓸한 졸업식을 기념하였다.      


그렇게 아들은 2021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코로나로 인하여 등교수업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당시에는 회사도 재택근무가 실시될 정도이니 학교도 교육부의 정책에 따라 대면 수업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교육부는 온라인 화상수업 플랫폼을 사용하여 학생들을 관리하고 수업을 진행하도록 하였고, 교사들은 프로그램 사용법을 숙지하고 그에 맞는 수업을 개발하였다.


아들이 학교에는 입학했지만, 교과서 배부를 위해 등교한 것을 제외하고는 등교수업은 언제 시작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들은 중학교 때 학업에 게으름을 피워서 새롭게 공부해야 해야 할 영역이 많았는데, 시작부터 제대로 된 학업 기회를 놓쳐버렸다. 일시적으로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아이가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고, 교사와 함께하는 능동적인 수업이 아니라 수동적인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학업보다는 점점 컴퓨터 게임에 빠져들었다.


대면 수업으로도 따라가기 힘든 수업을 모니터만 멍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아들은 온라인으로 출석한 후에는 수업을 틀어 놓고 친구들과 게임을 하기도 했고, 유튜브를 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친구들과 밤을 새우며 게임을 해서 수업 시간에 잠을 자기도 했다. 아내와 나는 출근을 해야 했기에 아들의 적응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가 없었다. 아들이 깨어있는지 직장에서 연락하는 것이 우리가 아이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더니 아들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수학을 포기한 것 같았다. 사실 수학을 포기한 것도 중간고사 성적표를 보고서야 알았다. 고등학교에서 수학은 많은 것을 결정한다. 무엇보다 수학은 아이들의 꿈을 결정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다. 수학을 포기한다는 말은 취업이 잘 되는 이공계열의 진학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인문계열을 선택하더라도 국어와 수학의 영향력이 가장 크기 때문에 수학 성적이 좋지 않으면 본인이 희망하는 대학이나 학과에 지원하는 것이 쉽지 않다. 수학은 체계적이고 연계성이 짙은 학문이라 이전에 배운 내용을 숙지하지 않으면, 다음 내용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알지 못하는 내용을 계속 학습해야 하니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결국은 산만한 아이로 전학해 버린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학업에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공부에 담을 쌓는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너무 일찍부터 학업에 좌절하면서 꿈이 꺾이는 것을 많이도 봐 왔다.     


사실, 아들이 공부를 등한시한 것에는 내 책임이 크다. 나는 학창 시절에 아버지의 강요로 인해 공부를 했다. 특별히 뭐가 되고 싶다거나 하고 싶은 일은 없었지만, 아버지는 내가 의사가 되기를 원했기에 나는 당연히 의사가 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의사가 되기에는 너무나 큰 실력 차이를 느끼며 나는 커다란 좌절감을 맞보았고 학업에서 쓰라린 실패를 맛봤다. 나의 실패에 아버지는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었기에 나는 공부에 대해 상처만 남았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며 나의 공부 실패 이유를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첫째, 공부에 대한 주도권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있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공부를 했던 것이 실패의 큰 이유였다.

둘째, 나의 성향과 생각이 존중받지 못했기에 학습 동기가 부여되지 않았다. 나는 당시에 꿈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주입했던 아버지의 꿈을 거부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부할 수 없는 아버지의 강요는 학습을 방해하는 절대적인 요인이었다.

셋째, 적성에 맞지 않는 자연 계열을 공부하느라 학업에서도 애를 많이 먹었다. 나는 대학에서도 맞지 않는 적성으로 애를 많이 먹었다. 결국 다시 내가 원하는 인계열로 어렵게 되돌아왔지만, 이미 막대한 시간과 노력, 금전적 손실이 발생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억지로 하는 공부는 재미도 없을뿐더러, 효율도 오르지 않는다. 나를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보여주는 공부는 학업에 대한 동기를 제공하지도 못할뿐더러, 좋은 성적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 안 좋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될 수 있으면 아들에게는 공부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실제로 그것을 잘 지켜왔고 아들에게 공부하라는 강요를 하지도 않았다. 아이가 스스로 학습하기를 기다려왔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결의도 다졌었다.


아들과 관계를 잘 유지하면서 학습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걸음대로 천천히 나아가면 자신의 꿈을 발견할 것이라고 믿고 기다려왔다. 그렇게 한 걸음씩 아이가 전진할 것을 기대했는데 코로나의 확산으로 시작부터 커다란 장벽이 생겼다.


괴롭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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