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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일출 Jul 27. 2023

내면의 허기진 욕구 채우기

토마스 기차를 통해 나를 만나다

아들이 4살쯤, 그림책에 나오는 기차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다란 기차가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가는 모습에 손짓과 몸짓, 괴성으로 자신의 관심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증기기관차가 힘찬 기적을 울리며 철길을 달리는 모습에 아이가 반했던 것 같다.     


나는 아들에게 기차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아들과의 기차 여행이었다. 이름이 거창해서 기차 여행이지, 실제 우리의 여행은 매우 단순했다. 가까운 기차역에 가서, 정거장에 들어오는 기차를 타고, 일정한 거리를 갔다가 되돌아오는 것이 전부였. 그림책과 영상으로만 봤던 기차를 실제로 구경하고, 타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아이의 기차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인근의 함안, 의령, 밀양 지역을 방문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고사리손을 잡고서 낯선 시골길을 걸었다. 길을 가다가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가게가 보이면 간식을 사기도 했다.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지만, 아들은 기차를 타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다. 아들은 창밖에 펼쳐진 풍경을 가리키기도 했고, 벼가 익어가 모습을 쳐다보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 아들에게 손을 흔들 답례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들은 호기심이 폭발는지 눈에 보이는 것을 손짓하며 물었고, 나는 아들의 손짓에 따라 시선을 옮겨가며 설명느라 바빴.

아들과의 여행은 속도가 중요하지 않았다. KTX와 같은 고속철보다는 오히려 천천히 움직이는 무궁화가 안성맞춤이었다. 느리게 움직이는 기차는 아들에게 훨씬 더 풍족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나는 아들의 모습을 간직하고자 우리의 기차 여행을 사진으로 남겼고, 내가 찍었던 사진과 아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그림책을 만들었다. 아들 원하는 것들을 채워주기 위한 아빠의 노력이기도 했지만, 단순히 우리가 겪었던 내용을 아들이 책으로 읽으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이후로 아들 기차 사랑은 더. 기차와 관련된 책을 읽, 기차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으며, 기차와 관련된 애니메이션을 시청했다. 그중에서 아들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토마스 기차였다. 공교롭게도 토마스 기차는 책, 완구, 영상을 모두 갖추고 있었기에 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가 되었다.

게다가 그림책과 애니메이션은 토마스와 친구들이라는 시리즈물로 제작되었는데, 기차가 사람처럼 살아서 움직이며 각양각색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냈기에, 아이마스를 통해 구와 관계 맺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토마스 기차 장난감을 구매했다. 기차의 스위치를 켜면 엔진이 돌아가는 것처럼, 모터가 회전하면서 기차가 레일 위를 힘차게 전진했는데, 어른인 내가 봐도 신기했다. 아들은 토마스 기차를 가지고 역할 놀이를 했다. 장인물의 대사를 흉내내기도 고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놀이를 따라 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토마스 기차는 레일, 교각, 터널을 사용자가 원하는 데로 연결할 수 있는데, 아이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최적의 장난감이었다.


아들은 잠에서 깨면, 토마스부터 찾았다. 하도 많이 가지고 놀아서 금방 건전지가 방전되었고, 기차도 자주 고장이 났다. 가격이 저렴한 편이 아니었기에 똑같은 제품을 재구매해야 해야 할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시에는 당근이라는 중고시장이 없었기에 새 제품을 계속해서 구입하는 것이 망설여졌다. 아내는 어차피 토마스 기차가 아니더라도 다른 장난감 기차를 사야 할 상황인데, 이왕이면 아들이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내 말에 백번 수긍해서 기차가 고장이 나면 곧바로 새로운 토마스를 대체해 주었다.     


그러다가 토마스의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든, 도널드, 제임스, 퍼시, 에밀리 등의 기차가 있었는데, 시리즈물마다 이용할 수 있는 트랙이나 세트가 달라서 아이에게 새로운 자극  것 같았. 나는 이들을 하나씩 사들이기 시작했다. 기차역, 레일, 교각, 다리, 터널 등을 연결하면, 같은 기차놀이인데도 새롭고 창의적인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우리는 정거장에 새로운 레일을 깔고, 교각을 붙이고, 다리를 조립했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들의 눈 레이저 광선이 쏟아지는지 반짝반짝 빛이 났다.

나는 아들의 기차 운행을 촬영했다. 영상을 촬영하며 아들에게 오늘 건설 현장에서 가장 멋지게 설계한 부분이 무엇니까?” “토마스 기차가 다른 기차와 충돌하지 않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어떤 설계를 하셨습니까?”와 같은 질문을 했. 놀이를 하며 아이의 창의성과 호기심을 자극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딸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이 토마스 기차를 가지고 노는 게 자유롭지 못했다. 딸이 자고 있을 때, 거실에서 아들이 기차를 가지고 놀면 소음이 발생해서 아들을 제어해야 했다. 반대로, 딸이 깨어있을 때는 딸이 아들의 놀이를 방해하지 않도록 딸을 지켜봐야 했다. 가끔 딸이 움직이는 토마스 기차를 만지는 바람에 기차가 탈선하곤 했는데, 아들은 놀이에 방해받는 것을 싫어했다. 게다가 아이가 기어 다니다가 기차 용품에 다칠까 봐 사용 후 정리가 필요했다. 점점 불어나는 장난감을 둘 곳과 아들이 방해받지 않고 토마스 기차를 가지고 놀 수 있는 방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토마스 기차는 작은방으로 옮겨졌다. 커다란 투명 플라스틱 통을 사서, 작은방에 넣어두니, 아들은 기차놀이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그 시점에 나의 역할은 아들의 놀이 친구였다. 아이와 레일을 연결해서 기차를 한꺼번에 돌리면 마치 레이싱 대회가 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장내 아나운서가 되어 기차의 이름과 특을 설명하면서 아이와 열심히 놀았다. 아들에게 레이서의 장단점을 물어보, 레이싱을 중계하기했다. 그야말로 놀이 삼매경에 빠졌다.


나는 기차놀이를 좀 더 재미있게 해 볼 심산으로 다양한 기차를 주문했다. 아들을 놀래줄 마음으로 아이가 잠든 틈에 트랙을 구상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흥미로운 라인을 설계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거듭하며 레일을 조립했다. 한 정거장에는 플랫폼이 4개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기차가 동시에 4대까지 출발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한 다양한 교각과 다리를 레일에 연결해서 한 번에 8대가 시간 간격을 두고 연속으로 출발할 수 있도록 만들었.

토마스 기차 8대가 한꺼번에 레일 위를 달리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방안에는 엔진소리가 울려 퍼졌고, 기차는 레일 위를 미끄러졌다. 기차가 달리다가 한 번씩, 교차 지점에서 부딪혀 탈선하는 바람에, 사고를 수습해야 했지만, 장난감으로 이렇게 멋진 광경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줄은 여태 알지 못했. 말 그대로 압권이었다.    

나중에 아들에게도 내가 설계한 토마스 기차 레일을 보여줬는데, 상대로 아들도 뜨거운 반응을 보였. 어쨌거나 리는 한동안 토마스 기차놀이에 푹 빠졌었다. 어떨 때는 아들보다 내가 더 재미있게 노는 것 같기도 했다.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게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나의 작은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아 기뻤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토마스 기차에 진심이란 것이 이상하기도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깨달은 게 있다. 당시, 토마스 기차를 열심히 사 모았던 이유가 아들을 위해서 아니었는 것을. 처음에는 아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구매하기 시작지만, 나중에는 아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순전히 나 스스로 토마스를 구매했. 살면서 물건을 그렇게 많이 질러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장난감을 말이다.


택배가 배달되었을 때 나는 혼자서 장난감을 조립했다. 아들을 놀라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들이 자고 있을 때 기차의 트랙을 설계했다. 이렇게도 만들어보고, 저렇게도 연결하면서 혼자만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했다.


나는 조립을 다 한 후에 만족감에 차서 토마스가 레일을 질주하게 했다. 토마스 기차가 레일 위에 쏟아질 때, 나는 기쁨과 환희를 맛봤다. 기차가 다양한 레일과 장애물을 통과할 때, 어린 시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장난감에 대한 나의 환상이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왜 그렇게 토마스 기차에 진심이었을까?’


내가 토마스 기차를 가지고 아들과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놀았던 것은 아들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아들을 피해서 토마스 기차를 주문했고, 조립했고, 가지고 놀았다. 이런 모습은 아들을 위한 아빠의 모습이라기보다 아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주도적으로 기차놀이를 하고 싶었던 어린아이 모습과도 유사하다.


나는 토마스 기차놀이를 하며 나는 시절에 채워지지 않은 나의 내면 아이를 발견했다. 장난감을 마음껏 가지고 놀아보지 못했던 어린아이가 잔뜩 웅크린 채로 내 안의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토마스 기차를 통해 해방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내가 토마스 기차에 그토록 진심이었던 이유를 말할 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채워지지 않은 내면의 허기진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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