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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일출 Jul 28. 2023

내가 먼저 채워져야 타인을 돌볼 수가 있다

명품에 대한 단상

나는 물건을 풍족하게 사 본 적이 없다. 물론 풍족하다는 개념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돈에 구애받지 않고 물건을 사본 적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비슷한 물건이 있으면 좀 더 싼 걸 선택했다. 재정적으로 여유 있었던 적이 없었기에 원하는 것이 있더라도 마음대로 살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아끼며 사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풍족한 삶을 크게 바라지도 않았다.

좋은 물건에 대한 욕심도 없다. 물건 때문에 생기는 안타까움이나 애달픔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고 싶은 물건이 있더라도 조금만 불편함을 감수하면 되었기에 물건에 대한 간절함도 없었다.        

   

‘어차피 물건이란 게 사용한 다음에는 버려질 건데, 굳이 좋은 제품을 살 필요가 있을까?’     

     

겉으로는 물건에 대한 구매 욕구가 없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토마스 기차를 사면서, 나에게도 물건을 풍족하게 사용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나는 부족한 것에 대한 불만과 불편한 감정을 마음속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억압되었던 욕구를 여기서는 물건에 대한 불만족과 안타까움을 토마스 기차를 구매하면서 알게 되었다. 아들을 위해서 토마스 기차 세트를 종류별로 사들였지만, 실제로는 어린 시절에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보지 못한 나의 내면의 어린 자아를 위해 구입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토마스 기차를 대량으로 구매한 까닭은 아들의 놀이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의 내면에 채워지지 않은 구매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채워지지 않았던 장난감 구매 욕구가 아들의 토마스 기차 덕분에 충족되었다.      

   

이후로 나는 물건을 사는 데에도 눈을 떴다. ‘비싸고 좋은 물건은 사용하지 않아도 돼’라며 나 자신을 속이는 대신에 필요할 때는 비싸더라도 좋은 물건을 구매하였다. 좋은 물건을 사용하니 기분이 좋았고, 또 오래 사용할 수 있어서 만족감도 좋았다. 안 그래도 쇼핑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편인데, 좋은 물건을 오래 사용하니 쇼핑을 자주 하지 않아도 되어 생활도 더 편해졌다.

결정적으로 나를 스스로 챙기고 있는 나의 모습과 그리고 나에게 충실하다는 생각에 자존감도 높아졌다. 또한 나에게 솔직한 태도 일상에서 자리 잡자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원하는 좋은 물건을 구매하는 것으로 나의 행복지수가 높아졌고, 보다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물건을 사는 데 인색하게 굴지 않는다. 좋은 물건을 제값에 구매해서 오래 사용하는 것이 나의 소비패턴이 되었다. 그런 소비를 하다 보니 나에게 맞는 브랜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의 개성도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물건을 사는 것을 통해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결핍된 사람은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내가 먼저 채워져야 다른 사람을 돌볼 에너지가 생긴다. 없는 것을 억지로 짜 내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흘러넘쳐서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마음속에서 샘솟는 에너지를 만들어야 한다.    


비행기를 탑승하면 비상시 안전 수칙에 대한 방송을 하는데, 산소마스크 착용에 대해서 이렇게 안내한다.


‘마스크가 자동으로 내려오면 아이나 노인의 착용을 돕기 전에 본인이 먼저 착용하십시오’     


얼핏 보기에는 노약자를 먼저 챙겨야 할 것 같으나,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이와 같이 하는 이유는 타인을 돕다가 본인이 정신을 잃어버리면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 자신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타인을 사랑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내가 결핍된 상태에서는 타인을 돌볼 수도,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 자신의 바닥을 채울 때, 다른 사람의 삶에도 선한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나는 명품에 관심이 없고 사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이제는 명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명품을 사는 행위는 겉으로 돋보이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채워지지 않은 내면의 공허한 마음을 채우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명품을 구입하여 자신의 내면의 욕구를 채우고, 그 채움을 바탕으로 상대에게 사랑의 에너지를 전해 줄 수 있다면, 명품은 그 가치를 다한 것이리라. 그렇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명품을 선물하는 행위는 상대를 기분 좋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받는 사람의 결핍된 욕구도 채울 수 있게 해 준다. 이전에는 명품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는데,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자 명품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명품을 통해서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 자존감도 높일 수가 있다'     


그러고 보니, 아내도 명품을 사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텐데, 아내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마음을 내비치지 않았다. 쇼핑할 때마다 적당한 가격의 물건만 사서 오히려 내가 구박을 했다. 아내라고 그런 물건들만 사고 싶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게 살아준 아내가 고맙다. 그리고 아내의 구매 욕구를 너무 몰라준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결혼기념일 날에 아내에게 명품백을 선물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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