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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일출 Sep 01. 2023

아이에게 충만함을 선물하라

편의점을 털어라

편의점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들 가득하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않듯이 우리 아이들은 아파트 입구를 지날 때마다 편의점을 찾았다. 처음에는 눈깔사탕 하나면 충분했는데 점점 호기심이 커지는지 다양한 상품에 손이 가기 시작했다. 아들은 부피가 큰 과자를 집어 들었고, 딸은 작지만 아기자기한 풍선껌이나 젤리 같은 상품에 관심이 있었다. 아들은 5살, 딸은 3살 때이니, 5,000있어도 아이들은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편의점의 존재는 성인들의 백화점과 비교할만하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들보기 좋게 진열해 놓고 지나가는 꼬마들을 쉴 새 없이 유혹한다. 아이들이 편의점을 방문할 때 얼굴에 웃음꽃이 한가득 피어나는 것을 보면, 이곳에서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느끼는 것이 틀림없.     


나는 아이들과 편의점 방문하는 것에 인색한 편이 아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사줄 수 있다는 것에 그리고 아이들의 밝고 설레는 표정에 기꺼이 편의점 쇼핑을 즐긴다.     


그러던 중에 아내가 ‘아이들이 과자나 단것을 많이 먹으면 이가 상하고 밥을 많이 안 먹는다며 편의점 방문을 자제 것을 요구하였다. 아내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진 않지만, 육아에서 아내의 말은 법과 같으니 될 수 있으면 아이들을 편의점에 데려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평소에 편의점 방문을 엄격하게 규제하지 않았기에 아이들의 일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을 일방적으로 제지하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규제 수준을 높여 나갔다. 편의점을 하루에 한 번 방문했다면, 이틀에 한 번꼴로, 또 시간이 얼마 지난 후에는 사흘에 한 번으로 방문 횟수를 줄였다. 그렇게 아이들은 편의점 방문 규칙에 조금씩 적응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 나만의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시간 걸리지 않았다. 하루는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했다. 전날에도 편의점을 방문해서 원하는 간식을 었기에 나는 ‘편의점 방문 규칙'을 들이밀며 오늘은 방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꼭 먹어야겠다고 주장했다. 설명이 논리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아이들의 말을 요약하자면, 본인들은 이 규칙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아빠가 갑작스럽게 그리고 일방적으로 편의점 방문 규칙을 만들었고 실제로 방문을 줄였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얼굴표정에는 진지함이 그리고 제발 사 달라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난감했다. 막무가내로 주장하는 아이들에게 말이 통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강력함에 밀려 그날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 그러면서 다음에는 편의점 사용 규칙을 지킬 것을 한 번 더 약속했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약속을 힘겹게 지켜나가긴 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상황을 불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아이들과 순간순간 아슬한 줄타기는 계속되었다. 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행 아이들의 감정을 존중하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감정을 너무 억누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나는 해결책 마련에 고심했다. 편의점을 방문한다 하더라도 저번처럼 문제가 생길 때마다 데려갈 수는 없었다. 아이들 원한다고 해서 좋지 않은 것을 허용하는 것은 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약속이란 것이 상황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심어줘서는 안 된다는 것과, 아이들의 건강을 지켜주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아내는 이 상황을 아이들의 욕구 충족 문제로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편의점을 일정하게 방문했을 때의 감정을 만족이라고 본다면, 지금의 상황을 불만족, 즉 결핍으로 보았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편의점 이용에 대한 충만한 감정을 공급해 줄 수 있다면,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편의점을 이용하며 충만함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자고 했다.


아내의 가설은 그럴듯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넘치는 만족감을 공급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했다. 이전처럼 편의점에 찔끔찔끔 데려가는 것으로는 아이들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제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편의점 이용을 한 번만 하더라도 아이들이 원하는 물건을 성이 차도록 구매할 수 있도록 하자라는 결론을 내렸. 일명 ‘편의점을 털어라' 프로젝트였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 대해서 설명했다.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이들은 궁금한 게 많은지 질문을 쏟아 냈다. 제일 먼저 아들이 무엇을 얼마나 살 수 있나?”에 대해 물었다. 우리는 너희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무제한으로 살 수 있다라고 말해 주었다. 대신에 “먹는 음식이다 보니 상할 염려가 있기에 1주일 안에 먹을 수 있는 분량이어야 한다라는 조건을 달았다.     

처음에는 원하는 데로 사게 해주려고 했는데, 다 먹지 못하고 버리게 될 것을 염려해서 1주일 이내 먹을 수 있는 분량 정도를 사는 것으로 정했다. 아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어서 딸이 질문했다.     

만 원 이상 사도 돼?”

세 살밖에 안 된 딸에게 만 원은 엄청나게 큰 금액이었다.

그럼

아들이 질문했다.

아이스크림 10개 사도 돼?”

그럼

이어서 딸이 또 질문했다.

풍선껌이랑 젤리, 그리고 뿌셔뿌셔 사도 돼?”

당연하지, 원하는 것은 모두 살 수 있다니까     


아이들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살 수 있는 건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는 사고 싶은 것을 미리 생각해 두라고 말한 후에, 아이들이 너무 애간장을 태우지 않게 이틀 후에 편의점을 방문하기로 했다.     


작전은 이미 성공적이었다. 편의점에 가기 전부터 아이들은 이미 만족감으로 부풀어 올랐다. 무엇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인생 최고의 행복을 경험했을 것이다.           


마침내 D-day가 밝았다. 편의점에 들어서는 아이들은 정복자와 같았다. 작은 어깨를 꼿꼿이 세우고 의기양양하게 편의점을 털기 시작했다. 나는 바구니를 들고 아들을 따라갔고, 아내는 아내대로 딸 뒤를 따라다니며 바구니에 과자를 쓸어 담았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편의점을 접수하였다. 호기심 넘치고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편의점의 구석구석을 뛰어다녔다. 아이들의 눈빛은 마치 과학자가 실험하는 것처럼 예리하게 빛났다. 아이들의 눈빛이 빛날 때마다 바구니에 물건이 하나씩 담겼다. 아이들의 감각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물건을 너무 많이 사서 부모의 호주머니를 걱정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우리는 가득 찬 바구니를 계산대에 가져갔다. 과자 봉지가 가득한 바구니는 둘이 합해서 10만 원도 되지 않았다. 하기야 풍선껌, 캐러멜, 과자, 뿌셔뿌셔, 콜라, 사이다, 초콜릿, 아이스크림, 풍선 등을 더해봤자 얼마나 나오겠는가.

아이들은 의기양양하게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편의점을 나오자마자, 신이 났는지 통통 튀면서 집으로 뛰어갔다.

     

아이들은 신나게 과자 파티를 했다.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과자를 보며 아이들은 기뻐했다. 과자를 여기저기에 펼쳐 놓으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바로 이런 감정 '충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자기 물건에 예민하던 아이들이 관대해졌다. 오빠가 동생에게 풍선껌을 하나 줄 수 있냐고 물어보면 동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풍선껌을 건네주었다. 그것도 요구사항의 2배 또는 3배의 양으로 주었다. 오빠가 꼬깔콘을 손가락에 끼우는 모습을 보고 동생이 꼬깔콘을 줄 수 있는지 물어보면 오빠 역시 아낌없이 꼬깔콘을 나눠주었다. 이 모두가 풍족함에서 흘러나오는 여유로움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얼마 후에 우리는 편의점을 한 번 더 털었다. 두 번째 습격도 아이들은 첫 번째만큼 좋아했다. 편의점 털이 사건이 두 번 연속 이어지자, 아이들의 편의점 사랑은 거짓말처럼 끝이 났다.     


물론 필요한 물건이나 먹고 싶은 음식이 있을 때는 편의점을 방문하지만, 더 이상 편의점이란 것이 아이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은 아니었다. 편의점은 원래의 목적대로 필요할 때 방문하는 기능적인 곳으로 바뀌었다. 이 모두가 아이들 편의점 구매 욕구가 채워졌기 때문이었다.     


이후로는 편의점을 지나더라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먹고 싶은 간식이나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편의점을 들르자고 했다.


아이들에게 사고의 전환이 일어났다. 편의점이 욕망의 대상에서 필요의 대상으로 전환된 것이다. 아이들은 욕구가 충족되자 더 이상 편의점에 얽매이지 않았다. 나 또한 아이들과 쓸데없는 실랑이를 하는데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욕구 충족에 대한 중요성은 비단 아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인간에게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개인이라도 잠재력을 발휘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욕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타인들을 살피고 돌볼 것이 아니라 채워지지 않은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용기를 낼 때, 비로소 당신의 해결되지 않은 욕구가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그렇게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자신의 욕구에 예민하게 귀를 기울이고, 결핍된 욕구가 무엇인지를 발견 채워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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