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2년 월드컵, 대한민국이 한창 축구로 인한 열기로 뜨거울 때 태어났다. 우리 가족은
어머니, 누나, 나, 그리고 아버지로 구성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리며 밖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했다. 우리 아파트는 낡고 허름했지만, 사촌 형과 누나가 인근에 살았고, 또래 친구들도 많아서 놀기에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 학원 같은 곳엘 다니지 않았기에 그 시간을 온전히 노는 데에 쓸 수 있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파트 놀이터부터 찾았다. 놀이터의 모래를 밟는 순간, 실컷 놀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렜다. 그 시절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었다. 놀이터에서 뛰어놀다 모래를 뒤집어쓰는 날도 있었고, 미끄럼틀에서 뛰어내리다가 발목을 삔 적도 있지만, 나의 놀이터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따뜻한 봄이 찾아오면 모래로 집을 짓고, 뜨거운 여름에는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채운다음, 친구들에게 물총을 겨냥해서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물총 싸움을 하자고 따로 정해 놓은 건 아니었지만, 누구 한 사람이라도 물총으로 공격을 하면 그날은 하루종일 물총 싸움을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우리만의 놀이의 루틴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우리는 아지트도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텅 빈 아파트가 있었는데, 오랫동안 같은 동네에서 살다 보니, 아파트에 누가 사는지, 또 누가 이사 갔는지를 꿰뚫고 있었다. 누군가 이사 나간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그 집이 비워져 있다는 것을 알고는 친구들과 그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그러다가 갈 곳이 없을 때, 한 번씩 방문했는데 점차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다. 그 집에서 놀 때는 왠지 모를 긴장감이 몰려왔다. 언제라도 주인이 나타나서 우리를 쫓아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늘 경계하였다. 잘 놀다가도 집 밖에서 무슨 소리라도 나면 괜히 주눅이 들어서 하던 일을 멈추고는 복도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런 생활이 몇 번 반복되다가 이 집에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우리의 보금자리가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침 식사를 한 후에 아지트로 바로 출근하는 일이 우리의 일과가 되어버렸다. 한 가지 단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점심시간이었다. 아지트에서 한참 동안 놀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집집마다 점심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잘 놀다가도 점심때, 집에 들어가면 친구들이 다시 모일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다행히 아지트로 돌아오면 좋겠지만, 어떤 친구들은 집에 들어가면 못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는 이걸 해결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가스버너와 부탄가스를 가져와서 컵라면을 끓여 먹자고 했다. 우리는 소풍 가는 것처럼 상기되어서 각자의 집에서 준비물을 가져왔다. 친구 중의 한 명이 버너를 가져와서 불을 켰다. 친구들은 컵라면을 끓을 줄 몰랐다. 나는 챙겨줄 사람이 가끔 혼자서 컵라면을 끓여 먹기에 컵라면을 먹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라면 끓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친구들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따라서 했다.
다행히 컵라면은 집에서 끓일 때처럼 잘 익었다. 우리는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친구들은 라면을 제조할 줄 아는 나를 특별한 아이처럼 대우해 주었다. 사실 라면에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데, 친구들이 칭찬해 주니 왠지 기분이 좋아 어깨가 으쓱해졌다. 아지트에서 친구들과 함께 끓여 먹었던 컵라면은 다른 어떤 곳에서 먹는 진수성찬보다 맛있었다.
그렇게 놀았던 시절이 좋았다.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때 놀던 친구들과 약속한 것이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의 우정이 변치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