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이 다른 아버지

알코올 중독

by 최일출

성장하면서 나는 점점 밤이 두려워졌다. 밤에는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는 데에다 친구들도 집에 가버려서 심심했다. 특히 엄마가 늦게 오는 날이면 집에 들어가기가 두려웠다. 왜냐하면 아버지에게 정면으로 노출되기 때문이었다.

누나와 나는 집에 들어가는 시간을 최대한 늦추었다. 아버지를 만날 시간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서였다. 너무 늦으면 또 늦는다고 야단을 맞기에 해가 지면 집 근처의 공터에 숨어 있었다. 그러다가 누나가 집으로 돌아올 때 함께 집에 들어갔다.

혼자 들어가기에는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다. 누나도 나를 기다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아버지를 견뎌냈다. 집에 들어갈 때는 아버지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드리고 조용히 TV를 봤다.


그 시간에 아버지는 보통 술을 마신다. 아버지는 낮과 밤이 다른 분이셨다. 낮에는 따뜻하고 상냥하며 그 누구보다 의지가 되는 분이셨지만, 밤이 되면 술에 취해서 두려운 존재로 변했다. 어린 시절이라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아버지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고 사람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으면 상관없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우리에게 시비를 걸거나 잔소리를 퍼부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실 때는 집안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방에서 조용히 TV를 보고 있으면 “이놈의 새끼! 공부는 안 하고 텔레비전만 보나?”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면 누나와 나는 놀라서 가방에서 재빨리 책을 꺼냈다.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책만 펼쳐 놓고는 아버지가 주무시길 기다리는 것이다. 서로 눈치만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혼자서 술 마시다가 우리를 잊어버릴 즈음에서야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다.


어떨 때는 “이놈 봐라. 아버지가 공부하라고 했는데, 벌써 자나?”라며 호통을 치며 깨우기도 했다. 잠결에 아버지를 바라보면 “어디서 아버지를 꼴아보냐?”며 소리를 질렀고, 또 어떤 때는 “네 표정이 영 마음에 안 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라기보다 당시에는 아버지가 그냥 너무 무서웠다. 내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건 ‘술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였다.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시는 날엔 집 안에 화색이 돌기도 한다. 집안에 긴장감이 풀리고 가족들이 말을 많이 하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다. 보고 싶은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보고, 하고 싶은 게임도 했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앉은자리에서 일어나서 “아버지 다녀오셨습니까?”라고 인사를 하면 아버지는 “이놈아! 문 앞에 달려와서 인사해야지!”라며 소리를 지른다.

어느 날은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거대한 몸의 아버지께서 갑자기 몸을 짓누르며 나를 덮쳤다. 그러면서 “레슬링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얼굴이 사색이 되어 “항복, 항복”이란 말을 할 무렵에 나를 풀어주신다. 그러면서 “사내들끼리 몸으로 부딪치는 놀이도 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예고도 없이 육중한 몸으로 나를 뒤덮으며 레슬링이라는 게임을 한다. 몸무게가 75Kg 정도 되는 아버지가 겨우 30Kg밖에 안 되는 아들의 몸을 누르며 ‘쵸킹’이라는 기술이라며 목을 조른다. ‘세상에 어떤 아버지가 아들을 이렇게 괴롭힐까?’ 나는 이런 아버지에게 너무 화가 났다. 화가 나지만, 초등학생이 아버지를 상대로 어떻게 하겠는가? 그냥 참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의 레슬링이 끝나고 화장실에서 거울을 본 적이 있다. 거울엔 알지 못했던 낯선 모습의 아이가 서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핏기도 없는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다. 아이는 ‘씩’하고 웃었다. 사실 그 상황에서 웃음이 나올 형편이 아니었다. 나는 그 아이가 두려웠다. 나중에 자라면 아버지와 싸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나도 모르는 악마를 내 몸 안에 키우고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