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던 저녁, 나의 첫걸음
퇴근 시간이 되자 갑자기 비가 내렸다.
굵은 빗줄기가 도로 위 불빛을 번지게 했다.
와이퍼를 연신 움직이며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액셀을 밟았다.
그러면서도 미처 챙기지 못한 우산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오후 6시 50분.
청자켓을 뒤집어쓴 채 강의실 문을 열었다.
비를 잔뜩 맞은 내 옷자락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강의실엔
아무도 없었다.
오늘은
〈무지한 스승의 만남 – 과학편〉 첫 수업 날이었다.
자리에 앉자 문득,
‘어쩌면 나 혼자 앉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불안이 스며들었다.
평생학습관 팀장님이 다가와 말씀하셨다.
“신청은 여덟 분이셨는데,
비가 와서 출석률이 낮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한 분이 오셔도 진행해주세요.
두 분이면 더 좋고요.”
그분의 말이 어쩐지 나보다 더 떨려 보였다.
하루 종일 긴장했던 마음은
정작 시간이 되자 이상하리만큼 고요해졌다.
마치 모든 게
이미 예정되어 있던 일처럼.
오후 7시 5분.
문이 열리고 한 분이 들어오셨다.
“늦어서 죄송해요.”
그 말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준비해 온 영상을 함께 보았다.
로봇과 AI, 기술과 사람의 이야기.
50대 중반이라고 밝힌 그분은
나보다 훨씬 AI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작년엔 관련 자격증도 취득했다며
자랑스럽게 웃으셨다.
그 웃음이 고마웠다.
강사라는 자격으로 선 자리는 아니었지만,
오늘 나는 배웠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하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더 깊이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궂은 날씨에도 찾아와 준
그 한 분을 위해서라도
다음 수업은 더 알차게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문득,
10년 후의 내가 오늘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 내리던 저녁, 단 한 사람 앞에서 시작된 그 시간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노라.”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그 빗소리 속에서
나의 첫걸음이 조용히 세상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