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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서 가능한 일

by 표나는 독서가


나라서 가능한 일
평균의 바깥에서, 나만의 세계를 향해

그러므로 이제 난 기억할 것이다.
오늘부터 나는 다른 풍경으로 바로 볼 것이다.
나라서 가능한 일을 해야 한다.
그 풍경에 나의 희망도 존재하니까.
— 김종원,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한때는 다른 사람과 같아지려고 노력했다.
남들이 공부하니까 나도 졸린 눈을 비벼가며 책상에 앉아 있었다.
공부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에도 눈을 돌리거나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다.
그림을 그린다거나 메이크업을 하는 아이는
그냥 나와는 ‘다른’ 누군가일 뿐이었다.

대한민국의 평균값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쳤다.
수능을 보고 대학에 들어갔다.
딱히 ‘이걸 깊게 연구해야겠다’는 포부보다는
성적에 맞춰 적성을 억지로 끼워 넣었다.
그렇게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프랑스어를 전공으로 갖게 될 줄이야.

대학에 가서야 알았다.
나는 문과 체질이 아니라, 이과 체질이었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는 명제였건만.
단어를 외우고 문제를 푸는 것보다
수학 문제를 풀 때 더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여자니까 문과지.”
“불어책을 어깨에 끼고 캠퍼스를 누비면 멋있잖아.”

그때의 나는 없었다.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의 기준을 세워줬다.




사회에 나와서도 늘 다른 사람의 눈을 보며 선택했다.
잘릴 염려 없고 안정적인 공무원이 선망의 직업 1위였던 시절,
나 또한 그 길을 선택했다.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쪽으로.

나는 흙냄새, 나무냄새가 나는 시골이 좋았지만
‘환금성’이 좋다는 이유로,
남들이 살기 좋다고 말하는 대도시에 여전히 살고 있다.



마흔이 넘은 지금,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것이 아니었다는 걸.

그렇지만 여전히,
같이 읽고 쓰는 학우들의 바운더리를 벗어나면
엄마 잃은 아이처럼 초조하고 불안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모임 근처를
얼쩡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대단해 보였다.


“마음에 들지도 않는데 ‘다들 좋다고 하니까’ 따르는 경우가 얼마나 많나요?
제품 이름을 짓는데 다수결로 결정하고는 ‘집단지성의 힘’이라며 좋아하죠.
이래서는 평균밖에 안 됩니다.
모두가 좋아한다는 건,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 이창길, 『서울과 다른 길을 간다: 마계인천 기획자의 창조적 사고법』 , 롱블랙 노트 중


마계인천의 기획자 이창길 대장은
다수결, 평균, 집단지성, 표준화, 효율에 휘말리는 대신
‘나의 좋고 싫음’부터 존중하자고 말한다.

“매력은 결코 ‘평균값’이 아니다.
나만의 어긋남을 밀고 나가야만 얻을 수 있는,
외롭지만 특별한 성취다.”




늘 평균에 목말라 있던 나였기에
그의 말이 뇌리에 박혔다.

매력이 결코 평균값이 아니니,
너만의 것을 찾으라고 —
마치 내게 직접 말하는 듯했다.

흔들리지 말고, 뚝심 있게 앞으로 나아가자.
남녀노소의 구미를 모두 맞출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유니크하고 유일무이한 나의 세계를 만드는 일에 도전하자.
‘나라서 가능한 일’이
세상 어디에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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