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둔 마음의 거리, 20.26K

by 표나는 독서가

저마다 새해를 맞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일출을 보러 가거나, 묵은 때를 벗겨내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거나,
가족과 함께 떡국을 먹으며 한 해의 계획을 세우는 일처럼.

보통은 그렇게 새해를 보냈다.
그런데 올해는 문득,
20.26K를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타임라인에는 20.26K 인증 사진이 하나둘 올라왔다.
숫자는 가볍게 보였지만
그 거리를 실제로 떠올리자 마음은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인사이동으로 지쳐 있었다.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다.
운동화를 신는 일조차
괜히 나 자신을 더 몰아붙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이렇게 오래 쉬어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일요일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안일을 하던 중
러닝 친구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20.26K 인증샷과 함께.

그 순간 알았다.
이건 하고 싶고, 하기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더 미룰 수 없다는 신호라는 걸.

나는 단톡방에
“나도 뛰러 나갈게.”
라는 말을 먼저 던졌다.
말을 해버리면, 지킬 수밖에 없으니까.

신랑에게 계획을 이야기하자
그는 목적지를 바꿔보자고 했다.
멀리 가는 대신
지금의 컨디션에 맞는 선택을 하자고.
오래 달리기 위해
이동거리를 줄이는 쪽으로.

기흥호수공원에 차를 세웠다.
전날 이미 23K를 뛰고 온 신랑은
각자의 속도로 달리자는,
자기만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익숙한 코스는
몸이 먼저 거리를 계산한다.
어느 지점에서 힘들어질지,
어디쯤에서 마음이 먼저 흔들릴지.

그래서 새로운 코스를 좋아한다.
같은 길이라도
시작점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어디까지 가볼까’
혼자 묻고 답하며 달리는 시간이 좋았다.

추운 날씨에 몸은 잔뜩 움츠러들었지만
햇빛은 생각보다 따뜻했고
엉덩이에 붙인 핫팩은
나를 현실로 붙들어주었다.

14K 지점, 기흥역에서 방향을 틀었다.
이미 충분히 달려왔지만
이곳은 늘 시작하던 구간이라
마음이 이상하게 가벼워졌다.

햇빛에 반짝이는 윤슬,
각자의 속도로 이 공간을 즐기는 사람들.
달리는 사람, 걷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
괜히 나도 괜찮아진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판단 미스였다.
도착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17K.

결국 같은 곳을 맴돌기 시작했다.
몸이 급격히 가라앉았다.
정강이, 발가락,
그리고 생전 아파본 적 없던 고관절까지
차례로 말을 걸어왔다.

이쯤에서 그만둘까.
인증이 뭐라고.
혼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도 멈추지는 않았다.
속도를 줄이고, 걷고, 다시 뛰면서
결국 그 숫자에 도착했다.

20.26K.

새해 첫 달리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숫자를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도
올해가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다들 이 감각을
기대하며 이 거리를 뛰었을 것이다.

내 인증을 단톡방에 올리자
또 한 사람이 뛰러 나갔다.
같은 날,
각자의 자리에서
세 사람이 같은 숫자를 통과했다.

2026년.
이 해의 시작은
조금 늦었지만
분명히, 내 발로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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