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려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시작’이라는 단어에는
설렘과 기대,
소망과 희망 같은
밝은 기운이 담겨 있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앞으로 내 삶에 일어날 변화를 상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을 끝마쳤을 때의 벅참,
어쩌면 주변 사람들의
조금은 동경 어린 눈빛까지도.
하지만
이 좋은 기운 속에서도
어느 순간 나약함이 고개를 내민다.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 먼저 떠오르고,
중간에 포기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스며든다.
끝내 완성하지 못한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
혹은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까지
혼자서 상상하게 된다.
처음에는 먼지만큼 작았던
이 부정적인 감정은
어느새 단단히 뭉쳐져
나를 집어삼킬 만큼 커져버린다.
그리고
생기발랄하게 움직이던
모든 긍정의 기운을
조용히 삼켜버린다.
풀마라톤을 뛰겠다고
공언한 지 두 달이 지났다.
대회까지는 이제 한 달.
하지만 그동안
뭉게뭉게 커져버린 부정의 쓰나미가
나를 집어삼킨 지도
이미 한참이 되어버렸다.
장거리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이
부담스러웠을까.
마라톤을 완주하지 못할 거라는,
실력도 안 되는 네가
언감생심이었다는 시선을
피하고 싶었던 걸까.
그러다 문득
처음 달리기 시작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저 멋모르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운동화를 신고 새벽 거리를 나섰던 그 날.
차가운 공기와
조용한 거리,
그리고 내 발소리.
나는 그저
그 공기가 좋았을 뿐이었다.
기록과 데이터가
무슨 의미였을까.
그저
기분이 이끄는 대로 달리면
그곳이 나의 세계였는데.
괜히 풀마라톤을 신청했나 싶었다.
지금이라도 취소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추가 접수로 얻은 티켓이라
거리를 바꾸는 것도
취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마음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완주’라는 거대한 단어가
나를 삼켜버리기 전에.
DNF.
Did Not Finish.
출발은 했지만
결승선을 통과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DNF라도 하려고
출발선에 섰지만,
어찌 하다 보니
결승선에 들어온 나를 발견했다는
어느 러너의 이야기를
인스타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이제 남은 한 달.
결과가 어떻게 되든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시작한 사람이라는 것.
그러니
그런 나라도
내가 먼저 사랑해주고
보듬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