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el Bleu Jun 16. 2019

13. '그루지야'의 새 이름 '조지아'

<역사의 흐름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나라>

'조지아'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미국의 그 '조지아?'라고 되묻곤 한다.

아직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싶다.

여기서 '조지아'는 우리가 세계 뉴스를 통해 간간이 들어오던 이름 '그루지야'의 새 이름이기 때문이다.

1차 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한 공화국으로 러시아어로 '그루지야'로 불리던 이 나라는 1991년 독립과 함께 나라 이름을 국제 사회에 영어 표기인 '조지아'로 신고했다.


세계 사회에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궁금증을 더 하는 조지아의 뉴스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것은 아마도 로마 제국 보다도 와인을 먼저 만들었다는 새로운(?) 주장이 아닐까 싶다.

기원전 7세기경의 포도씨가 발견되었고 당시 조지아 와인 문화를 주도한 타마다(Tamada: 건배사를 하는 사람)로 추정되는 청동상이 발견되어 이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트빌리시 시내에 전시된 타마다 동상


조지아 와인은 만드는 방법도 특이하여 오크통이 아니라 '크베브리(Qvevri)'라는 토기 항아리에서 발효시켜 와인을 만든다니 그 맛도 궁금하다.  

와인 전문 비평가들이 조지아 와인에 호평을 보내고 있으니 맛에 대한 퀄리티는 염려할 것이 없겠다.

호불호는 갈릴지 모르겠지만.











 

크베브리 항아리로 장식한 유명 와이너리 카레바(Khareba) 입구

이런저런 이유로 찾아간 조지아.


세계 사회에 막 입문한 나라이긴 하나 그 뒤에 품고 있는 오랜 세월의 흔적은 단 시간에 받아들이기엔 힘이 들 정도로 벅차다.

 

과거로 올라가면 신화 속 주인공 프로메테우스가 벌을 받았다는 카즈베기 (Kazbegi) 산과 헤라클레스를 비롯 당시 많은 영웅들과 함께 황금 양털을 찾아 모험을 떠난 아르고 원정대의 이아손이 도착 한 곳이 바로 조지아의 바투미(Batumi)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했다.


프로메테우스가 벌을 받았다는 눈 덮인 카즈베기 산

예수님의 성의와 십자가 유물이 남아 있다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고도 무츠헤타(Mtskheta)의 고풍스러운 스베티츠호벨리(Svetitskhoveli)성당을 비롯 327년 매우 일찍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나라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많은 교회와 수도원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또 교회야?'소리가 절로 나오게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성지 순례로 부상하는 나라 중 한 곳이라는 설명이 따라온다.

스베티츠호벨리 성당

그런가 하면 공포 정치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탈린의 고향 고리(Gori)가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조지아 사람들 조차 그를 환영하는 것 같진 않았다. 스탈린 박물관은 그의 생전에 지어졌는데 그의 생가가 있던 원래 자리에 박물관을 짓기 위해 주변 건물들을 강제 철거와 이주를 시키고 지었다니 동향인 조지아 사람들이 환영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고리의 스탈린 생가와 박물관

  

유럽의 거대하고 화려한 성당이나 교회와는 달리 아담하고 꾸미지 않은 듯 사뭇 다른 분위기의 수도원이나 교회의 모습을 둘러보다 보면 이것이 동방 정교회(Eastern Orthodox)의 고유한 분위기 인가 싶다.

조금은 생소하지만 나름의 고풍스러운 모습은 그동안 보아 왔던 유럽의 다른 성당들보다는 특유의 분위기에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조지아 교회의 내부 모습들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도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도 유명 작가들의 벽화나 조각상도 없다.

예배를 드리는 자들을 위한 의자조차 없다.

기도를 들이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서서 예배를 드려야 하고 교회 안에는 제단과 벽화와 이콘과 그 앞을 밝히는 촛대가 다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러시아의 교회들. 그곳도 교인들을 위한 의자가 없었는데 그때는 화려한 내부 장식에 시선을 빼앗겨 미쳐 알아채지 못했던 것 같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피의 사원의 화려한 내부

조지아의 교회는 소박하고 검소하고  단아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조지아의 교회 안에서 어딜 가나 눈에 들어오는 한 성인의 모습이 있다.

그 성인을 모르고 조지아의 교회나 수도원을 둘러본다는 것은 무의미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늘 포도나무 가지를 엮어 만든 십자가를 오른손에 들고 서 있는 성인.

트빌리시 성삼위 사메바 교회의 성 니노 초상화

그녀의 이름은 성 니노다.

우리가 자주 접하던 성인이 아니라 생소한 이름의 성인이라 그런지 더욱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성 니노(Saint Nino:280-332)는 4세기 지금의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기독교를 조지아에 전파하러 온 성인이라고 한다.

당시 이 지역의 왕이 었던 미리안 3세(Mirian 3)의 눈과 몹쓸 병에 걸린 왕비 나나(Nana)의 병을 고치는 기적을 보여 왕의 신임을 얻고 그 후로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조지아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많은 기적을 행한 것으로 전해지는 성녀다.

역시 다른 성인들처럼 병을 고치는 기적을 행한 성인이지만 다른 성인들처럼 순교를 한 것은 아니어서 인지 성인의 초상화를 보는 마음이 비교적 편하다.

누구처럼 사자 굴에 갇히거나, 눈을 도려내거나, 가슴이 잘려 나가거나, 매음굴에 갇히거나, 화살을 온몸에 맞고 있거나 하는 등의 끔찍한 모습이 아니라서다.(https://brunch.co.kr/@cielbleu/41 참조)

성녀 니노가 조지아로 오게 된 데는 성모 마리아의 계시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꿈에 나타나신 성모는 포도나무 가지로 만든 십자가를 그녀에게 건네며 조지아로 갈 것을 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지아의 어느 교회에서나 볼 수 있는 나뭇가지 십자가를 들고 있는 여인의 초상화는 바로 성녀 니노다. 


그런데 왜 포도 나뭇가지였을까?

조지아 와인, 성인의 포도 나뭇가지. 뭔가  긴밀한 관계가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아나누리 교회의 성 니노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의 성 니노

성 니노가 세운 조지아 최초의 교회 스베티츠호벨리와 기독교가 조지아의 국교가 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된 성 니노의 기적이 일어난 즈바리 수도원은 이미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조지아의 옛 수도 무츠헤타에 있는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은 4세기 성 니노가 조지아 최초의 교회를 지었던 바로 그 자리에 증축된 교회라고 한다.

우리나라 양평의 두물머리처럼 이 교회가 위치한 곳도 조지아를 대표하는 두 개의 강인 쿠라(Kura) 강과 아라그비(Aragvi) 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성 니노가 두 강이 만나는 곳에 교회를 지으라고 했다고 한다.

현재 스베티츠호벨리 교회에는 먼 옛날 조지아의 선지자 엘리아(Elias)가 로마의 병정에게서 사 왔다는 예수님의 성의가 보관되어 있으며 십자가 일부도 보관되어 있어 이 곳이 일반 교회가 아니라 성지의 역할을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성당 이름 스베티츠호벨리는 '살아있는 나무기둥'이란 뜻으로 흥미로운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만나보기로 한다.

스베티츠호벨리 성당 안에 있는 성 니노의 나무 십자가상
즈바리 수도원에서 내려다본 므츠헤타 전경

조지아 판 두물머리에 위치한 스베티츠호벨리 교회의 모습은 건너편 언덕에 우뚝 서 있는 즈바리(jvari) 수도원에서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즈바리 수도원은 원래 조로아스터교의 사원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니노가 이곳에 십자가를 세우고 기도 하여 기적이 행해졌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로 기독교인들의 순례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야기의 내용은 당시 왕이었던 미리안 왕이 사냥 중 갑자기 눈이 멀었다고 한다. 왕은 자신이 믿던 신에게 기도를 올렸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그러나 성 니노가 사원이 있던 그 자리에 거대한 십자가를 세우고 기도를 드리니 왕의 눈이 뜨였다는 그런 이야기다.

감동한 왕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게 되고.

즈바리는 현지어로 십자가라는 뜻이라고 한다.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에서 올려다본 즈바리 수도원
즈바리 수도원 외관
즈바리 수도원 안에 성 니노가 십자가를 세운 곳에 거대한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이런 성인의 영향으로 조지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자 이름이 '니노'라고 한다. 인구 400만 가운데 10만에 가까운 여인들의 이름이 니노라는 재미있는 설명이다.


성 니노는 조지아 와인 산지로 유명한 카헤티(Kakheti)지역에 자리한 보드베 수도원(Bodbe Monastery)에 안장되어 있다. 조지아 교회는 일 년에 두 번 성 니노의 축일을 기리는데 6월 1일은 니노가 조지아에 도착한 날로, 1월 27일은 니노가 세상을 떠난 날이라고 한다. 6월 1일 축일에는 보드베 수도원은 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는 설명이다. 또한 보드베 수도원에는 샘물이 있는데 조지아 인들은 성 니노의 은혜로 이 샘물이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는 다고 한다.

조지아 기독교의 중심에 우뚝 선 성 니노다.


성 니노가 안장되어 있는 보드베 수도원 건물


매거진의 이전글 12. 피렌체,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