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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Feb 05. 2022

37. 세상을 보는 독특한 눈

카프리치오(Capriccio)와 베두타(Veduta)

'예술 작품'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마도 '보기에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그러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결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거나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의아한 작품들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되니 말이다. 

이런 작품들은 보는 이를 의아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는 새로운 감흥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게도 한다.

이번 이야기는 독특한 풍경화 기법 '카프리치오(Capriccio)'와 '베두타(Veduta)'이야기다. 



폐허가 된 루브르의 '그랑 갤러리' 모습을 그린 '위베르 로베르(Hubert Robert:1733-1808)'의 작품이 있다.

언제 '그랑 갤러리'가 저렇게 폐허가 된 적이 있었나 생각하면서 제목을 보니 '폐허가 된 루브르의 그랑 갤러리 상상화'란다.

그의 작품은 현실의 모습이 아닌 상상화였다.


폐허가 된 루브르 그랑 갤러리 상상화, 1796, 위베르 로베르, 루브르

화가가 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 실제 그랑 갤러리의 모습은 이랬다.

루브르 그랑 갤러리 개발 프로젝트, 1796, 위베르 로베르, 루브르

그리고 현재 그랑 갤러리의 모습이다.

루브르 '그랑 갤러리'


화가는 왜 '그랑 갤러리'를 현실과 달리 많은 세월이 흐른 뒤의 폐허의 모습으로 그렸을까?

그래서 알게 된 풍경화의 독특한 기법 '카프리치오(Capriccio)'다.


카프리치오 기법은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행했던 독특한 풍경화 기법이다. 

역사적인 건물이 폐허가 된 모습을 그리거나 고고학적 유적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상상 속에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독특한 화풍이다. 

이런 기법은 가끔은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을 의아하게 만들기도 하고 풍경 속에 담긴 역사적 사건이나 이야기들로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피게도 한다.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로 분류되는 위베르 로베르. 

이탈리아로 유학 온 그에게 카프리치오 기법을 전수한 사람은 '지오반니 파니니(Giovanni Paolo Panini:1691-1765)'다. 지오반니 파니니는 풍경화의 대가였는데 로마 제국의 유적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카프리치오 기법으로 폐허가 된 유적지를 그리곤 했다.


로마 유적과 설교자가 있는 카프리치오 건축들, 1745-750, 지오반니 파니니, 루브르


위베르 로베르는 상상 속의 폐허를 통하여 보는 이들의 미적 감각을 자극하여 시적 이미지를 창조해내도록 하였다는 평을 받으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카프리치오 화가로 명성을 날렸다. 

위베르 로베르는 폐허가 된 유적지의 모습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그려내 '폐허의 로베르'(Robert des ruines)'라는 별명이 따라다닐 정도였다.

프랑스 대혁명 때는 이름이 비슷한 사람이 대신 기요틴에서 처형당하는 바람에 살아남았다는 믿기 어려운 기적 같은 뒷이야기도 전해진다. 

님(Nimes)의 메종 카레,1796(좌), 개선문과 오랑주(Orange) 극장, 1786(우), 루브르
Le Pont du Gard, 1787, Louvre(좌), View of Ripetta,1766(우), Beaux-Arts de Paris


문화와 역사를 결합하여 그려낸 독특한 풍경화는 폐허가 된 건물에서는 그 건물이 들려주는 세월의 흐름과 역사를 생각해 볼 수 있고, 현존하는 건물이 오랜 세월 뒤에 폐허가 된 모습에서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상상의 자유를 준다.


Architectural lanscape with a Canal, 1783, Hermitage, St. Petersburg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동상과 비너스 동상이 있는 사원 유적지, 1789, Hermitage, St. Petersburg

현실을 떠나 역사적인 폐허와 풍경의 조화를 그려낸 카프리치오는 작가의 독특한 시선으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독창적인 작품을 그려 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카프리치오는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낸 작품보다 보는 이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던져주는 특이한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위베르 로베르'에게 카프리치오 기법을 전수한 '지오반니 파니니'는 아이러니하게도 풍경화의 또 다른 기법인 베두타(Veduta)의 대가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이탈리아어로 '뷰(view)'를 뜻하는 베두타 기법은 원래 16세기 플랑드르 지역에서 시작된 정교한 세밀화 풍경화다. 

너무 세밀하게 그려져 마치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베두타 기법은 처음에는 부유한 네덜란드의 중산층 부자들이 선호했던 기법으로 빛과 색의 화가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요하네스 버미어(Johannes Vermeer:1632-1675)의 'View of Delft'는 베두타 기법의 대표작품으로 뽑힌다.


View of Delft, 1660, Johannes Vermeer, Museum Mauritshuis


18세기 중엽이 되면 플랑드르가 아닌 이탈리아의 베니스가 베두타의 중심이 되고 베니스의 유명한 풍경화가 카날레토(Canaletto:1697-1768)가 등장하게 된다.

그의 그림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고 하는데 거기엔 '그랜드 투어(Grand Tour)'라는 시대적 유행도 한몫을 했다.


17세기 중반부터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상류층 귀족 자제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고전 문화와 유산을 돌아보는 그랜드 투어가 유행이었다.

 

수년(짧게는 2-3년에서 4-5년까지)이 걸리는 여행이다 보니 많은 경비는 물론이고 실력을 갖춘 인솔자를 구하기도 어려워서 서민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여행이었다. 

당시 이들을 인솔한 인솔자 이름에선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의 이름도 보이는 것을 보면 가히 그 규모가 짐작이 간다. 


영국에서 이탈리아까지 먼 길을 갔으니 이탈리아 현지에서 여행의 증거(?)가 될 만한 기념품을 가져오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랜드 투어에 참가한 이들이 고국으로 가져오고자 하는 기념품으로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이 사진처럼 그려진 세밀한 풍경화였다고 한다.

'거기 갔었지.' 하는 일종의 인증 샷이었던 셈이다.

당시 베니스에서 베두타 화가로 이름을 날리던 카날레토의 그림은 이런 그랜드 투어의 니즈와 절묘하게 맞았던 것이다. 

산 마르코 광장, 1720, 카날레토,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뉴욕


그는 유명세에 힘입어 영국으로 진출하게 되고 당시 영국 왕 조지 3세도 그의 작품을 많이 소장할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영국에서 그가 그린 베두타 그림 중에는 소설 '해리 포터'에서 마법사들의 보딩 스쿨로 나왔던 '호그와트(Hogwarts)'의 모델이 된 '안윅(Alnwick)성'도 있다.


Alnwick Castle, 18th, Canaletto, Private Collection
안윅성 내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풍경을 그려내는 카프리치오 기법과 눈앞의 풍경을 마치 사진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세밀하게 그려내는 베두타 기법은 풍경화라는 공통분모를 제외하면 다른 영역의 기법처럼 보인다.


사진 기술이 발달되기 전의 세밀화 베두타는 신선하고 산뜻하게 이국의 풍경을 가슴 설레며 동경하게 해 주는가 하면, 가상의 세계를 그려낸 카프리치오의 작품들은 자유로운 상상을 가능케 하여 우리를 현실의 굴레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마술 같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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