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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Mar 10. 2022

38.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에서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런던 소더비 경매가 7980만 달러. 

한화로 957억으로 거의 1000억에 가까운 금액이다.


며칠 전 뉴스에서 들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 작품의 최근 경매 가격이다.


이번에 그의 작품으로 최고의 경매가를 기록한 작품은 '빛의 제국'으로 명명된 르네 마그리트의 연작 중 하나로 개인 소장이지만 브뤼셀의 마그리트 뮤지엄(Musée Magritte in Brussels) 전시되고 있던 작품이다.


하나의 작품에 밤과 낮이 공존하는 풍경을 그려낸 그의 역작으로 뽑힌다.

 L’empire des lumières, 1961, René Magritte, private collection/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작품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surréalisme) 대표 화가인 그는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조합한 독특한 화풍인 데페이즈멍(dépaysement) 기법을 사용하여 많은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낸 화가다.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묘하게 교차되는 그의 작품은 누가 봐도 어렵지 않게 그의 것임을 알 수 있다. 


브뤼셀에서는 르네 마그리트의 1954년 작 '빛의 제국'의 다른 버전을 보았던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뉴욕의 모마에서도 1950년 작 '빛의 제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같은 주제로 다르게 그려진 작품들을 보는 것은 연작을 감상하는 큰 재미다.

 L’empire des lumières, 1954, René Magritte, Musée Magritte in Brussels
L’empire des lumières, 1950, René Magritte, MOMA NY


처음 그의 작품을 만난 건 2006년 어느 날 리모델링에 들어간 신세계 본점 건물을 감싸고 있던 '골콘다(Golconda)'였다.


'골콘다'는 마그리트와 초현실주의 운동을 같이 한 시인 루이스 스퀴네어(Louis Scutenaire:1905-1987)가 찾아낸 과거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지금은 폐허가 된 인도의 도시 이름이다. 


'골콘다'는 한때 전설적인 다이아몬드 산업의 중심도시였기에 '부의 광산(mine of wealth)'이란 의미의 단어로 쓰인다고 한다.

 

중절모를 쓴 신사가 비 오듯 그려진 모습 때문에 '겨울비'라는 부제도 붙었다.

 

작품 속의 신사의 모습은 모자 장수였던 어머니의 영향이었는지 중절모를 애용하던 평소의 마그리트의 모습이다. 

그는 또한 자신의 얼굴을 오른쪽 건물 굴뚝 옆의 남자의 얼굴에 그려 넣었다. 

55세의 르네 마그리트, 1953
Golconda,1953, The Menil Collection, Houston, Texas,
신세계 본점 건물을 감싼 마그리트의 골콘다 


초현실주의 하면 꼭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다. 

초현실주의의 리더인 프랑스의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1896-1966)이다.

1924년 28세의 브르통

앙드레 브르통은 프랑스의 작가이자 시인으로 초현실주의의 뿌리를 내린 인물이다. 

초현실주의는 프로이트의 학설에서 영향을 받아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키자는 것이 모토였다. 


그런데 이런 앙드레 브르통이 사랑한 중세 마을이 있다. 

프랑스의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한 중세 마을 '상 씨엘크 라포피 (Saint-Cirq Lapopie)'(https://brunch.co.kr/@cielbleu/187 참조)가 바로 그곳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도 뽑힌 이 조그만 마을은 현실과 가상 세계를 논하는 초현실주의란 거창한 이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마을 입구

마을 인근에서 발견된 2만 5천 년 전 선사시대 동굴 그림 위에 초현실주의 리더의 모습을 그려놓은 포스터를 본 순간 오히려 뭔가 잘 통할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지 않던가? 

마을에 전시되어 있는 브르통의 프로필과 선사 시대인의 핸드 프린팅을 조화시켜 만든 포스터

브르통은 1950년 6월 이곳을 처음 방문한 후 '더 이상의 아름다운 마을은 없다.(J'ai cessé de me désirer ailleurs)'면서 196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매해 여름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초현실주의의 성지같이 돼버린 이곳은 매년 40만에 가까운 관광객이 찾아온다는데 방문객은 거의가 프랑스인들이라고 한다.




얼마 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는 '초현실주의 거장들(21.11.27-22.3.6)' 전시회가 있었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보이만스 반 뵈닝겐 박물관(Muséum Boijmans Van Beuningen) 소장 작품들이 전시되었는데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막스 에른스트, 만 레이 등 거장들의 이름만 봐도 기대되는 전시였다.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 '금지된 재현(1937년작)'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초현실주의 전시답게 타이틀의 '초'와 '주'를 좌우를 바꾸어 표기한 것도 재미있는 발상이다. 


한가람 미술관의 전시회 포스터
'금지된 재현', 1937, 르네 마그리트
앙드레 브르통이 쓰고 르네 마그리트가 표지를 그린 '초현실주의란 무엇인가?' 책자
르네 마그리트와 달리, 앙드레 브르통이 같이 기록된 초현실주의 활동 연대표

'금지된 재현' 작품을 보면서 어떤 이들은 이 그림이 '뭐가 대단한 거지?' 하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정답은 없다.

르네 마그리트가 파이프를 그려 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고 제목을 붙인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감상할 때 느끼는 묘한 재미는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림에 대한 감상은 오롯이 그림을 보는 관람객의 몫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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