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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Mar 26. 2022

39. 튤립에 무슨 일이

네덜란드 퀴켄호프에서 가상화폐 까지

어여쁜 튤립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하면 어느새 봄이 내 곁에 가까이 와 있다는 신호다. 


이때쯤이면 매년 3월부터 5월까지 석 달 동안 열리는 네덜란드의 퀴켄호프(Keukenhof) 튤립 축제가 생각나곤 한다.

퀴켄호프 전경

암스테르담에서 남서쪽으로 기차로 1시간여면 도착하는 퀴켄호프.


넓은 정원(?)에 마치 수를 놓은 듯 끝없이 피어있는 수많은 꽃들.

튤립을 비롯 히야신스, 수선화, 장미 등 각양각색의 꽃들을 구경하다 보면 발길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던 곳. 

여기가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과하지 않았던 꽃들의 향연장이었다.

퀴켄호프의 튤립들
퀴켄호프 전경


원래는 15세기경 사냥터에 세워졌던 성(castle)의 부엌에 딸린 텃밭이 었다는 퀴켄호프는 몇 차례 주인이 바뀌다가 17세기인 1641년에 '퀴켄호프'라 명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퀴켄호프'의 뜻이 '부엌의 텃밭, 정원'이란 뜻이라니 원래의 용도와 걸맞은 이름이다.


그러나 이곳에 들어서면 여기가 텃밭이라는 말은 너무 겸손하게 느껴진다.

총면적 32ha(우리나라의 에버랜드(99ha)의 1/3 정도의 크기)에 주최 측 발표에 의하면 대략 700만 송이의 꽃들이 이 텃밭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으니 말이다.


퀴켄호프 내부 안내서

1949년 네덜란드 원예업자들의 컨소시엄에서 오늘날과 같은 세계 최대의 튤립 정원을 조성하고 1950년 일반에게 공개하여 매년 전 세계에서 100만에 가까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일 년에 단 3달만 오픈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굉장한 방문객 수다.

매년 봄이면 수백만 송이의 다양한 꽃이 만발하면서 '유럽의 봄'을 알리는 세계 최대의  봄꽃 축제다.


튤립이 만발한 퀴켄호프
히야신스와 수선화도 만발한 퀴켄호프


네덜란드의 국화이자 퀴켄호프 봄꽃 축제를 대표하는 꽃, 튤립.


그런데 튤립의 원산지는 네덜란드가 아니다.

네덜란드에 튤립이 처음 들어온 것은 16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만 터키에서 귀국하던 신성로마제국의 대사가 네덜란드의 학자에게 튤립 구근을 선물한 것이 네덜란드에 튤립이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란다. 

오스만 터키 왕가의 사랑을 받던 튤립은 특이한 꽃 모양과 희소성으로 네덜란드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현재는 네덜란드가 튤립 최대 생산국이 되었지만 네덜란드인들에게 특이하게만 보였던 튤립은 '튤립 파동(Tulip Mania)'이라 불리는 요즘의 가상화폐 열기 같은 경제적 파동을 역사에 남기기도 했다. 


'튤립 파동'은 최초의 경제 버블로도 평가되고 있는데.


사연은 이랬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왕관 모양의 희한한 꽃 모양에다 다양한 색을 띠는 튤립에 처음에는 네덜란드의 부호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암스테르담이 새로운 경제 중심지로 부상되면서 유대인들과 프랑스의 종교 전쟁을 피해 온 개신교도인 위그노들이 막대한 자금을 들고 몰려들었다.

1609년에는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세워지는 등 급격하게 경기는 과열이 되고 넘치는 재력으로 투자 대상을 찾던 중 신비스러운 꽃인 튤립이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다양한 변종 튤립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희소성 있는 변종 튤립에 대한 관심은 도를 넘어 광기에 이를 정도였다. 


변종 튤립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는데 당시 무려 400여 종의 변종 튤립이 나왔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변종 튤립은 서로 다른 종류의 튤립끼리 꽃가루 교배에 의해 얻어지기도 하고 튤립 구근을 침범한 바이러스에 의해 생기기도 한다니 세상은 의외의 결과를 가져오는 일들로 심심치 않다.


우리가 흔히 보는 보통 튤립들(단색)은 저렴한 가격에 팔렸지만 인기 있는 변종 튤립은 한 구근에 100 길더(guilder)(당시 평균 가정의 월급이 200 길더 정도였다고)에 팔린 뿌리도 있는가 하면 1630년대 중반에는 변종 튤립 구근 하나가 무려 1000 길더(집 한 채 가격)에 팔린 기록도 있다. 


그 대단한 주인공은 바로 '셈퍼 아우구스투스(Semper Augustus)'라는 변종으로 '영원한 황제'라는 뜻이다. '셈퍼 아우구스투스'는 이름처럼 역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튤립 구근으로 남아있다.


그런가 하면 100 길더 가격의 주인공인 '레이덴의 붉고 노란 튤립'은 바로 퀴켄호프에서 재배에 성공했다고 한다. 레이덴은 퀴켄호프에 인접한 도시 이름이다.


레이덴의 붉고 노란 튤립(Root en geel van Leyden)


가장 비싸게 팔린 '영원한 황제(semper augutus)'

'튤립 파동'은 일확천금을 노린 과열된 투기였다는 점에서 요즘의 가상화폐 열기와 유사하다.


과열되던 튤립 가격은 1637년 2월의 대폭락으로 많은 투자자들이 파산하게 되었지만 부자들은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니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다만, 있는 돈, 없는 돈 모아 모아 투자했던 이들의 결과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폭발적인 사회적 관심의 대상인 튤립은 당시 정물화의 단골 주제이기도 했다. 

다양한 튤립 변종들은 그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정물화 속에 영원히 지지 않을 모습으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Vase of Flowers, 1645, Jan Davidsz.De Hee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Bouquet of Flowers,1619-1621, Ambrosius Bosschaert, Louvre


그러나 화려한 튤립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 것을 알기에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교훈을 담은 '바니타스(vanitas)' 화풍의 정물화에도 단골 소재로 그려지곤 했다.


당시 네덜란드에는 청빈과 금욕을 주장하는 칼빈주의가 퍼져 있었는데 튤립 광풍에 혈안이 된 이들에게 보내는 경고의 그림이기도 했다. 




네덜란드인들에게는 뼈아픈 교훈을 준 튤립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겨울에도 춥지 않고 습한 네덜란드의 토양과 기후는 튤립 성장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현재는 네덜란드의 국화이며 네덜란드를 세계적 원예 산업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몫을 했으며 나아가 퀴켄호프 같은 세계적 관광자원으로 네덜란드의 큰 자산이 되고 있는 튤립이다.



따뜻한 봄날.

꽃 한 송이 보고 시작한 생각의 나래는 네덜란드의 튤립 정원을 지나 요즘의 가상화폐 시장까지 먼 길을 돌아왔다.

아름다운 꽃 앞에서는 'Memento Mori' 보다는 'Carpe Diem'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어찌 생각하면 이 둘은 서로 통하는 면도 있을 거 같지 않은가? 

 

내가 보고 있는 튤립은 봉우리에 줄도 없고 점박이도 아니다. 

그냥 밝은 노란색의 평범한 튤립이다. 

그래서 보는 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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