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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May 18. 2022

40. 겹벚꽃이 필 때면

           루이 14세의 비운의 재상 니콜라 푸케와 콜베르

하얀 벚꽃들의 향연이 끝나갈 때 즈음 겹겹이 꽃잎을 품고 있던 꽃봉오리를 열기 시작하는 겹벚꽃.


만개한 겹벚꽃


왕벚꽃이라고도 부르는 분홍빛 벚꽃들의 군무는 흰 벚꽃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이들의 마음에 큰 위안을 준다. 탐스러운 겹벚꽃을 보다 보니 겹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파리 근교의 고즈넉한 공원이 생각난다.

'Parc de Seaux'.

파리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 있는 공원이다.

써 공원 전경

'Seaux(써)'는 라틴어로 '작은 집'이란 뜻이라는데 결코 작지 않은 정원이다.

평상시엔 한적하고 조용한 이 공원은 4,5월 벚꽃의 만개 시기엔 파리를 좀 안다는 이들에게는 찾고 싶은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루이 14세 때 프랑스를 호령했던 재상 콜베르(Colbert,1619~1683)의 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콜베르


그는 17세기 말 (1670년 경)에 이곳을 인수하여 기존의 성(Chateau)을 증축하고 당시 조경의 대가로 프랑스의 유명한 궁전의 정원은 거의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앙드레 르 노트르(André Le Notre, 1613~1700)'에게 정원을 조성하도록 하였다.

 

앙드레 르 노트르, 1679-1681, Carlo Maratta, 베르사유


자로 잰 듯한 식물들의 나열이 특징인 바로 그 프랑스식 정원과 정원의 구성 요소로 빠질 수 없는 캐시케이드(계단식 폭포:Cascade), 대운하(Grand Canal)등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써 공원의 정원

대운하 옆에 자리한 '작은 숲(Bosquet Nord)'이라 이름 붙인 정원이 매년 봄 겹벚꽃들의 축제가 벌어지는 곳이다.

'Bosquet Nord' 전경, 위키미디어

150여 그루의 벚나무가 심어진 이곳에선 매년 벚꽃의 개화기에 일본의 하나미(Hanami: 벚꽃을 감상하면서 봄을 맞이하는 행사) 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의 다른 이름은 '일본 벚꽃(Cerisiers du Japon)'이다.

세계 도처 유명 장소마다 언제 이렇게 벚꽃을 심어 놓았는지.


그러나 루이 14세가 연회를 열기도 했던 재상 콜베르의 영지에 피어있는 겹벚꽃은 아름다운 정원을 찾은 이에게 봄소식을 넘어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듯하다.




이야기는 루이 14세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콜베르는 루이 14세에게 괘씸죄를 짓고 철가면의 모델이 된 것으로 알려진 선임 재상 니콜라 푸케(https://brunch.co.kr/@cielbleu/8 참조)의 뒤를 이어 재상에 오른 인물이다.

항간에는 그가 푸케를 음해하여 몰아냈다는 뒷이야기도 전해지지만 무슨 일에든 이런 류의 뒷이야기는 항상 따라다니는 법.

그는 중상주의로 프랑스의 경제를 부흥시켰으며 높은 지위에도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엄청난 일벌레로 존경을 받았다고 하니 말이다.

'Seaux'의 콜베르 저택(1677년 완공)보다 베르사유 궁(1682년 완공)이 후에 완공되었고 그의 저택을 재 건축한 이들이 모두 베르사유 궁 건축의 주역들이라 베르사유 궁의 모델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베르사유 궁의 모델이 되었고 화려함과 아름다움 때문에 성주의 운명을 바꿔 버린 성은 따로 있다.

파리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보르비콩트(Vaux Le Vicomte)’성이다. 이 성의 주인은 루이 14세 때 재상을 지낸 니꼴라 푸케(Nicolas Fouquet, 1615~1680)다.


정원에서 바라본 보르비콩트 성


푸케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 루이 르 보(Louis Le Vau, 1612~1670), 조경가 르 노트르, 최고의 화가 샤를 르 브랑(Charles Le Brun, 1619~1690)등을 동원해 1658년부터 3년여에 걸쳐 아름다운 성을 지었다.

 

성을 완공한 성주 푸케는 1661년 8월 17일, 그의 운명의 날, 루이 14세를 위해 성대한 파티를 준비했다. 한마디로 화려한 집들이를 한 것이다.


푸케는 루이 14세를 융숭히 대접하려고 왕이 좋아하는 몰리에르(Molière:1622-1673)의 발레 연극과 당대 최고 요리사 프랑수아 바텔(François Vatel:1631-1671, 휘핑크림의 대명사 '샹티 크림'을 만든 요리사다.)에게 훌륭한 저녁 만찬을 준비하게 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점이 왕의 질투와 분노를 사고 말았으니.

 

그날 밤 왕은 푸케가 특별히 장식해 놓은 보르비콩트 성의 화려한 거처를 마다하고 20여 킬로미터 떨어진 자신의 성 퐁텐블로(Fontainebleau)로 돌아갔다니 왕의 심기가 얼마나 불편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퐁텐블로 성

화려함도 문제였지만 보르비콩트 성 안을 장식하고 있던 타피스리와 벽에 조각된 다람쥐가 또 하나의 빌미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푸케 집안의 모토는 ‘Quo non ascendet?’로 ‘못 오를 데가 어디 있겠나?’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프랑스 서부 방언으로 다람쥐를 ‘fouquet’라고 한단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의미 심장한 푸케 집안의 모토가 불편했을 듯싶다.


당시 세간에는 푸케가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던 터라 20대의 젊은 왕은 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을 방문한 뒤 그 소문을 확신하게 되었다.

왕인 자신보다 더 좋은 성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푸케에게 괘씸죄를 적용하게 되고.


보르비콩트 성에 있는 니콜라 푸케의 초상화와 다람쥐 문장


파티가 끝난 며칠 뒤, 루이 14세는 푸케를 체포하여 부정 축재 혐의로 법정에 세웠다.

루이 14세는 재판의 판결 형량이 가볍다고 생각해 왕의 권한으로 푸케를 무기수로 만들어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푸케가 철가면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의 배경이다.

프랑스 재판 역사에서 재판 결과를 왕이 임의로 바꾸어 중형으로 다스린 것은 푸케의 경우가 처음이라고 한다.


볼테르(Voltaire)는 이 사건을 두고 “8월 17일 저녁 6시에 푸케는 프랑스의 왕이었지만, 다음 날 새벽 2시에 그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성 안에 전시되어 있는 푸케의 재판 장면


이후 푸케의 부인은 추방당하고, 왕은 보르비콩트 성에 있던 값진 물건을 모두 압수했다.  

그리고 성을 짓는 데 공헌한 이들에게 베르사유에 이 성보다 더 근사한 성을 지을 것을 명했다고 한다.

베르사유 궁의 탄생이 결정된 순간이다.




'써 공원'의 '르 노트르'가 만든 아름다운 정원과 루이 14세의 전속 화가였던 '르 브랑(Charles le Brun)'이 그린 오로라 파빌리온 돔(coupole)의 천장화 '오로라' 등은 벚꽃을 찾아온 이들에게는 뜻밖의 큰 선물이 된다.


써 공원의 오로라 파빌리온과 돔 안의 천장화 오로라


이렇게 사랑스러운 꽃들을 앞에 놓고 생각하기엔 조금 무게 있는 주제지만 겹벚꽃을 보면서 루이 14세 시대를 누볐던 두 재상 푸케와 콜베르의 이야기는 일본의 축제 하나미에서 그치지 않고 더 멀리 생각의 나래를 활짝 펴 준다.


따스한 봄 햇살 아래 겹겹이 핀 겹벚꽃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마음껏 반추해보는 호사를 누린다.

써 공원 벚꽃 나무 아래에서의 망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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