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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Mar 01. 2023

49.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보석으로 만들어진 기이한 분재


대만에서 만나기 힘들다는 눈부시게 화창한 날.

야외로의 유혹을 꾹 누르고 세계 4대 박물관중 하나로 꼽히는 국립고궁박물관으로 향했다.


모처럼의 날씨가 못내 아쉬웠지만 흥미로운 귀한 작품을 보고 싶은 마음에 박물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긴커녕 개관 시간도 훨씬 전에 도착하고 말았다.


덕분에 70여 만점을 소장하고 있다는 대단한 박물관 앞마당(?)을 천천히 누벼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가졌으니 오늘의 날씨가 주는 덤이란 생각이다.

대만 고궁박물관 전경
박물관에서 바라본 전경

이 박물관의 자랑거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오늘 내가 특히 보고 싶은 작품은 만들어진 귀한 재질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괴이한 모습의 분재 작품이다.


산호와 옥을 비롯 온갖 보석으로 만들어졌으나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아름다운 미인은커녕 보기에도 편치 않은 모습이니 말이다.

 Planter with a coral carving of the planetary deity Kuixing, Qing dynasty (1644-1911)

작품을 보면.

전체 높이는 약 35cm로 옥으로 만든 화분의 높이만 약 13cm 정도 인걸 보면 조각상 자체는 20여 cm 정도의 아담한 크기인데 화분에는 식물이 아니라 괴이한 조각상이 서 있다.

청나라 궁중에서는 이런 형태의 화려한 보석으로 만든 분재 장식이 인기였다는 설명이다.

조각상의 전면(좌)과 후면(우)

그러면 이 조각상은 누구?

전설에 따르면 조각상의 주인공은 매우 학식 있는 학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워낙 못생긴 외모 때문에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자(그 옛날에도 외모가 중요했는지..) 화가 난 그는 바다에 몸을 던졌는데 이때 물속에서 용의 모습을 한 물고기가 나타나 그를 구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문(文), 특히 과거 시험 급제등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여겨져 출세를 원하는 많은 이들이 숭배하는 신이 되었다고.


주홍색의 값진 산호덩어리를 조각하여 만들어진 모습은 머리에는 뿔이 나있고 두꺼운 눈썹 아래로 불쑥 튀어나온 눈, 드러난 이빨들로 보기에 편치 않은 모습이지만 전해오는 그의 모습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해 놓은 작품이다.


과거 시험, 관리 승진, 문장력 등을 주관하는 신으로 그가 갖은 신력은 막강하여 후세 인간들은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데 우리에겐 조금은 낯선 신이다.


'쿠웨이싱(Kuixing)'이라 불리는 그는 오른손엔 북두칠성을, 왼손에는 깃발과 매화 가지를 들고 있으며 오른발로는 용의 머리를 한 물고기 머리를, 왼발은 북두칠성의 제1성을 차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이 강조되어 있는 것(일등, 수석을 의미), 손에 든 매화가지(봄에 제일 먼저 피는 꽃으로 수석을 암시), 오른발이 밟고 있는 용머리를 한 물고기(중국 전설에 물고기가 황하 상류에 급류가 흐르는 용문지역을 거슬러 오르면 용이 된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어 과거 합격을 등용문이라 부르는 것처럼 상징적 의미로 합격을 의미),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을 뒤로 걷어 차는 듯한 왼발의 모습(신분 상승, 수석을 의미) 등, 구석구석에 온통 1등, 수석, 급제등을 암시하는 것들로 표현되고 장식되어 있으니 자그마한 분재가 갖고 있는 의미는 단순 보석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쿠웨이싱 분재'는 1등, 수석, 급제등의 의미 외에도 다양한 상서로운 상징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화분의 네 면에는 장수와 오복을 나타내는 다섯 마리의 박쥐가 장식되어 있고, 화분 안에는 중국 태호(太湖: 중국에서 3번째로 큰 호수로 이 호수에서 나오는 독특한 석회암을 태호석(太湖石)이라고 부르며 중국의 전통 정원을 꾸미는데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에서 가져온 태호석 위에 귀한 영지버섯을 장식해 놓았는데 이 또한 버섯 종류 중 으뜸을 뜻한다는 것이다.


전해오는 '쿠웨이싱'의 기이한 외모에 그가 갖고 있는 탁월한 능력을 생생한 조각과 정교한 상감 기술로 표현하고 금, 은 및 다양한 귀중한 보석을 결합시켜 상서로운 의미가 가득한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 냈으니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되는 작품이다.


야경이 멋진 대만의 용산사

대만의 최고 고찰인 용산사에는 도교 신들을 모셔 놓은 건물이 있는데 그중 맨 오른쪽 방에는 다른 신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진 상이 모셔져 있다.

근엄한 모습의 신들과는 달리 기이한 얼굴과 한 발을 걷어차는 모습의 '대괴성군(魁星君)'이다.

‘괴(魁)’는 으뜸,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시험 급제를 의미하며 '괴성(魁星)'은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을 의미하는데 '쿠웨이싱 분재'작품 속 '쿠웨이싱'도 첫 번째 별이 강조된 북두칠성을 오른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용산사 '대괴성군'의 왼발도 역시 북두칠성의 제1성을 의미하는 '斗(두)'를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다.

국립박물관의  '쿠웨이싱'과 동일시되는 이유다.


도교에는 학문을 관장하는 신으로 추앙되는 '문창제군(文昌帝君)'도 있다.

그는 업적과 명성, 녹봉과 작위를 관장하는 신으로 섬기는 '대괴성군'은 그의 다른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용산사에 있는 '대괴성군'(좌), 문창제군(우)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많이 변한 것이 없는지 매년 수험시절이 돌아오면 많은 이들이 학문의 신을 모시는 사당이나 대만 최고의 절인 용산사에 모셔져 있는 그의 동상 앞에 와서 소원을 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중국에서는 해바라기를 뜻하는 '葵'의 발음이 '쿠웨이(Kuí)'로 '괴성(星)'에서 '魁'의 발음인 '쿠웨이(Kuí)'와 같아 수험기간에 많은 수험생들과 학부형들이 해바라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차이나뉴스 캡처

보석에 놀라고,

귀한 재료로 만들어진 모습에 놀라고,

그 모습에 담긴 사연에 놀라고.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도 여전히 쿠웨이싱의 경우와 같은 과오를 범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박물관을 나오니 눈부시게 화창한 날씨에 정신이 버쩍 든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알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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