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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Jun 24. 2018

*3-2. 루아르에 남은 이탈리아
천재 화가의 성

       클로 뤼세 (Château du Clos Lucé)

다빈치의 성, 클로 뤼세(Château du Clos Lucé)

                                                                         
다빈치가 잠들어 있는 앙부아즈 성에서 500여 미터 거리에 아담한 성이 있다. 

클로 뤼세 성이다. 성 이라기보다는 귀족의 저택 같은 클로 뤼세는 규모는 작지만 이 성이 품고 있는 역사적 가치는 루아르에 있는 그 어느 성보다도 풍성하고 가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곳은 르네상스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의 마지막 3년(1516-1519)을 지낸 곳이며 많은 과학 작품들을 디자인하고 만든 곳이기 때문이다. 


 클로 뤼세 성 입구

다빈치는 1515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프랑스와 1세를 처음 만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다빈치 만이 할 수 있는 기상천외한 선물을 프랑스 왕에게 선사했다고 한다. 

바로 움직이는 사자 인형이다. 오늘로 치면 배터리로 움직이는 장난감 강아지 같은 사자 인형인 셈이다. 이 사자는 프랑스와 1세 앞으로 다가가더니 가슴이 열리면서 프랑스 왕가의 상징인 백합이 튀어나오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이런 선물을 받았으니 프랑스와 1세는 얼마나 놀라고 기뻤겠는가. 왕이 그를 초청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클로 뤼세에 전시된 사자상(위키미디어)

다빈치는 프랑스 왕의 초청에 애 제자 프란체스코 멜치와 함께 그의  작품 3편(모나리자, 세례 요한, 성 안느와 가족)을 가지고 나귀를 타고 이 곳 루아르로 왔다.  

다빈치와 프랑스와 1세 두 사람 사이가 얼마나 돈독했었는가는 현재도 남아 있는 왕의 성 앙부아즈와 다빈치의 거처인 클로 리세를 연결하는 지하 통로가 증명해 주고 있다. 프랑스 왕의 이탈리아 출신 화가에 대한 사랑은 프랑스 귀족들의 심기를 편치 않게 했기에 두 사람은 지하 통로를 통해 세인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앙부아즈로 가는 지하 통로는 입구만 볼 수 있도록 열어 놓아 프랑스와 1세를 만나고 돌아오는 다빈치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다빈치가 드나들었던 지하 통로 입구


그런가 하면 이 성에는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  문필가로 명성을 날린  프랑스와 1세의 누나 마르그리트(Marguerite de Navarre)의 방도 있다. 

프랑스와 1세가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탈리아 상인 집안의 딸 카트린느 드 메디치를 며느리로 맞았기에 카트린느의 궁정 생활은 편치 않았지만 마르그리트는 똑똑하고 예술적 소양이 뛰어난 카트린느 드 메디치의 든든한 후원자가 돼 주었다고 한다. 

마르그리트는 이 곳에서 그녀의 대표작 엡타메롱(Heptaméron)을 저술했는데 엡타메롱은 홍수를 만나 발이 묶인 여행자들이 나눈 72개의 단편들을 모은 모음집으로 형식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의 영향을 받아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들이 또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frame story)으로 쓰였다. 

주로 사랑이나 욕망 등을 주제로  다루었는데 단편들 중에는 실제로 앙부아즈 성에서 일어난 실화도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엡타메롱 중  사랑을 묘사한 구절 ‘사랑의 불길은 그것을 알아차리기 전에 이미 마음을 태우고 있다.'는 현대에도 자주 인용되는 명 구절이다.



장 클루에의 마르그리트 초상화(1530년)


마르그리트의 침실과 같은 층에 앙부아즈 성이 바라보이는 창문이 있는 다빈치의 침실이 있다. 그의 방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단연 그가 사용하고 마지막을 같이 한 침대다. 전형적인 이탈리아 르네상스 풍의 침대는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의 작품 '다빈치의 임종을 지키는 프랑수와 1세' 그림에서 보았던 바로 그 모습 그대로 세월의 흐름을 잠깐 멈춘 듯 눈 앞에 놓여 있다. 

다빈치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여 앙부아즈 성에서 그의 묘를 볼 때 보다 더 감동적이다. 



다빈치의 침실에서 바라다 보이는 앙부아즈 성(왼편의 첨탑이 있는 건물이 다빈치의 묘지가 있는 성당이다)


그런가 하면 그가 프랑스로 올 때 가지고 왔다는 세 점의 작품들이 다빈치가 손님을 맞던 접견실에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다.  세 작품의 원본은 현재 루브르에 있지만 이런 명작들을 별스럽지 않게 걸어 놓고 이 방에서 손님을 맞았을 다빈치를 상상해 보니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모나리자'와 '세례 요한'이 걸린 다빈치의 접견실


성안을 걷다 보면 다빈치가 남긴 의미심장한 문구들이 벽에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중 이런 문구가 있다.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될 때 나는 어떻게 죽을지를 배울 것이다.' 앞서가는 자의 선견지명이랄까? 잠시 그 말을 곱씹어 보았다. 

클로 뤼세에는 또 한 명의 주목할 만한 사람이 있다. 바로 채식 주의자였던 다빈치의 전속 요리사 매튜린(Mathurine)이다. 다빈치는 그녀를 무척 신임하여 그가 아끼던 옷을 나누어 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성에는 '매튜린 투어'라는 가이드 투어가 인기 있다고 한다.

‘건강을 지키고 싶다면, 먹고 싶지 않을 땐 먹지 마라.’ 매튜린이 했다는 이 말을 들으니 역시 천재 화가에 어울리는 똑똑한 요리사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다이어트 열풍에 고생하는 현대인들에게 의사들이 내놓는 처방이 아닌가 말이다.    

벽에 남은 다빈치의 명언


지하에는 다빈치가 고안해 낸  40 여 점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다빈치의 박물관이 있다. 미술 작품 외의 다빈치의 다른 걸작들을 볼 수 있어 그런지 다른 장소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곳에서 상영되는 동영상은 다빈치가 고안한 작품들을 실제로 만들어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그의 작품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어 영상을 응시하는 관람객들은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아주 진진하게 화면을 보고 있었다. 

500여 년 전 시대를 너무 앞서간 천재를 프랑스의 한적한 강변의 조용하고 자그마한 성은 이렇게 극진하게 대접하고 있었다. 


다빈치의 발명품들

특히 다빈치가 거닐었던 성 안 숲 속에는 그의 작품 중 아름다운 초상화들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Light on Faces'라고 불리는 이곳은 갤러리나 뮤지엄에서만 보던 작품들을 아름다운 햇빛 아래 싱그러운 녹음과 함께 감상하도록 하여 내게는 클로 뤼세 방문의 하이라이트가 된 장소였다. 

다빈치 특유의 기법인 스프마토(sfumato:연기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경계선을 명확하게 처리하지 않고 부드럽게 처리하는 기법)로 그린 초상화들은  신비롭게 까지 느껴져 보는 눈이 호사한다. 

다빈치도 이 숲을 거닐었을 것을 생각하니 깊은 심호흡이 절로 된다. 힐링의 장소로 오래 동안 기억에 남은 장소다. 


'Light on Faces'에 걸린 명작들


정원의 다른 한쪽에는 'The Museographic hall'이 있는데 겉모습과는 달리 평범한 건물이 아닌듯하다. 벽에 걸린 작품들이 보통 '최후의 만찬'이니 말이다. 더욱이 특별전으로 미켈란젤로의 스승으로 알려진 기를란다요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어 프랑스에서 만나는 이탈리아 대가들의 향연으로 행복한 방문이 되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좌), 기를란다요의 'La Cene'(우)
다빈치의 작업실


 다빈치와 프란체스코 멜치 그리고 빌 게이츠

 

다빈치는 그의 연구 책자로 유명한 코덱스(Codex)도 프랑스로 가지고 왔다. 

그의 사후에 코덱스는 애제자 프란체스코 멜치가 보관하게 된다. 멜치는 원래 이탈리아 귀족이었는데 다빈치를 아버지라 부를 정도로 존경하고 따랐다고 한다. 다빈치가 세상을 뜨자 멜치는 다빈치의 유작이 된 코덱스를 가지고 자신의 영지로 돌아와 1570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귀하게 보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아들인 오라치오는 코덱스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만장에 가까웠던 코덱스를 주변에 팔기도 하고 마구 훼손하여 지금은 거의 반 정도가 없어진 상태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명작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만 명작이 되나 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그 진가를 몰라주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으니 말이다. 

다행히 다빈치의 코덱스를 알아본 천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빌 게이츠(Bill Gates)다. 역시 천재는 천재가 알아주나 보다. 1994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빌 게이츠는 삼천만 불을 지불하고 다빈치의 코덱스를 구입했다. 500여 년 전 너무나 시대를 앞섰던 천재 예술가를 오늘의 천재가 이렇게라도 대접하는 걸 알면 저 세상에서 다빈치도 마음이 좀 편하지 않을까?

그런데 다빈치가 코덱스를 기록한 방법이 또한 흥미롭다.

거울에 비춰야 비로소 제대로 읽을 수 있도록 글씨를 거꾸로 기록하는가 하면 그가 고안한 아이디어를 누군가 실제로 구현해 보려 하면 제대로 작동이 안 되도록 중요 요소 하나를 잘못 써 놓거나 빼고 안 써 놓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마 보안 시스템을 이런 식으로 천재 작가는 스스로 작동시켰던 것 같다. 

천재의 치밀함에 놀라울 뿐이다.


코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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