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38. 아빠, 거긴 어떤가요?
아빠에게 ”거긴 어떤가요? “하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죽음 후에도 우리의 영혼이 어딘가에서 살아가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살아갈 때보다 행복한가요?” 궁금해집니다. 어떤 대답이 나와도 복잡한 마음이 들 것 같아요. “죽은 이후가 더 낫네” 한다면 삶이 너무 애처롭고, “사는 게 더 낫지” 한다면 죽어버린 지금 처지가 너무 안타깝잖아요.
법륜스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부모님이 오래 앓다 돌아가시면 자식들이 별로 울지 않고,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면 자식들이 크게 운다고요. 맺은 인연을 끊는데 드는 슬픔은 같은데 그걸 소화할 시간이 짧으면 더 힘들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빠는 총 10년을 아프고 위중하신 기간은 1년씩 두 번이었으니, 저는 그동안 내내 아빠의 죽음을 준비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돌아가셨을 때는, 이제 힘들지 않고 좋은 곳에 가셨겠지요, 하고 생각했어요. 이왕이면 아빠가 살 때도 좋았고, 지금도 괜찮아하고 얘기해 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내 마음 편하자는 욕심이겠지만요.
사랑하는 아빠에게,
저 큰 딸 지현이예요. 아빠가 계신 거긴 어떤가요?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시길 기도하고 있어요.
아빠가 떠나시고 6년이 흘렀어요. 우리들은 다 잘 내고 있어요. 막내 동생은 아들을 낳았어요. 우리 집안 첫 손자인데, 아빠가 보지 못해 안타까워요. 아기가 눈이 총명해서 아빠도 무척 기뻐하셨을 것 같아요. 엄마도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아직 아빠를 많이 그리워하지만요.
그제 아빠가 쓴 일기와 편지 수백 장을 찾아 캐리어에 넣어 챙겨 왔어요. 평소 때 말수가 적어 엄마를 속 터지게 했던 아빠가 글 속에서는 어찌나 달변이 던지요. 아직 몇 장밖에 못 읽었는데, 수십 년 전 아빠가 눈앞에 그려졌어요. ‘파키스탄 항구 입항’ ‘선장은 외출하고 남은 사람들이 맥주병을 부딪히며 왁자지껄’ ‘또 싸움이 났다.’ 선장이 되고 나서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어 매일매일 멍청해진다.‘ … 어릴 때 아빠가 나에게 해주던 말들도 거기 적혀 있어 신기하기도 했어요. ’ 나쁜 감정에 얽매이지 말자 ‘ ’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
한 장 한 장 읽어보면서 아빠에게 가끔 편지를 쓸지 모르겠습니다. 내 안에 있는 중요한 말들, 삶의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떠올리는 말들 중 많은 것이 아빠로부터 왔으니까,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아빠와의 대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빠는 왠지 그곳에서도 우주와 원자, 철학을 공부하고 계실 것 같아요. 그 세상에서는 아빠가 궁금해하던 것에 대한 답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바라요.
또 편지할게요. 아빠.
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