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파트 2를 보고
영화 ‘듄 파트 2‘를 보았습니다. 원래 듄 시리즈의 팬인데, 구불구불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사구들과, 모래벌레가 입을 크게 벌리고 솟구치는 장면은 다시 봐도 짜릿했어요. 듄은 아라키스라는 사막행성을 두고 제국과 봉건행성들이 다툼을 벌이는 1만 년경을 배경으로 합니다. 귀족 도련님인 주인공 폴이 아라키스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분투하며 사막종족인 프레멘의 지도자로 거듭난다는 내용입니다. 여기까지는 다소 평범한 설정입니다만, 제가 좋아하는 부분은 이제부터예요.
첫째는, 역사와 관련된 건데요. 영화 듄은 정직할 정도로 근대 제국/식민역사를 보여줍니다. 아랍/식민지 = 아라키스, 스파이스 = 향신료/석유, 베네 게세리트 = 극단주의… 언덕을 뛰어내려오는 폴의 모습은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닮아있죠. 감독은 이런 오마주를 통해 결국 집단적 무의식과 역사가 추동하는 변화는 반복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라키스를 두고 다투는 이유가 ‘스파이스’라는 향신료 때문인데, 스파이스는 항성 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각성물질로, 이를 이용해 우주항해사들이 시간과 공간 사이의 특별한 경로를 발견합니다. 이 설정이 대항해 시대와 석유를 동시에 연상하게 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모래 속에 섞인 검고 반짝이는 가루인 스파이스는 거대한 모래벌레가 모래 속의 박테리아를 먹고 배설합니다. 그러므로 사막과 모래벌레는 아라키스 행성의 척박함을 상징하는 동시에, 스파이스에 의존해 제국이 얻는 막대한 이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듄 파트 1에서 아라키스가 물이 충분한 행성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잠깐 설명되는데, 굳이 스파이스를 계속 채취하기 위해서는 아라키스가 척박한 채로 남아있어야 하겠죠.
둘째는, 철학과 관련한 것으로, 예지와 운명에 관한 설정입니다. 과거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이로 인해 촉발된 전쟁으로 인류는 어려운 시기를 겪었습니다. 이 전쟁 이후로 인간의 이성보다는 직관과 영성을 중시하는 베네 게세리트라는 조직이 생겨납니다. 이들은 모두 여자로, 대를 이어 모성의 기억을 전승하고 강한 정신력과 목소리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으며, 의도적 교배를 통해 최고의 (남자) 인간 - 퀴사츠 헤더락 - 을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퀴사츠 헤더락은 남자이기에 전 인류의 기억을 전승할 수 있어서 최고의 존재가 되는 거죠. SF계에서 인간의 직관이 위대함을 대변하는 작품이 듄이라면, 그 반대편에는 책/영화 ‘파운데이션’이 있습니다. 인간의 오랜 역사와 통계를 가지고 인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설정이죠.(해리 셀던의 심리역사학)
퀴사츠 헤더락은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철학적 개념과 닮아 있기도 합니다. 라플라스의 악마는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피에르-시몽 라플라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완벽한 결정론의 사례를 보여줍니다. 이 이론은 만약 어떤 지성이라도 우주의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완벽하게 알고 있고, 자연법칙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면, 그 지성은 과거의 모든 사건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든 사건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합니다. 이 개념은 우주가 기계적이고 예측 가능하다는 뉴턴 물리학의 관점을 확장한 것입니다. 라플라스의 악마는 과학적 결정론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어떤 불확실성도 없이 모든 것이 정해져 있으며 예측 가능하다는 생각을 나타냅니다.
아무튼 듄에서 흥미로운 점은 역사의 힘(심리역사학적 관점)이 폴 개인이 가진 절대적 예지력(직감과 영성)을 압도한다는 거예요. 폴은 자신이 프레멘의 지도자가 되면 우주 제국으로 전쟁이 퍼져나가 끔찍한 비극이 벌어질 것이라는 알았습니다. 메시아가 올 거라는 사막부족의 믿음(사실은 베네 게세리트의 종교공학으로 심어진 믿음)과 그들의 역사가 버무려져 만들어진 결과가 전쟁이라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거죠. 폴은 그 운명을 피하기 위해, 지도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결국 사건의 방향은 폴이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선언하고 프레멘들을 이끌고 전쟁에 나서게 합니다. 폴은 모든 가능한 길을 다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자신이 원한 길로 미래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라플라스의 악마도 양자역학의 발전과 함께 그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입자의 상태가 확률적으로만 예측될 수 있어, 라플라스의 악마가 완벽한 예측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거든요. 결국 폴은 모든 가능한 길을 다 알지도 못했고, 혼자의 힘으로는 미래를 바꿀 수 도 없었던 거지요.
영화의 감상을 하고 있는 일(개도국을 도와주는 일)에 적용해 봅니다.
영화 듄은 그것이 역사에 기반한 것이든, 무의식에 기반한 것이든, 과거의 기억에 기반한 것이든, 최대한 많이 알면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결정론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고전물리학의 전제조건인 결정론을 사회과학으로 가져오는 것 자체가 영화적 허용이지만, 적어도 최대한 많은 변수를 확보해야 예측의 정확성이 올라간다는 것이 교훈이겠지요. 그러니 제가(우리가?) 개도국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을 기획할 때 얼마나 많은 변수들을 빼먹는지, 얼마나 적은 수의 가정만을 가지고 사업을 기획하는지 돌이켜본다면, 미래가, 사업이 예측한 데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미래를 알고 싶다면 과거를 최대한 많이 기억해라. 그래도 미래는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