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8. 박사 v.s. 이직
작년 초 박사와 이직을 놓고 고민을 했어요. 한국 귀국한 후 바로 박사과정 복학기간이 닥쳤는데, 박사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 대비, 내 인생에 박사를 그렇게 많이 써먹을 것 같지 않더라고요. 그걸 알면서도…!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박사를 하고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복학 신청을 했습니다.
등록금 납부 마감기한을 얼마 남겨두고, 다리를 달달 떨면서 복학 후 생활시간표를 짜봤어요. 통학 시간, 수업 시간, 과제하는 시간, 연구계획하고 시행하는 시간…. 회사 일과 씻고 먹는 시간을 뺀 모든 시간을 박사에 투입해야 하겠더군요. 아찔했습니다. 1.5년 코스웤, 논문 2-3년… 그러면 내가 몇 살인가, 그러고 나면 박사를 어디에 써먹을 것인가….
이렇게 계산을 두드려보고 나서도 당장 박사를 관둘 마음이 먹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란 참 어리석죠. 혹시나 뭔가를 손해 보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학교, 다른 전공으로 공부를 하면 낫지 않을까, 엄청 찾아보느라 또 며칠이 흘렀습니다. 끙끙끙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요.
이런 저를 지켜보던 남편이 물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게 뭐야?”
“정말 이 분야 박사가 되고 싶은 거야? “
”박사를 하면 니 인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져? “
돌직구를 퍽퍽퍽 날렸습니다. 저는 점점 궁지에 몰렸습니다. 이틀 동안 열띤(?) 토론 끝에, 나의 욕망 몇 가지가 분명해졌습니다.
1. 즐전세세 (즐겁게 전문성을 가지고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꾼다)
2. 세상을 바꾸는 스토리텔러 (이건 나중에 글쓰기로 구체화됩니다)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하고 바꾸고, 그 과정에서 전문성을 얻고 싶더군요. 특히 그 당시 직장의 조직문화에서는 ‘즐겁게 ‘ 일하지 못하는 제약사항이 많았습니다. 관료주의와 보신주의 같은 것이지요. 박사를 따봤자 이 업계가 거기서 거기라 벗어날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박사는 때려치우고 차라리 이직 준비에 매진하기로 했습니다. 특정 분야의 국제기구, 특히 금융기구를 목표로 했고, 다행히 이직에 성공할 수 있었어요. 돌이켜보면, 그때 박사를 포기 못하는 어정쩡한 선택을 했으면 지금 어땠을까 싶습니다. 이직도 박사도 제대로 못하고 스트레스만 쌓여가고 있을지도 모르죠.
두려움이라는 감정,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막연한 욕심이 인생의 몇 년을 좌우할 결정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딱히 내 욕망과는 무관한 것을 손에 꼭 쥐고, 혹시 놓치면 어떡하나 불안해서 잘못된 결정을 합니다. 다행히 저에게는 욕망을 직시하고 막연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곁에 없다면 어려운 결정 앞에서 우리는 더욱 많이 외롭겠지요. 연인이든, 배우자든, 아주 친한 친구이든, 혈육이든… 선택 앞에 선 당신이 외롭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