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요즘 덥습니다. 낮에도 덥지만 사실 에어컨이 있는 실내에서 지내니 실감을 못하다가, 밤이 되어 자려고 누우면 목덜미에 열감이 떨어지지 않아 더위를 실감합니다. 밤 온도가 25도가 넘어가면 열대야라고 하는데, 최근 몇 년간 열대야가 6월에도 9월에도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이러다가 여름이 엄청 길어지고 우리나라가 동남아처럼 더워지면 어떡하지 걱정이 됩니다.
지난 30-40년간 우리나라 계절들의 길이를 살펴보면 확실히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지고 있습니다. 보통 20도 이상의 기온이 이어지면 여름이라고 하는데, 평균 온도가 1-2도 더 오른다면 5월과 9월도 확실히 여름에 편입될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줄어들어 있는 겨울 옷장의 지분을 좀 더 줄여도 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네요.
일단 에어컨을 더 많이 켜고, 전기세가 많이 나오겠죠. 하지만 그렇게 맘먹은 만큼 많이 에어컨을 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몇 년 전에 정부에서 했던 에어컨과 전기 사용을 줄이지 않으면 전력생산량이 모자라 블랙아웃이 올 수 있다는 캠페인이 기억나요. 안 쓰는 플러그 뽑기, 가게에서 에어컨 틀고 문 열어놓지 않기 등등, 회사에서도 냉방온도를 제한해서 사무실에서 아이스팩 머플러를 둘렀었죠. 아이스팩이 녹아 목덜미에서 티셔츠로 물이 흘렀었습니다.
아침 일찍이나 저녁의 활동이 늘어날 것도 같습니다. 낮에는 시에스타와 같은 휴식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 라마단 같은 긴 단축근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여름이 늘어나니 아이들의 여름 방학과 어른들의 여름휴가도 좀 더 늘어날지도 모릅니다. 다들 휴가를 가니 휴가지가 미어터질까요? 벌써부터 휴가를 나서기가 망설여집니다.
여름이 길어지니 상추, 시금치, 사과, 배 같은 고온에서 잘 자라지 못하는 식재료들의 값이 오릅니다. 수박, 참외, 토마토, 오이 같이 고온을 잘 견디는 식품들을 더 많이 먹게 됩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자포니카 쌀보다는 동남아에서 흔히 재배하는 인디카 쌀에 더 적합한 재배환경이 되어가겠지요.
여름이 길어지면 도시 지역은 더욱 뜨거워질 수 있습니다. 이는 도심 내 열섬 현상을 악화시키겠죠. 인구밀도가 높고 녹지가 부족한 도심지역에 주택을 구매하는 것이 점점 더 인기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여름의 폭우가 강해지고 잦아지면서, 침수가 잘 되는 지역의 집을 구매하는 것도 꺼려질 겁니다.
한국의 평균기온은 12-13도 정도로, 사람이 살기 좋은 온대기후대(5도~18도)에 속해 있습니다. 현재 산업화(1850년) 대비 1.1도가 올랐는데, 향후 몇 도가 더 오른다고 해서 큰 문제가 있을까 싶고, 여름이 좀 더 길어진들 어떠하랴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지구평균기온이 2도를 넘어선 후에는 지구의 생물물리학적 시스템에 깨지면서 기후의 상승과 이로 인한 불안정성이 크게 증가한다는 겁니다. 식물도 아주 더운 기후에서는 잘 자라지 못합니다. 비가 오는 패턴이 달라지면 흉년이 듭니다. 비가 오는 시기가 몇 주만 늦어져도 농가는 타격을 입잖아요. 어떤 나라는 식량 수출을 금지할지도 모릅니다. 세계화된 식량시스템에서 식량과 물은 지역 간 고립과 분쟁을 야기하는 트리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 얼마나 온도가 오를까요?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에서는 5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합니다. 자연과학적 요인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요인을 포함한 "Shared Socioeconomic Pathways(SSP)"를 활용하는데, 우리의 행동에 따른 2100년의 온도를 예측합니다.
1. SSP1 (지속 가능성): 우리가 완전한 패러다임 전환을 이룬 아름다운 시나리오입니다. --> 1.5°C
2. SSP2 (중간 경로):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으로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갑니다. 온실가스 배출 중간 --> 1.8°C
3. SSP3 (지역 경쟁): 국가들이 자국중심주의를 택하고 지역 간 불평등이 지속됩니다. 온실가스 배출 높음 --> 2.6°C
4. SSP4 (불평등): 경제적 기회와 정치적 권력의 불평등이 증가하여 고소득층과 저소득층간 격차가 심화됩니다. 온실가스 배출은 중간 --> 3.7°C
5. SSP5 (화석 연료 기반 발전): 화석 연료 사용이 계속 증가하는 경로로, 온실가스 배출이 매우 높음 --> 4.4°C
여름이 2배가 되고, 우리나라가 아열대가 되고, 더 이상 상추를 못 먹어도 내가 돈을 잘 벌면 좋은 곳에 살며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면 괜찮은 걸까요? 어차피 나는 2100년까지 살지도 못하니까 괜찮은 걸까요? 아니면, 이미 세상은 자연환경도, 경제와 사회구조도 급격하게 바뀌고 있는데, 나만 다른데 정신이 팔려 있는 걸까요? 스스로가 서서히 끓는 물속의 개구리라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의 이야기를 애써 외면하면서요.
저도 정답은 모르겠습니다. 하나 분명한 것은 기후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변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변화가 있을 때 두 눈을 크게 뜨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위험하다. 그것만은 알겠어요.
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바꿉니다.